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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2) 사랑으로 남은 빚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26 조회수845 추천수7 반대(0) 신고

 

우리 작은아이가 두살, 큰 아이가 네살되던 해에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난 그때까지도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주부였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던 나는 세든집 주인 아줌마에게 남편이 떠났다면 이토록 슬프진 않겠지요? 했을때 아줌마는 눈을 크게 뜨고 어이구! 하고 첫마디를 꺼냈을때 난 그 아줌마가 당연히, 그걸 말이라고 허우? 물론이지!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줌마가 한 말은 나에겐 뜻밖이었다.

아니 남편이 더 하지 무슨말이유? 남편은 식구들을 먹여살리잖우? 친정아버지가 내식구 먹여살려요? 하는 말을 듣고 난 펀뜩 정신이 났지만 그래도 그당시의 정서로는 아버지의 죽음이 더 절실하게 마음에 와 닿았었다.

 

그러던 내가 막내가 열살이 되던 해 쯤에는 꽤 생활인이 되어있았다.

남편이 새벽마다 벌떡 일어나 가슴을 쥐어뜯으며 고통스러워할 때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해도 뚜렷한 병명이 안나올때 공포에 가까운 불안감으로 떨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남편이 갑자기 세상 떠나면 어떻게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벌어먹일 수 있을지 전혀 대책이 서지 않았다. 돈 한푼 벌 줄 모르는 날땡감이 어찌 세상을 살아갈지 몰라 앞이 캄캄해지는 두려움이었다.

그때 내가 자신의 생활력을 시험해보기 위해서 만일의 경우 홀로서기를 시험해 보기위해서 나가게 된것이 세일즈하는 회사였다. 20년전 일이다.

 

우여곡절끝에 그 회사를 3년 가까이 다녔다.

연줄연줄 소개로 고객확보를 할 수 있었지만 그보다는 스스로 뚫고 들어간 시중은행들의 여행원을 상당수 확보한 것이 길게 버티게 한 요인이었다.

주로 이십대의 여행원들은 참 친절하고 따뜻하게 외판원 아줌마를 대해주었다.

전혀 장사하는 아줌마 인상이 아니라고 호감을 보였고  취급하는 물품이 여성용품이어서 그때만해도 이십년전이니 곱고 깨끗한 피부가 상당한 프리미엄으로 작용했다. 이거 바르면 아줌마 얼굴처럼 고와져요? 하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휴게실에서 직원들을 만나는 두시간동안에 주문을 받고 때로는 점심식사 마지막 파트의 직원사이에 꼽싸리 끼어 앉아 밥도 얻어먹고 다시 사무실에 돌아와 주문받은 물건 은행 셧터 내리기전에 갖다주어야 하는 하루가 몹시도 바빴다. 아이가 어릴때여서 빨리 집에 가야한다는 강박감에도 시달렸다. 그런데 결국 돈은 벌지 못했다.

역시 나는 장사할 체질이 아니었나보다.

마진이 꽤 남는 장사였지만 그 마진이 과하다는 생각에 난 그 마진 중에서 절반을 할인해주고 쌤풀도 사서 풀어야했고 교통비도 들어야 했으니 순수익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계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수가 적은 내가 고객관리 차원에서 늘 많은 말을 해야하고 끊임없이 미소작전을 펴야한다는게 엄청난 부담이 되어 끝내는 병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돈은 벌지 못했지만 그때 내가 얻은 소중한 것이 있다.

만나던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고 사랑이었다.

그때 알았던 수많은 여행원들과 주부들이 나에게 베풀어주었던 친절과 호의는 지금도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억이다. 주부들은 늘 나를 손님으로 대해주었다. 그래서 점심도 함께 하고 차와 과일로 극진히 대접하여 난 그집에 이익금을 남기려고 장사를 하러 갔지만 그들은 오히려 많은 것을 나에게 베풀어 주었다.

오늘 그때 알았던 고객중의 한사람이 딸을 결혼시킨다.

예식장이 내가 가장 가기 싫어하는 강남에 있다.

그사람이 바라는 것은 아마 예식에 참석하여 축복해주는걸 원할 것이다.

부조돈이야 사실 개인이 하면 얼마나 하랴!

사람이 직접 가서 정성을 보이는 축복이 중요할 것이므로 멀리 출타하는것을, 더우기 혼자서 처음 찾아가는 길을 참 싫어하는 나지만 지금 몸 컨디션이 무척 안좋음에도 불구하고 옛날에 그렇게 깍듯하게 손님대접하며 정을 주었던 그사람의 혼사에 꼭 가야만 한다.

빚을 지고 있으므로.......

그리고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빚을 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갚을 날이 온다는 것을.....

허지만 이렇게라도 빚을 갚을 수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문득 내가 알던 그 수백명의 은행원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지금쯤 모두 사십대가 되어 있을것이다. 개중엔 오십대도 몇 있을 것이다.

IMF로 인해 구조조정을 당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은행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작년에 이사올 때 그때 쓰던 수첩을 보고 버리지 않고 서랍에 넣어두었던 기억이 난다.

알았던 사람들 만나진 못해도 이름이라도 잊어버리지 않게 하려고 서랍에 넣어두었다.

살면서 참 많은 빚을 지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사람에게 받았던 친절과 사랑이 따뜻한 기억으로 내 안에 밪으로 남아 있음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늘 감사하고 기분좋아지는  빚으로, 그러나 또 언젠가는 그 빚을 갚을 날이 온다는걸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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