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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84) 내가 헛살았다고 체념할 때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01 조회수933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5년3월1일사순 제3주간 화요일ㅡ다니엘서3,25.34-43;마태오18,21-35ㅡ

 

               내가 헛살았다고 체념할 때

                                                  이순의

 

 

봉사라는 개념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은 정말로 봉사적으로 살았다. 나는 내가 그렇게 살면 짝궁도 그렇게 변화 되는 줄 알았고, 시댁의 가족들도 그렇게 변화 되는 줄 알고 살았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로 하루를 벌어서 하루만 살았던 신혼생활이었다. 그런데도 시댁의 자자분한 요구들이 귀찮다든지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신기할 지경이다.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티도 나지 않는 자자분한 일들을 해결하고, 다시 벌어서 갚아내고, 또 무슨 일이 생기면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짐이 되어 남아도 당연히 나의 몫으로 인정하며 살았던 세월이다. 오히려 날을 살아 가면서 세상 사는 법을 배우게 되고, 빚을 지면서 까지 짐을 지는 가족은 없다는 것도 시동생들을 혼인시켜 가면서 그들에게 배우고 있었다.

 

형은 동생들 때문에 빚이지고, 살림을 팔고, 형은 굶어도 동생들은 굶게 해서는 안된다는 책임감 깊은 일념으로 살아가는데, 동생들은 티끌 한 장도 형 때문에 손해 날 수 없었고, 살림을 팔기는 커녕 살림을 늘리려고만 하고, 형이 굶든지 말든지 자기 몫을 챙기기 위해서는 금전출납부의 흔적조차 흐지부지 하고 마는...... 그것이 형과 동생의 차이였다. 형은 빚을 지고라도 동생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데 동생들은 빚을 지는 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몫을 한 푼이라도 더 챙기기에 급급한......

 

형이 복권이라도 당첨되어 동생들에게 팍팍 줄수 있게 된다면 그렇게 무시하는 버르장 머리가 고쳐질랑가? 부모 복이 없어서 짐 위에 짐만 지고 사는 형이 동생들 걱정을 앞세워 1원 한 장을 동생들에게 부담지우지 않는데도, 그런 형한테 붙어 벌어먹고 살면서 왜 형을 무시하는지? 왜 그런 형을 존중하지 못하고 건방을 떠는지? 그렇다고 다 같이 배우지도 못한 주제에 나가서 독립하여 살지도 못 하면서 왜들 그러는지? 동생들이 형에게 힘이 되준 적도 없으면서 무엇이 그토록 형보다 잘났는지?

 

나는 동서들에게도 잘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정말 잘해 줬다. 그리고 먼저 이 집에 시집 온 사람으로서 소신도 당당했었다. 나도 시댁 식구이기 이전에 남의 집의 귀한 딸이었다는 것! 내가 동서들에게 이렇게라도 해 주는 이유는 너무나 앞뒤가 없으신 어머니 보다는 내가 깨어 있기 때문이고, 또한 내가 하느님을 믿어서 먼저 살은 사람의 선교이기도 하다는! 그러니 마음에 신앙이 자리한다면 다 같이 하느님을 믿자고, 성당에 다니자고, 그래서 화목하게 살자고,

 

그런데 동서네 집 문지방에 붉은 글씨의 부적이 덕지덕지 붙어있던 날! 그리고 어느날 동서가 아이들과 동네의 어느 개신교회에서 나오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의! 그래도 또 내가 잘 못 해준 것이 있었겠지. 나랑 성당에 다니기 싫은 이유가 있었겠지. 그래도 주님을 믿지 않는 것 보다는 믿으니 다행으로 삼자고 위로하며 종교의 자유를 마음 속으로 선언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체념하는 것으로 나를 돌아 보았다. 내가 동서들에게 모범이 되지 못했던 부분들을 인정하려 애쓰며 후회했었다.

 

어머니께서 용역 일을 퇴직 하시고 제일 먼저 권한 나의 요청이 성당에 다니시면 어머니와 늘 동행해 드리겠다는 것이다. 노인 대학도 같이 가시고, 교리공부도 같이 하시고, 미사도 어머니랑 함게 봉헌하자고..... 그런데 어머니는 단호하게 완강하게 거절하셨다. 늙으신 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구박 같아서 삼가했다. 더구나 종교 때문에 늙으신 모친들이 격는 수난을 신앙생활 중에 여러번 목격하였으므로 그런 고충을 가중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가 몸을 놓을 때는 며느리 따라서 성당에 다닙시다. 어머니."

그런데 얼마 전 부터 어머니는 식사 전에 개신교식 식사기도를 하셨다. 어머니께 교회에 다니시기 시작 했는지 여쭈어 보았다. 그런데 내가 성당에 다니자고 했을 때 처럼 며느리에게만 하실 수 있는 압력적으로 단호하게 뭔 교회를 댕긴다냐고 쐐기를 박으며 나의 입을 막아 버리셨다. 미우나 고우나 시 자 들어가는 어머니시니까 말을 멈추었다. 그런다고 나는 등신이 아니지를 않는가! 그 야속함에 어찌나 화가 나든지 드리던 생활비 조차 차단하고 싶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에 알면서 모르면서 격고 살아온 시 자 섞인 모든 분노가 일어났다. 앞으로는 당신이 저러실 수록 손해라는 배짱이 생기는 것이다. 어린 손자들과 아들들의 생계가 걸린 큰 아이의 비위 하나를 따라 줄줄 모르는 무지함이 복습되고, 그동안의 시집살이가 얼마나 폭폭하고 애통터지는 일이었는지 돌아보고 있었다. 내가 선하지 못했다면 당신이 영악해도 돌아보지 않을 며느리가 아니겠는가?! 왜 그렇게도 비위에 거슬리는 선택만 골라서 하시는지 모를 일이다. 하늘이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시는 것 같았다.

 

나의 질문 탓인지 다음부터는 그 기도를 하시려면 눈치를 보시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깊이 생각을 해야만 했다. 나를 따라 성당에 다니자고 하시면 분명히 시 자 붙은 유세를 하실 것이고, 그렇다고 그냥 말고 두자니 내 속이 편하지가 않고. 솔직히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나는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상당히 골이 깊어있다. 그 골을 극복하는 것은 언제나 나의 신앙의 힘이다. 나는 혼자 누워 다시 신앙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늙으신 노인네가 그거라도 취미에 맞아서 활동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감사드리자고.

 

시외숙모님께서 외삼촌이 돌아가신 뒤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 했는데 아마도 손위 시누이가 직장을 그만 두시게 되자 벗으로 삼으신 것 같다. 시누 올케지간에 서로 살붙이가 되어 벗이 된다는 것이 세대차이 나는 나 보다는 공감의 즐거움이 있으실 것이라고 인정을 했다. 그나마도 교회에 헌금하는 돈이 아깝다는 시동생의 수준을 보아서라도 어머니의 그 모습은 발전이 아니겠는가?!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부자가 되지는 않는다고 했어도 가난한 시댁 식구들의 반응은 헌금하지 않으면 마치 자기들이 재벌이라도 되는 것 같은......

 

헌금도 하지 않고 교회도 다니지 않았어도 평생동안 가난한 사람들의 사고 방식으로 보아 어느 종교든지 선택해서 다닌다는 사실이 더 중요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글도 모르시고 둔하신 어머니의 입장은 남도 아니고 동생의 아내라서 매우 편안하게 종교를 이해할 것 같았다. 어떤면으로는 당신이 시 자를 행사하시느라고 압력을 놓으시지만 결코 만만하거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며느리 보다는 외숙모님이 편안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입장에서 어머니를 편하게 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늙으신 노인네를 종교문제로 서럽게 하지는 말자는 나의 원칙을 고수할 수 있어야 한다. 신께서는 신으로 인하여 늙은 노인이 구박 받지 않기를 틀림없이 원하실 것이다. 다시 내 마음의 분쟁은 나의 노력으로 매듭을 지었다. 그동안 희생만 하고 살은 나에게 마지막 까지 비위를 맞추지 못한다는 며느리의 관점으로는 내 자신이 평화롭지 않았다. 나의 희생이 아무리 컸다고 해도 그것은 내가 느끼며 견디어 온 희생이었지 그 희생의 몫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것이 희생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내가 지키고 버텨온 희생이 이만큼의 시댁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는 것이다. 내가 진 짐으로 큰 걱정없이 그나마 살아온 흔적들을 느끼지 못하기에 그토록 불쌍한 큰형의 가슴을 무지로 범하지 않겠는가?! 어머니도 그것을 안다면 왜 큰아이의 그토록 작은 청을 들어주지 못하겠는가?! 나는 오늘도 어머니의 입장에서 내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다만 당신의 종교생활이 우상화 되어 훗날에 또 시 자를 붙여 나에게 무지한 압력을 행사하시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나는 내 희생의 댓가를 바라게 될 것이다.

 

나는 나의 신앙으로 인하여 어머니의 아들이 짊어진 짐을 지고 살 수 있었다고, 다 늙어서 나에게 그것마져 요구하신다면 그 짐들을 버릴 것이며, 어머니도 놓아버릴 것이다고 단호해 질 것이다. 나는 요즈음 내가 참으로 헛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님의 힘으로 나의 모든 수고하고 짐진 노력들이 모범이 되기를 바랬는데 결과는 그렇게 되지 않아서다. 나의 모습이 모범이 되지 못했다는 결과이다. 강한 쇠붙이보다 단호하고, 곧은 대쪽보다 더 빳빳한, 차돌보다 강한 심장을 지닌, 가지려고만 하는 동생들 속에서 가지지 않고도 의연한......

 

그런 나의 모습 때문에 짝궁이 진 짐을 지며 내가 무너지지 않고 살 수 있었는데도 시 자 붙은 사람들은 그것이 싫었을 것이다. 동서가 개신교회에서 나오던 날도 내가 동서에게 헛공을 드린 죄가 컸다고 체념을 했었다. 진정한 본보기가 되었다면 동서가 조카들을 데리고 그 교회에 갔을 것인가?! 이제 어머니의 선택을 놓고 다시 한 번 헛공을 생각해 본다. 나는 아직도 어머니의 마음에 모범인 신앙인은 아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내가 헛 살은 것을 인정하고 체념해야 한다. 누구의 탓이겠는가?! 내 탓이지!

 

백발이 허연 짝궁은 아직도 동생에게 버릇없는 무시를 당하고 정초부터 속이 뒤집히는 눈치다. 짝궁도 나도 정말로 헛세상을 살고 있다. 가르쳐도 가르쳐도 되지 않는 이유가 어찌 나이살이나 처먹은 동생들 탓이겠는가? 어머니도 내 맘대로 안되는데 동생들인들 내가 가르친다고 듣겠는가? 환갑이 넘어도 그놈의 주둥치들이 그 수준 밖에 못 살을랑가? 제 형인데....  제발 올해는 형수가 시동생들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설을 퍼부어야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산다는 것은 체념이다. 내가 헛살고 있다는 체념! 그것이 인생을 성공하는 비결이다.

 

ㅡ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 하여라." 마태오18,22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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