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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5) 눈 내리는 아침에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02 조회수1,045 추천수4 반대(0) 신고

 

오늘 새벽 일어나 보니 참밖은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

처음엔 눈이 온줄도 몰랐었다. 밤새 어찌나 곤히 잠들었던지 눈이 오는줄도 몰랐었다. 세수를 하고 길떠날 준비를 하던 아들이 갑자기 밖을 내다보더니 눈왔네! 아이구! 망했다! 하고 소리치는 말에 비로소 밖을 보니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지난해 8월초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와서 거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바깥 세상이 너무 좋아 유리창문을 (와이드 스크린)이라고 명명하고 그 스크린에 비칠 4계절의 풍경을 그려보았었는데 어느새 여름 가을 겨울 세 계절의 풍경을 감상했다.

이제 3월의 봄풍경을 그리고 있었는데 웬 함박눈이라니......

차가 없었을땐 눈이 오면 그래도 즐거운 마음이었는데 먼길 주행해야하는 아들때문에 눈내리는 아침이 걱정스럽기만 했다.

수백리길을 이 아침에 가야할 아들아이의 안전운행이 염려되어 바깥세상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길수만은 없는 마음이다.

어떤 사람은 출근길에 벌어질 교통대란을 걱정할 것이며 어떤 이는 스키 타러 갈 생각으로 어떤 이는 설경을 카메라에 담을 생각으로 마음 설레일  이 아침의 풍경이 이렇게 똑같은 풍경을 보면서도 받아들이는 생각은 사람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자식을 키우면서 아롱이 다롱이라고 어떤 자식은 애물단지고 어떤 자식은 재롱동이로 부모의 마음을 썩이기도 하고 기쁘게도 한다. 재롱이 자식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좋을까! 하지만 세상만사 어디 마음대로 되는가.

애물단지 때문에 터졌던 마음 달래주는 재롱이가 있어 그래도 살맛이 난다.

어느 분이 쓴 글에서 읽으니 극기하는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기쁨으로 받아들일때 그 고통이 하느님의 은총이 된다는 걸 어제인가 읽었다. 어느 수도하는 이가 자신의 십자가만 무겁고 크다는 불만에 하느님께 불평하며 기도하자 창고에 가서 마음대로 십자가를 골라가지라 해서 가보니 십자가마다 이름이 다 써있더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자기십자가가 그중에서 제일 작더란다. 그후부터는 아무 불평없이 수도에 열중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고개가 끄덕여졌는데 막상 그런 경우가 자신에게 닥치면 깜빡하고 길길이 뛰는 게 사람의 마음인것 같다.

 

그러나 놀랄 일도 화날 일도 거듭되면 면역이 생긴다.

충격요법이랄까, 먼저번보다는 덜 놀라고 그 먼저번보다는 더 덜 놀란다.

내가 즐겨 쓰는 말로 쇠의 담금질이다.

대장간에서 연장이나 칼을 만들때 뜨거운 불에 쇠를 달구었다 찬물에 담그고, 다시 달구었다 찬물에 담그는 담금질을 여러번 계속하면 그 쇠가 점점 더 단단하여져서 강한 연장이 되고 농기구가 되는것 처럼 사람의 마음도 그런 담금질을 통해 여러가지 고충들을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이 생기는 것이다.

 

창밖을 내다보니 내려다 보이는 집들의 지붕이며 옥상의 지저분한 모습들이 하얀 눈으로 소복히 덮여 참 깨끗하고 아름답다. 항아리 위에도 아이들 장난감 차에도 소복히 눈이 쌓여있다. 좀 떨어진 학교운동장은 하얀 눈밭이고 앞산의 앙상한 나무가지에도 눈꽃이 피었다.

눈에 덮인 세상을 바라보며 일상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트러불도 저렇게 하얗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눈처럼 곱게 곱게 덮어주며 살 수는 없을까 생각해본다. 용서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어떤 마음의 자세와 시각으로 바라보며 사는가에 따라 같은 사안을 대하더라도 사뭇 다르게 대처하며 느끼는 데미지도 달라지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이 너무 평탄하고 무풍지대같은 일상만을 바랐던 게 아닌가 돌이켜 본다.

하느님이 주시는 십자가라면 마땅히 받아들여야할 짐이라 생각하며 극기하는 고통속에서 그 고통을 기쁨으로 만드는 은총을 구해보는 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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