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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88) 화살의 방향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05 조회수1,177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5년3월5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ㅡ호세아서6,1-6;루가18,9-14ㅡ

 

           화살의 방향

                                           이순의

 

 

큐피트(=쿠피도)의 화살을 살펴 보면 하트모양의 붉은 중앙에 화살이 꽂혀있다. 신화의 인물은 벌거숭이인 미소년이 어깨에는 날개를 달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사랑의 화살을 마구 쏘아대는 장난꾸러기 어린아이라는, 헬레니즘 시대의 시인과 미술가들이 즐겨 그리던 에로스였다. 이런 모습을 이어 받은 쿠피도는 아폴로 신에게 황금화살을 쏘아 연정을 일으키고, 님프(=신화의 요정)인 다프네에게는 납화살을 쏘아 연애를 혐오하게 하는 한편, 에로스가 장난삼아 쏘는 화살은 사람 뿐만 아니라 신들의 가슴에도 상처를 내, 사랑의 괴로움을 안겨준다.

 

사순절에 우리가 성찰해야 할 덕목으로 용서나 화해, 자선이나 회개, 같은 많은 화두들이 있을 것이나 그 중에 또 성찰해야할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 사랑이다. 신화에서처럼 에로스는 사랑의 화살을 방향도 없이 마구 쏘아 댄다고 한다. 사람 뿐만 아니라 신들에게도 화살을 쏘아 그 행복한 번민에서 허우적거리게 할 뿐만 아니라 납을 달아 썪어서 곪아 터지게도 한다고 전한다. 그렇게 장난꾸러기인 사랑이 사람의 마음대로 움직여서 화살의 방향이 결정 될리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로맨스에서는 항상 정당한 가치관의 사랑을 정립하고 있다.

 

나도 큐피드의 화살에 대하여 고민한 적이 있었다. 저토록 천방지축 제 맘대로인 큐피드 화살의 방향을 어떻게 하면 옳게 판단해서 방향을 잡아야 할지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더욱 잔인한 것은 님프의 사랑을 혐오했을 만큼 사랑은 영리하고 눈치가 빠르다는 사실이다. 혼자만이 화살을 맞고 에로스에 빠져 달콤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많은 화살들이 방향도 없이 쏟아져 타인의 눈을 밝게 하고, 연애감정을 눈치 채게 한다. 그런데도 납화살이 아닌 황금화살은 제 눈이 어두워 연정이라는 바다에서 빠져 나오기를 거부한다. 그 옆에는 바로 납화살이 날아와 감미로운 연정을 썩어 문드러지게 하고 마는데도 말이다.

 

그러든지 말든지 화살은 쉬지 않고 쏘아지며, 그 화살 때문에 세상은 즐거움과 괴로움 사이에서 존속되고 있다. 젊은 처녀 총각이 황금화살을 맞아서 연정을 품고 결혼을 하고, 그 결과로 납덩이보다 더 잔인한 생존 전략을 이기며 살아가는 것이야 경축에 경축을 거듭할 일이지만, 세상살이란 큐피드 맘대로 화살을 쏜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굳이 묵상글을 쓰려고 하면서 세상의 불륜을 다룰 이유는 없고, 신앙생활 안에서 사제를 향한 큐피드의 양면성을 성찰해 보고자 한다. 큐피드 화살의 능력은 신들에게도 상처를 줄 만큼 제 맘대로라고 한다. 성품성사를 받은 사제라고 하여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교수님의 말을 빌리자면 수천 명의 학생들 중에서도 애제자는 금방 눈에 뛸 뿐만 아니라 그 제자가 수업 중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알아보신다고 한다. 그러니 사람이 신의 영역을 살으시는 사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수천의 교우들 중에서도 눈이 가는 교우가 발견 된다면 그 화살이 날아서 꽂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황금화살이 날아서 꽂히기도 바쁘게 납화살이 꽂히게 된다는 사실이 비극이다. 공공연한 말로 임자없는 신부님은 공동소유라고 하는 말도 있다. 그러다 보니 황금화살 하나에 납화살이 다발로 꽂히게 될 것이고, 그 소란은 그야말로 아우성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영성의 중심에 놓인 목자는 그 목소리 만으로도 양들의 오감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런 형편을 잘 알아서 화살의 주인공이 된 사람은 절제된 행동과 언어로 사제가 원하는 신앙의 모범을 살펴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지가 못하다. 신앙의 모범이라는 착각에 빠져서 다른 양들도 다 알아듣는 화살의 방향을 자기만 못 알아 들어버리는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 혼자만이 사제의 황금화살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은 나머지 양들의 화살이 모두 납이 되는 역활을 초래하고 만다. 주변의 모든 큐피드 화살은 곪고 썪고 냄새 나는데 그 오물통 속에서 혼자만 황금이 되어 빛나기를 원하고 있다.  그 황금의 빛으로 인하여 사제는 그 오물통 속에 빠져 나오지도 못하고 공동의 주인이 되는 처참한 꼴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혼자 즐거운 황금화살은 자신의 사랑은 순수요, 로맨스며, 진정한 사제 사랑이라고 개똥 같은 안달에 빠진다.

 

누군가를 배려해 줄 수 없는 사제 사랑은 모든 양심에 불륜이다. 내가 화살을 쏘든지, 아니면 내가 날아온 화살을 받든지, 교회공동체 안에서는 배려하는 사랑이 공존해야 한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사제나 수도자의 모든 관계를 차단하고 수족처럼 행동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 울타리에 머물다가 세월이라는 일정대로 살아버리는 사제들은 또 얼마나 다분한가?! 사제나 수도자들에게는 세속적으로 겁없이 복잡한 일에는 한 발 또는 여러 발 물러나 있는 습관적 오류들이 있다. 그것이 교구 사제들에게는 더욱 다분한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런 성향이 강한 사제나 수도자 일수록 <딱 걸렸어!> 하는 교우들이 있다. 그리고 시작되는 착각의 로맨스! 차라리 아무도 모르게 사제나 수도자를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큐피드는 그렇지가 않다고 하지를 않는가?! 황금화살은 아무데나 쏘기도 하지만 연정이 존재하는 곳에는 반드시 썩어 곪아 터질 납화살을 동행시키고 있다고 하지를 않는가?! 등잔 밑이 어두운지? 아니면 마이동풍을 결심하였는지? 룰루랄라 한 때 재미있고 즐거운 인생~! 야~! 오직 모르는 것이 있다면 그놈의 큐피드는 수시로 방향도 없이 화살이 날아간다는 사실이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게!> 그런데 그 황금화살이 나에게만 날아왔다고 장담하여 착각하는 경우다. 오로지 자기입장에서 열렬한 애정을 알아달라고, 왜 몰라주느냐고, 왜 알면서도 모르는체 하느냐고, 나불나불 하다가 그 대상에게 완전히 똥물을 끼얹어버리는 경우! 어쩌것는가?! 그 똥바가지를 뒤집어 써야 할 책임도 있는 것을......  황금화살을 받으신 사제나 수도자가 반드시 받아야 할 납화살인 것이다.

 

아마 이 사순시기에도 자신의 사랑이 누구보다 크다고, 그렇게 큰 사랑을 받아주시지 않는다고, 자신의 사랑 만큼은 진짜로 순수다고, 갈등하거나 고뇌하는 교우가 있을 것이며. 아니면 이심전심이 통하여 문란의 책임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의 사랑은 로멘스다고, 아가페냐 에로스냐를 놓고 아가페라고 장담하는, 그런 관계들도 충분히 있으실 것이다. 다 헛 말이다. 이런 주장에 화가 나는 사람은 마음 가운데 불륜이 존재 할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은 그런 화살의 방향을 알아서 배려할 수 있을 때, 겸손할 수 있을 때, 스스로의 양심이 인정할 것이다. 그 황금화살이 나에게 날아오기 보다 어려운 곳으로 방향이 전환되기를 비는,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제나 수도자가 쏘거나 받는 화살은 납화살이 단 하나도 없어야 하는, 황금화살의 방향이 정당하게 꽂혔을 때는 누구도 납화살을 쏘라고 큐피트를 자극하지 않도록. 큰 배려를 아끼지 않는 사랑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단 한점한획이라도 나 라는 존재가 개입이 된다면 이 사순시기에 성찰이 필요 할 것이다. 주님! 나는 간음 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라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만으로도 길을 찾아간다. 양들은 그 목자의 발자국만으로도 먹을 풀과 먹지 말아야 할 풀을 알아본다. 그런데 그 양들중에 자기 혼자서만 목자의 사랑을 받는다고 착각하거나 혼자서만 사랑을 독차지 하려는 양이 있다면 나머지 양들은 위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99마리 양을 두고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구하라는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반면에 99마리 양을 방치하고 마음에 드는 양 한 마리하고만 계곡에서 띵가띵가 하고 놀아서는 안된다는 역설도 포함된다. 물론 그런 목동은 없으리라고 믿는다. 그런 목동은 반드시 다음날로 해고될 것이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는 그런 경우에도 당장에 해고 되는 경우가 드물다. 성찰의 기회를 부여하는 주님의 자비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진정한 사제 사랑에 대하여, 또는 수도자 사랑에 대하여, 주님께서 배푸신 자비로 성찰의 덕을 누려야 할 것이다. 마치 자기가 교우들의 정보에 밝다고 행동하여 성직자나 수도자에게 식견을 전한 바 있다면 더욱 깊은 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내 양심이 정말로 잘한 행동이라고 인정하는가를! 사람의 마음은 자기 속도 자기가 모르면서 남의 속을 다 아는 것처럼 미주알 고주알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제를 돕는 것이 아니라 사제로 하여금 열어야 할 눈과 귀를 가리게 하고, 선입견을 심어주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하는 사람의 사랑은 진정으로 어려운 것이다. 큐피드가 아무리 제 멋대로 황금화살을 쏜다고 해도 믿음의 힘으로 어리석은 유혹을 가려야 할 것이다. 큐피드의 화살은 반드시 연정을 혐오하는 납화살을 쏘아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이 좋은 것이드라에 이어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하지를 않는가?!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존재에 대하여 눈물이 되는 사랑이 되지 않아야 한다.

 

사제나 수도자도 큐피드의 화살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그 화살이 모두 황금화살이기를 빌 뿐이다. 던지는 화살도, 받는 화살도, 납화살이 아니라 황금화살이기를 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리사이처럼 높아지기를 원하는 사람 보다 세리처럼 낮아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할 것이다. 나는 우리의 가톨릭을 사랑하고, 교형자매님들을 사랑하며, 모든 수도자와 모든 성직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순시기에 성찰해야 할 화두 하나를 사랑으로 정해 본다. 교회 공동체에 관한 묵상만을 썼지만 남편과 아이들, 시댁과 친정, 직장과 상사, 또는 나만의 연정도 있을 것이고, 우리 각자가 사순시기에 사랑을 화두로 놓고 진정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랑합니다.

 

주님께서는 찬미를 받으소서!

 

ㅡ잘 들어라.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 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 루가18,1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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