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궁 창
세제에 쓸리어 내려오는 온갖 더러운 땟물을 조용히 받아 드립니다. 똥물 기름 물 설거지 물 제 얼굴에 뒤집어쓰고 태연히 그 것들을 섞어내어 흙 속으로 좋은 양분을 내려보내 지렁이들과 각종 미생물의 낙원을 만듭니다.
더러는 지저분하다고 지나가며 가래침을 뱉습니다. 더러는 더럽다고 고개를 돌립니다. 더러는 고약한 냄새에 코를 막습니다. 더러는 저런 시궁창이 왜 있어야 해 시멘트로 포장을 해 버립니다. 그래도 아무 불평 없이 제 운명을 받아 드리며 여전히 제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오물을 걸러내고 땟국들을 흡수하고 영양분이 많은 물을 아래로 흘러 보냅니다. 시궁창을 거친 물은 미나리 깡에 머물러 미나리들을 탐스럽게 자라게 합니다. 그리고 논으로 흘러들어 벼들을 잘 자라게 합니다. 강물로 흘러 들어 물고기를 자라게 하고 바다로 흘러 들어 소금을 만들게 합니다.
2005년 2월 26일
사순 2주간 토요일
김모세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