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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85) 커피 파는 여자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02 조회수1,196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5년3월2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ㅡ신명기4,1.5-9;마태오5,17-19ㅡ

 

             커피 파는 여자

                                  이순의

 

 

사람이 많은 장소에는 작은 카트를 밀며 커피를 파는 여자들이 있다. 시장이나 공원은 물론 운동경기장 같은 넓은 장소뿐만 아니라 잠깐이라도 군중이 몰리는 선거유세장이라든지 가리지 않고 그들은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여인의 몸으로 대단한 생명력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칠은 벌판에서 500원짜리 커피를 팔아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인생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작은 카트를 밀고 다닌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누구나 언제든지 어디서나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것도 조직이 있고, 카트를 대여해주는 것 뿐만 아니라 주변의 잡다한 소란까지 방어해 주는 공동체에 소속되어야 그나마 자리가 허럭된다고 한다. 큰 시장 같은데는 대규모 조직이 형성되어 단체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자리다툼에서 희생되는 것은 기정 사실이라고 한다.

 

거칠은 세상에서 거칠은 사람들을 상대로 500원짜리 커피를 판다는 것은 까페에서 5000원짜리 커피를 파는 일 보다 훨씬 저질스럽고 추접한 상황도 많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는 모르지만 사람에 따라 뜨네기 장사를 하는 그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상당하다고 들었다. 그렇게 작은 카트도 발전하여 요즘은 호박죽이나 팥죽도 판다고 들었다.

 

짝궁이 일하는 시장에 가면 요소요소에 구역을 정하여 카트를 끄집는 여자들이 짙은 화장기 밑으로 퉁퉁 부어 지친 얼굴을 하고 생업을 지탱하고 있다. 그것도 영업이라서 그 커피 맛이 기가 막히게 좋다. 그 한 잔의 커피도 솜씨가 없으면 파리를 날린다고 한다. 솜씨 좋은 여인의 구역을 찾아가 단골손님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다. 그래서 커피 파는 여자들 끼리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일도 종종 발생하고! 

 

물론 외상도 된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시장바닥에서는 자연스럽게 명명된 별명으로 외상장부를 적고 오다가 가다가 만나면 주고 보이면 받고, 시장바닥에 나타나지 않으면 커피 한 잔의 외상도 떼먹고 도망 간 것이 된다. 간혹은 커피만 팔아서 악착스럽게 돈을 모아 빌딩을 샀다는 소문난 부자도 있고, 이놈저놈에게 돈 뺏기고 몸 뺏기고 우수운 낙인이 찍혀서 지나가던 멍멍이도 건들어 본다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짝궁은 새색시였던 나에게 친구가 시장에서 커피를 판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커피장사가 뭔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는데 커피장사 친구가 있다는 것이다. 전해 주는 말을 듣고 보니 어린 시절의 고향 친구였다. 중학교만 졸업하고 공장에 간다고 고향을 등진 뒤로,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적에 결혼소식이 들렸던 친구이다. 그러니 열여섯 나이에 멀어져 강산이 변하고 남은 시간이 아니던가?! 

 

학교에 다닐적에는 공부도 제법 잘했었는데 부모의 기력이 그 뿐이라서 중학교만 마쳤던 것이다. 나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짝궁을 졸라서 시장에 나가 보았다. 그리고 그 친구 앞에 섰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 볼 수가 없었다. 그 친구는 거칠은 벌판에서 살아남느라고 동안(童顔)을 찾을 수가 없었고, 나는 나대로 아픈치레를 하느라고 시달렸으므로 동안(童顔)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서로가 너무 어린시절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검정 중학생 교복을 입고 손수건 처럼 작은 스카프를 좁게 접어 단짝인 친구랑 똑같이 목에 매고 다녔던 그 친구의 모습을 기억했다. V자로 파진 교복 카라의 속살 위로 목 한가운데 걸려있는 스카프가 전혀 따뜻해 보이지 않고 멋을 부렸다는 야릇한 기억도 오랜 시간의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친구는 친구대로 부자집 막내딸의 고운 얼굴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친구는 어린 나이에 연애결혼을 했다고 한다. 아들만 둘을 두어 그래도 행복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남편이 일을 하다 사고가 나서 실명 위기에 놓여버렸다고 한다. 그 남편을 버리지 않고 살려고 커피장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걱정이 되어서 시장의 리듬이 심야 장사인데 아이들은 어떻게 돌보느냐고 물었더니 그나마 남편이 죽지 않고 희미하게 라도 앞을 볼 수 있어서 아이들을 챙겨주는데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얼마나 장해 보이든지! 요즘은 쉽게 가정을 버리는 남녀가 얼마나 많은데 그런 장애 남편을 버리지 않고 커피를 팔러 나왔다는 소식은 고향만큼이나 가슴을 저리게 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두세 번 친구를 만나기는 했지만 친구는 늘 생활에 쩔은 모습으로 나를 대하기가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그래서 친구를 보려고 일부러 시장에 나가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짝궁을 통해 나쁜 소식도 전해져 왔다. 모아진 돈을 불려 볼 요량으로 돈 놀이를 했다가 몽땅 떼이고 커피 파는 카트마져 빼앗겼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벼룩의 간을 빼 먹지 세상이 해도 너무 한다고 안타까워했었다. 한동안 시장에서 보이지 않더니 그래도 시장바닥에 아름이 있어서인지 리어카를 끄집고 나타나 찬바람이 나는 저녁에는 만두를 쪄서 팔고, 더워진 저녁에는 옥수수를 쪄서 판다고 들었다.

 

짝궁은 간혹 친구에게서 샀다는 음식들을 전해 주었다. 그것들을 눈물로 먹어 주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잘 커서 행복하다고 늘 자랑을 했다고 한다. 고생스러워 어쩌냐고 위로를 건네면 아이들 자랑을 하며 절대로 고생스럽지 않다고 했다는 것이다. 다시 좀 가벼운 커피를 팔게 되기를 바랬는데 요즘은 짝궁이 산에 가서 머무니 친구의 소식을 전해 들을 수가 없다. 지금쯤은 아이들이 혼인을 했을 것 같은데....

 

사순시기의 묵상이 내 일상안에서 격는 갈등고조를 이루다 보니 너무 칙칙하고 어두어 친구의 사는 모습을 적어 보았다. 세상에는 살기 위해서 고통이 고통인지도 모르고, 불평이 불평인지도 모르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반면에 등 따숩고 배부르면 만족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야하는 사람들은 더 많다. 부활을 목전에 둔 성찰의 시기에 주어진 나의 처지를 감사하며 행복은 스스로 낮아지는 것이라고 묵상을 해 본다.

 

지방에 간 짝궁이 돌아오면 친구를 찾아서 어찌 사는지 소식을 알아보고 오시라 해야겠다. 다시 커피를 파는지도 궁금하고......

 

ㅡ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마태오5,19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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