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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3주간 토요일 복음묵상 (2005-03-05)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05 조회수851 추천수0 반대(0) 신고

사순 제3주간 토요일 (2005-03-05)


"잘 들어라.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루가 18, 14)

 

 

 

오늘 복음이 전하는 '바리사이파 사람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 비유'는 루가

 

복음에만 기록된 특수사료입니다. 그런데 비유, 또는 예화라고 보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 직설적이고 노골적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침을 비유로 말

 

씀하실 때, 그것이 사람과 관련될 경우, 통상 '어떤 사람, 어떤 부자, 어떤

 

재판관, 어떤 과부, 어떤 여인, 한 아버지' 등의 불특정한 사람을 주인공으

 

로 선택하시는데, 오늘 비유의 주인공은 당시 유대사회의 특정 인물, 즉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그 자리에서 듣고 있는 바리사이파 사람과 세리라

 

는 점이 특이합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스스로 죄인임을 자처하는 세리

 

의 기도하는 태도와 스스로 옳다고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바리사이파 사

 

람의 기도하는 태도를 비교함으로써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위선을 노골적

 

으로 질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의인으로 자처하는 죄인이 있는가 하면, 죄인으로 자처하는 의

 

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죄인이고 누가 의인인지 그 판단은 오직 하느

 

님만이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그 판단을 하느님께 맡겼습

 

니다. 즉, "잘 들어라,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 아울러 스스로도 자

 

신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는데,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

 

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판단 기준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이는 마치 창

 

세기의 카인과 아벨의 제사를 보는 듯 합니다.(창세 4,3-5) 농부인 카인이

 

땅에서 난 곡식을, 목자였던 아벨이 양떼 가운데 맏배의 기름기를 각각 예

 

물로 드렸건만, 왜 야훼 하느님의 처사는 불공평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이 대목의 성서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훼께서는 아벨과 그가 바친 예물은 반기시고, 카인과 그가 바친 예물은

 

반기지 않으셨다."(창세 4,5)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벨과 그가 바친 예

 

물'이라는 성서구절이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야훼께서는 사람이 바치는

 

예물만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바치는 사람도 함께 받으신다는 점입니다.

 

이제 오늘 복음에서 오히려 세리를 의인으로 인정한 하느님의 처사를 이

 

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는 오늘 비유 속의 바리사이파 사람이 했던

 

것처럼 머리를 빳빳이 들고 장황하게 늘어놓는 자기소개나 자기과시도 아

 

니며, 자랑도 아닙니다. 타인을 폄하하는 고발은 더 더욱 아니죠. 기도는

 

비유 속의 세리처럼 멀찍이 서서 고개를 숙이고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는

 

자기인식이며, 그래서 처절한 통한이며, 그래서 자비를 구함입니다. 기도

 

를 들어주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하느님께서는 인간 삶의 결과만을 보

 

시지 않으십니다. 비록 그 삶의 결과가 부패와 부정 속에 허덕이고 있다하

 

더라도 그 마음과 생각을 꿰뚫어 보십니다. 세리는 자신이 하는 일 때문에

 

이미 의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로부터 갖은 업신여김을 받았습니다. 스스

 

로 겸손하다고 말하기는 쉬워도 업신여김을 참아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

 

입니다.


 

마음을 보시는 분

 

바리사이의 선행 자체는 옳았지만,

그걸 내세우려는 그의 마음자체가 문제였습니다.

예수님도 세리나 죄인들의

행위 자체를 두둔하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진심으로 자기 죄를 뉘우치고

스스로를 낮추는 그의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나도 바리사이처럼 자주 함정에 빠집니다.

적어도 그 바리사이처럼 교만하지는 않으리라 스스로 위로하면서

또 다른 식으로 바리사이의 기도를 바치곤 합니다.

그러면서도 실상은 얼마나 자주 내가 가진 어떤 것이나

내가 행한 어떤 업적과 성과 뒤에 숨으려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를 높이는 자에게 하느님은 당신 모습을 감추시지만,

우리가 스스로 낮출 때 하느님은 우리에게 내려오십니다.

세리는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할 만큼' 진심으로 통회하고 뉘우쳤습니

 

다.

 

오늘 그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주님, 누군가 판단하는 마음이 들 때
얼른 그 잣대를 제 마음에,
제 모습에 가져가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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