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6) 어떤 모습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03 조회수974 추천수6 반대(0) 신고

 

어제 낮이었습니다.

은행에 볼일 보러 가는데 간밤에 내린 눈으로 미끄러워 종종걸음으로 아장거리며 걷고 있는데 시장통으로 가는 길바닥에 어떤 걸인이 두다리를 고무로 끼우고 끈으로 묶은 모습으로 엎드려 가슴으로 땅을 기고 있었습니다. 천원짜리 지폐가 몇 개 들어있는 돈바구니를 밀면서  땅바닥을 힘겹게 밀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가련해 보였습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바닥은 더러 눈이 녹아 질척거리고 있는데 그 축축한 바닥이 얼마나 또 찬 냉기로 엎어진 그 남자의 몸을 써늘하게 할까 싶어 참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지갑을 꺼내려다 생각하니 레지오 비밀헌금 낼 때 쓰려고 아껴 두었던 천 원짜리 새돈 세 장이 있는게 생각나고 만 원짜리밖에 없다는 생각이 미치자 그냥 지나쳐갔지요. 아무리 불쌍해도 내가 만 원짜리를 선뜻 적선할만큼 마음이 여유롭지 못했고 아껴두었던 새 돈 천원짜리에 미련이 남아서였어요.

 

몇 발짝 걸어가다가 문득 발길을 멈추고 생각했어요.

새 돈이 무엇이관대 저 딱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간단 말인가.

다시 돌아와 천 원짜리 한 장을 넣어주는데 지나가는 사람들 아무도 관심없이 그냥들 지나쳐 가더군요. 그런 사람의 모습들을 하도 많이 보아 만성이 된 듯 했습니다.

 

비록 천 원 한 장이라도 많은 사람의 동정이 합해지면 큰 도움이 될 것도 같은데 아무도 힘을 합하는 모습은 볼 수 없더군요.

 

언젠가 앵벌이에 대해 보도한 신문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뒤엔 조직이 있고 적선된 돈은 모두 그들 배를 불려준다던 말도, 앵벌이들에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그저 밥이나 얻어먹는 정도라는 것도... .

 

또 땅을 기던 하반신 마비의 걸인중에는 위장된 경우도 있어 돌아갈 땐 벌떡 일어나 멀쩡히 걸어간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습니다.

 

나는 돈을 넣어주며 그사람의 다리에 시선이 갔습니다.

두 다리는 분명 있었습니다. 절단된 다리는 분명 아니었습니다.

 

저 사람은 정말 하반신마비일까? 아니면 위장된 장애자일까? 생각하다가 스스로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거였습니다.

그까짓 돈 천원 적선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저 사람이 설혹 두 다리가 멀쩡한 사람이라 해도 지금 저 사람은  냉기가 올라오고 질척대는 더러운 땅바닥을 기면서 낮은 자세로 임하고 있지  않은가.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저 사람은 그 노동의 댓가를 받을 자격은 충분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자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내 볼일을 보러 갈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동정을 베풀 땐 순수한 마음으로 해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돈을 벌고 싶어도 그렇게 낮은 자세로 노상에 나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정말 어쩔 수 없어서 절박한 벼랑길에 몰려서 그런 모습으로 길바닥에 엎드려 있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들이 혹 앵벌이라 해도, 그들에게 직접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도,  밥이라도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설사 또 그들이 그럴리야 없겠지만 위장된 장애자라 해도 그렇게 낮은 자세로 임하고 있을 때는 절대 외면하지 말고 아주 작은 정성이라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낮은 모습으로 낮은 자세로 임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자신이 일상에서 얼마나 알량한 자존심으로 포장된 모습으로 허세를 부리고 있는가를 되돌아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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