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81) 나는 그렇게 되기 싫었을까?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26 조회수803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5년2월26일 사순 제2주간 토요일ㅡ미가서7,14-15.18-20; 루가15,1-3.11-32ㅡ

 

         나는 그렇게 되기 싫었을까?

                                            이순의

 

 

중년의 여인이 되어버린 나를 바라본다. 적당히 간 큰 여자. 적당히 세상도 볼줄 아는 여자. 적당히 마음 밖의 얼굴을 들수 있는 여자. 적당히 속다른 웃음도 흘릴줄 아는 여자. 적당히 적당히 적당히....... 세월의 때가 묻은 얼룩이 밉지 않은 여자. 그런 여자가 되어있다. 그리고 생활안에서 해방 될수 없는 존재도 나의 여인됨으로 보태어져있다. 간혹은 백색의 소형승용차를 몰고 강촌 옆 까페에서 홀로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은 내심의 유혹도 있는.

"어! 나는 차가 없는데..... 후후후"

 

그러다가

멋진 바바리 코트의 신사를 만나고, 뱃살 숨겨진 신사의 위선에 속아보고, 예절 좋은 배려에 반한 척 내숭도 떨어보고, 고급요리상 앞에서 첫 선 보던날 같은 교양으로 호호 미소짓는, 내가 내 속을 들여다 보는 훤한 내숭을 인정하는.....! 그런 나를 그려본다. 으~! 닭살이야. 이놈의 여편네가 미쳤군. 히히히히히! 그러다가.....! 이불 속에 함께 누워 머리 헝클어진 살냄새가 싫은 줄도 모르는, 눈에 낀 눈꼽을 볼줄 몰라서 그냥 무심히 마주보고 앉아있는, 고무줄 바지 헐렁하게 내려간 허리춤의 속살이 주책으로 보이지 않는, 가려운데를 긁어주지 못한다고 늙은 등판을 내미는 것도 거부하지 않는...... 그런 짝궁을 생각해 본다.

 

근래에 절친한 지인께서 이혼을 하게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글을 쓰러 다닌다는 마나님의 상류인생이 부도가 난 탓이었다. 자식들은 컸고, 나이는 어중간하고, 버리자니 안타깝고, 두자니 부담스러운 마나님을 놓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청춘이 만나 백년가약을 맺을 때는 중년에 이런 위기를 맞을지 누군들 짐작이나 했을 것인가? 무엇보다도 문장을 하느라고 화려했던 상류인생의 속모를 활동에 주변의 시선이 놀라고 있다. 어지간 하면 정말로 어지간 하면 살아보려는 노력들도 물거품이 되려는지? 다같이 염려를 놓지 못한다.

 

글이 쓰고 싶었다면 지필묵이면 되었을텐데 화려한 상류가 왜 필요했을까?

 

중년의 여유가 위기는 위기인가 보다. 돈이 있으면 있는대로 누리는 법을 찾아 위기인 것 같고,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빈한한 졸리움에서 숨통을 열겠다고 위기인 것 같고! 육신의 노동이 줄어든 현대의 정신은 있으면 있어서 허망하고, 없으면 없어서 공허한, 자기 소외로 인한 만족의 부재상태가 문제일 것이다. 만족할 수는 없었을까? 그대로의 나를 인정할 수는 없었을까? 문장이 내가 가진 모든 것에게 상처를 주어도 될만큼 중요했을까? 과연 글이라는 것이 상류의 화려한 폼이었을까?

 

그래서 나는 내 남자의 뒷모습을 생각해 본다. 내가 쓰는 문장이 내 남자를 외롭게 한다면? 내가 쓰는 문장이 내 남자를 슬프게 한다면? 내가 쓰는 문장이 내 남자를 힘들게 한다면? 내가 쓰는 문장이 내 남자의 기력을 빼앗는다면? 내가 쓰는 문장이 내 남자를..... 그리고 내 자식과 내 가정이 내가 쓰는 문장에게 진저리를 낸다면......? 나는 지금 즉시 문장을 버리고야 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진정한 문장가가 되어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장이 나를 소외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한다. 그러나 수 많은 예술 중에서도 긴 운명의 예술은 먼지 한 분자에 불과할 뿐이다. 모든 예술이, 각자의 예술이, 긴 운명을 불사르지는 못한다. 오히려 예술이든 인생이든 모두에게 각자에게 글이 되고 사연이 되고 문장이 되어 살다가 생명과 함께 사그러질 것이다. 인생이 다 하는 날에 예술도 그 운명을 다 하는 것이다. 고지에 남은 한점 일획도 되지 않는 분자의 운명을 쫓아서 인생을 점령할 예술은 아무나의 소유가 아니다. 인생은 짧아도 긴 예술을 살아야 할 사람의 운명은 화려한 호사가 될 수 없다. 

 

왜 그러셨을까?

책을 내지 않으면 어때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 없이 많은 책들 중에서 잊혀지지 않을 운명의 책은 몇 권이나 될까? 그 중에서 내책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화려한 예술인은 또 몇 명이나 될까? 낭만도 없었나 보다. 실오라기 풀어진 낡은 코트를 입으면 어때서? 때 국물에 절은 누더기 옷을 걸치고, 몇 일씩 소세도 하지 못한 집념으로 눈빛만이 초롱한 작가의 상징적인 낭만도 몰랐나 보다. 밍크코트는 왜 사 입어야 했을까?

 

격에 맞춰야 했을 분위기는 왜 필요하지? 마음을 가다듬을 구상이라도 필요했다면 기차표 한 장 달랑 들고 김제 평야라도 누벼보시지? 명동거리라도 해매보시지? 추억이 그리운 찻집이라도 찾아가 보시지? 아니면 국어 사전이 두 권, 영한과 한영 사전이 각각 한 권, 늙은 옥편과 젊은 옥편이 이런저런 책들 속에 묻혀 주변이 어수선한 컴퓨터 앞에라도 앉아 보시지? 어울리다가 수다떨다가 폼 잡다가 누리던 호사가 바닥이 드러났다는 소문은 믿어지지 않았다.

 

아내라는 끈을 엄마라는 끈을 포기하기로 한 슬픈 가슴들을 위로 할 길이 없다. 나의 문장이 주는 호사로 인하여 나의 등 뒤에서 내 짝궁이 가슴 아파한다면 나는 그 가슴을 감당할 자신이 없을 것 같다. 나의 글이 주는 사치로 인하여 내 앞에서 내 자식이 탄식한다면 나는 그 탄식을 외면 할 자신이 없다. 차라리 그냥 살을란다. 쓰지도 말고 그냥 살을란다. 짝궁이 없는 나의 예술이 길어보아야 얼마나 길 것이며, 자식이 없는 나의 예술이 가치있으면 얼마나 가치있겠는가?

 

나는 그렇게 되기 싫었을까? 그래서 나는 내 남자의 눈에서 눈물 나는 것을 두려워했을까? 그것이 내 남자의 뒷모습을 그려본 이유였을까? 나는 그냥 이대로 살을란다.  적당히 간 큰 여자. 적당히 세상도 볼줄 아는 여자. 적당히 마음 밖의 얼굴을 들수 있는 여자. 적당히 속다른 웃음도 흘릴줄 아는 여자. 적당히 적당히 적당히....... 세월의 때가 묻은 얼룩이 밉지 않은 여자. 그런 여자가 되어 살을란다. 그리고 생활안에서 해방 될수 없는 존재도 나의 여인됨으로 보태어 살을란다.

 

간혹은 백색의 소형승용차를 몰고 강촌 옆 까페에서 홀로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은 내심의 유혹도 즐기며.

"어! 나는 차가 없는데..... 후후후"

이불 속에 함께 누워 머리 헝클어진 살냄새가 싫은 줄도 모르는, 눈에 낀 눈꼽을 볼 줄 몰라서 그냥 무심히 마주보고 앉아있는, 고무줄 바지 헐렁하게 내려간 허리춤의 속살이 주책으로 보이지 않는, 가려운데를 긁어주지 못한다고 늙은 등판을 내미는 것도 거부하지 않는...... 그런 짝궁만을 사랑할 거다.

    

 

 

ㅡ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으니 저를 품꾼으로라도 써 주십시요 하고 사정해 보리라. 마침내 그는 거기를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루가15,18-20ㅡ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