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8.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하여...
작성자박미라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06 조회수948 추천수5 반대(0) 신고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떻게 해야 그분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분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아주 작고 더러운 점 하나인 저"를 들여다보려 하였지만
도저히 들여다 볼 수가 없었습니다.

살아오는 모든 순간에 자신을 찾으려 하지 않고 꼭꼭 싸매며
밖에 있는 것들만 바라보며 살아왔기에 그 껍질도 단단하여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조차도 뜨여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하여 많은 애를 쓴 끝에야 그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약점, 결점들을 하나하나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제게 있던 "안젤라 성녀"에 관한 책에
그분이 자신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자신의 약점, 결점들을 알아내어
나열해 놓은 것을 보고 저도 그 흉내를 내보았습니다.

그 일도 처음에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계속 애를 쓰다 보니
조금씩 조금씩 저 자신에 대하여 알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약점, 결점, 나쁜 습관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말이 너무 많고, 무슨 일에나 결단력이 없고,
끈기가 없어 무슨 일이나 끝까지 하는 일이 없고,
남에게 의지하기를 좋아하여 자기 스스로 책임지고 하는 일이 하나도 없고,
너무나도 게으르고, 군것질하기를 좋아하고, 남을 비판하기를 좋아하고,
자기만 잘났다고 생각하여 남을 업신여기고, 화를 잘 내고.....등 등.
스무 가지도 더되는 것들을 겨우 알아내어 적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에 대하여 더 많이 알아내려 애를 쓰며
성인들의 전기를 읽어보고, 그분들이 직접 쓴 글을 읽어보고,
참고가 될 만한 글이면 닥치는 대로 읽던 중에 아주 오래된 책에서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것도 죄다"라는 구절을 읽게 되었는데,
그 말씀은 제게 아주 큰 충격을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제 몸을 만지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때까지 저는 그것이 전혀 죄가 된다고 생각지 않았기에
고해성사를 봐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살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버지께 딱 두 번 회초리로 매를 맞았는데,
한 번은 초등 학교 때에 외딴 집에 살면서
건너편에 하나밖에 없는 친구와 싸워서 말을 하지 않았을 때였고,

또 한 번은 막 사춘기에 접어들어
'나 스스로의 동의 없이 세례를 받았다'는 것과
'무조건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불만을 갖고
"죄도 없는데 무엇 하러 고해 성사는 봐야 한담!" 하고 불평하며
일부러 부활 판공 때 고해성사를 보지 않았을 때(1968년)였습니다.

그 후로는 판공성사 때마다 의무적으로 고해 성사를 빼먹지 않고 잘 보았었는데,
1972년 12월 성탄 판공성사를 보아야 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자신의 몸을 만진 일을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래서 그해 판공성사 때에 고백을 하지 못하고,
이듬해 사순절에도 일부러 날을 잡아 본당에 찾아갔지만
너무나도 부끄러워서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주십사고
말씀도 드려보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부활 대축일에 공소 예절을 하고 다른 곳에 있는
오라버니 신부에게 갔는데, "너 미사 참례했니?" 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니오" 라고 했더니, 오라버니는 두 말도 없이 성당으로 갔습니다.
제게 성체를 영하게 해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차마 "저 성체 영할 수 없어요" 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아
오라버니 하는 대로 따라가서 간단한 예절에 참례하고 성체를 영했습니다.
기쁘고 감사해야 할 영성체가 그렇게 곤혹스럽고 괴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고해성사를 보지 않은 데다가 하나를 더 얹어
너무나도 무거운 짐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라버니에게 고해 성사를 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차마 부끄러워 할 수가 없었고,
청주에서도 할까 했지만 하지 못하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드디어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이 되었습니다.
장호원으로 미사 참례하러 갈 기회가 생겨 언니와 함께 가서
고해 성사를 보았습니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정말 날아갈 듯이 기뻤습니다.
얼마나 속이 시원하든지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 것 같다'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입니다.....  

자신 안에서 죄 있음을 발견한 죄인은 너무나도 죄송하고 송구스러워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 라고 말씀드리게 되는데
자비로우신 주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을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그분은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코 2,17)
고 말씀하시는 분이시며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고 당신께 도우심을 구하는 사람들을
친히 부르시어 당신과 같이 "참 사람"이 되게 하여주시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우리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자주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잔치에 온 신랑과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슬퍼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곧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 때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낡은 옷에다 새 천 조각을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맑은 옷이 새 천 조각에 캥기어 더 찢어지게 된다.
또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서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둘 다 보존된다." 마태오 9, 14∼17


잔치에 온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음식을 먹고 마시며 함께 즐기지만
신랑을 빼앗기면 그들도 "단식"하게 될 것이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제자"가 되고자 "사람을 낚는 사람"이 되고자 나서려고 하였지만
자신이 너무나도 더럽고 부족하기만 하여
감히 그분 앞에 나설 수조차 없는 처지이기에
제가 죄인임을 느끼는 그 때부터 제가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에서부터
"극기"와 "단식"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기 싫어서 미루고 또 미루며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을 때
할 수 없이 하던 설거지나 청소를 열심히 하고,
부모님께서 하시던 밭일도 틈틈이 도와드리고,
매일 매일 먹던 사탕이나 빵 등. 좋아하던 군것질을 줄이고
일부러 쓴 오이 꼭지를 먹으며 제 딴에는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너무나도 갑자기 무리를 하여 "극기"와 "단식"을 한 결과
계속 편하게 쉬기만 하던 육신이 놀랐는지,
그 해 5월에는 심한 급성 신장염에 걸려 단백뇨와 혈뇨로 인해
소변이 완전히 새까맣게 되고 몸이 뚱뚱 붓고 황달까지 와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병은 9개월 동안 치료를 해서야 소변이 정상이 되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금만 피곤하면 몸이 붓게 하며
늘 제 몸 안에서 그 때의 일을 상기시켜 줍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둘 다 보존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전에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만을 바라보고 살 때에는
아무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남들이 얻으려고 애를 쓰는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기에
아주 좋다고 하는 사람들의 2배도 더 되는 지능지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학교 다닐 때에 한 번도 "1 등"을 해본 적도 없고,
중학교 입학 시험에도 떨어지고,
심지어는 고등학교 입학 시험 날짜를 잊어버려 시험도 안보고
실업계인 상업학교에 들어갔으며,
대학 입학 시험은커녕 예비고사에서도 떨어지고,
상업학교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취직을 해보려는 마음조차도 갖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참 행복", "나의 목적", "완전한 사람", "성인"이라는
새로운 흥밋거리 앞에서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 이 되었습니다.

이전의 모든 사고와는 반대되는 '새로운 사고' 를 갖게 되었으며,
이전의 행동과는 반대되는  '새로운 행동' 을 하게 되었습니다.....


굿뉴스 가족님!

창세기 2장 25절에 보면
"아담 내외는 알몸이면서도 서로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고 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 까닭은
아직 죄가 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자신의 발가벗은 몸을 보이기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운 줄 몰랐'던 아담과 하와가
자신의 몸이 부끄러워 무화가 나뭇잎을 엮어 앞을 가리운 까닭이 무엇입니까?

자신들을 내신 주님보다도 더 많이 알고 싶어하는 교만한 마음으로
엄하게 금하신 실과를 따먹은 후에 그렇게 되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 만드신 고귀한 우리....

부끄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나 자신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감싸고... 자신의 안에 들어있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내 보이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한 번 해 보십시오!

얼마나 자유스러워지는 지를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다 내 보이면 우리 모두가 다 똑같음 알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빚어 만드시고
당신의 입깁을 불어 넣어 살게 하신
존귀한 자신과 이웃의 모습을 바로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님들! 행복하시기를.....

또한, 어린아이와 같은 자유인이 되시어
주님의 사랑을 듬뿍받는 예쁜 아들 딸이 되시기를 바라며
사순 제4주일 아침 인사를 올립니다.....

사순 제 4주일을 맞이한 오늘!

이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나요?

자신도 들여다 볼 수 없었던 자신의 마음 그 속에 어떤 것이 들어 있는 지
아무도 끄집어 낼 수가 없습니다.... 오직 자신 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우리 모두를 내신 분이 바로 자비로우신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시니
그분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무엇이며 또 우리가 다르다 한들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는 이곳에서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은 다만 하나!

나 스스로의 비참함을 느끼고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하는 고백을 듣는 것입니다.

그 한 마디 만으로 그분은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내 안의 온갖 더러움을 없애는 길. 즉,
자신이 죄인임을 슬퍼하는 사람이 걸어가는 "십자가의 길"
나를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