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89)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이유다.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06 조회수1,209 추천수15 반대(0) 신고

2005년3월6일 사순 제4주일ㅡ사무엘 상권16,1.6-7.10-13ㄱ;에페소서5,8-14;요한9,1-41ㅡ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이유다.

                                           이순의

 

 

듣는 귀가 어두운 나는 성당에 가면 앉는 좌석이 일정하다. 스피커의 방향도 익숙해야 하고 신부님의 음성이 방향에 따라 울리는 각도가 달라지면 매우 어려움을 격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금총석이 따로 없고 내가 항상 앉아있는 좌석이 금총석이다. 누군가 그 좌석에 앉아 있지 않기를 비는 마음도 함께 성당에 간다. 그런데 미사 시작 성가가 울려 퍼질 때에야 겨우 도착을 하다보니 연속 세 주를 2층에 앉아야 했다.

 

그래서 오늘은 좀 더 서둘러 보았다. 만족이었다. 내가 앉아야 하는 좌석은 복사들이 대기하는 좌석이기 때문에 시작하기 전에만 도착하면 어지간 해서는 그 좌석에 앉을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따라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고개를 이리저리 삐죽거려 보아도 키가 작으신 신부님 탓도 있고, 더 키가 작은 내 탓도 있지만 성당안에 교우들이 꽉꽉 들어 찾다는 사실이 맨 뒷좌석의 내 금총석에서 도무지 제대를 볼 수가 없었다.

 

새로 신부님께서 오시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전해 들었다. 내가 미사를 궐하고 있었던 때이므로 새로 오신 신부님의 형편이 말이 아니신 분이 오신줄 알았다. 들리는 소식인즉 임기가 많이 남았다고 생각되는 젊고 싱싱한 열정의 신부님께서 교우들의 바람과 다르게 갑자기 가시고, 아파서 병중에 계시는 노신부님께서 오셔서 활성화에 지장을 초래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하고 있다가....

 

어느날 부터 미사 참례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귀가 어두운 나에게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속이 후련하였고, 무엇보다 필기하는 강론의 내용이 짱인 것이다. <우와~! 좋네!> 하는 마음으로 신부님을 뵈오니 병색이 짙고 절룩거리시는데다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전례의 절차를 모두 생략해 버린 것이다. 당연히 미사 시간은 단축되었고..... 그런데 들리는 소문은 노신부님께서는 사목 방침도 간단명료에 단축절제, 그리고 축소절약이시라고 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활발한 활동 중심의 신부님께서 가신 후유증으로 성당이 텡 비었다고 교우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늘 내가 해 오던 말이지만 교회 공동체는 사제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섭리하시므로 신부님에 따라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의외로 교우들은 신부님에 따라서 마음을 두기 때문에 가시고 오시는 시기에 마음들이 접혔다가 펴졌다가 하는 것이다. 그 덕택으로 내가 미사 시작성가가 울려퍼진 뒤에 성당에 입실하여도 나의 금총석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얼마전 부터 그 금총석이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가 사제로 인하여 움직여 진다면 지금도 좌석이 훌렁훌렁 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 미사에는 도무지 신부님의 얼굴을 뵐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거양성체에 눈을 두지 못하고 깨금발을 딛어서 겨우 신부님의 머리만 뵙고 말았다. 제대 위에서 빵이 살로 변화되고, 술이 피로 변화되는 신비의 축성을 볼 수 없었으니, 참례의 제 맛이 달지를 못 했다. 다음 교중 미사에는 좀 더 일찍 가서 예전처럼 앞 좌석으로 옮겨야 할 것 같다.

 

나는 미사 중에 제대 위에서 벌어지는 잔치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다. 신부님에 따라서 빵과 술을 놓는 모습이 다 다를 뿐만 아니라, 그 변화의 축성도 어느날은 정말로 살과 피를 당신의 손으로 섭리를 이루려는 정성이기도 하시지만 어느날은 그냥 습관적인 사제의 능력에 의존하시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설거지를 충실히 하시기도 하고, 대충 하시기도 하고, 또 복사들이 어떻게 하는지, 독서 봉사자들은 또 누구인지? 미사 내내 제대 위에서 벌어지는 축성의 은총을 만끽하는 사람이 나다.

 

그런데 오늘처럼 제대를 본적도 없이 미사를 드리고 오는 날에는 몹시 떨떠름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미사중에 사람의 마음들을 생각하는 분심이 들었다.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이 간사했는지를! 파리가 날 것 같다던 교중미사에 이렇게 많은 교우들이 어디서 쏟아져 나왔을까? 나의 믿음대로 교회 공동체는 사제에 따라서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섭리하시는 절대적인 힘으로 교우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각각 임하셨다는 증거이다. 그러고 보니 역시 신부님의 강론은 건강하신 어떤 사제보다도 강하게 울려 퍼지고 계신다.

 

귀가 어두운 내 마음에 쩌렁쩌렁 다가와 안착을 하시는 것이다. 걷는 것도 불편하신 신부님께도 특별한 힘이 있으신 것이다. 강론 말씀! 한 번 듣고, 두 번 듣고..... 파고드는 울림이 한가한 성당 안으로 교우들의 마음을 인도한 것이다. 왜 사람들은 좀 더 깊은 너그러움을 동행하지 못 하는 것일까?! 성당이 한적했던 이유는 새로오신 신부님의 탓이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이유였다. 익숙한 자기의 마음을 펴지 못하고 오므린 결과였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이 펴지도록 인내하시며 서서히 묵묵히 제 자리에서 머물러 계신분은 신부님이셨다. 

 

오늘의 강론 전문을 옮겨 본다.

 

ㅡ하느님의 눈은 사람의 눈과 같지 않습니다. 달라도 엄청 다릅니다. 어른의 눈과 아이의 눈처럼 다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눈빛을 알아 보아야 합니다. 1독서에서는 이스라엘의 왕에게 기름을 부으라 할 때 하느님께서 알아보는 사람을 알아 보지 못 합니다. 몇 번의 실수 끝에 다윗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예언자 사무엘이 다윗을 알아보지 못하는데 범인인 우리는 말 할 것도 없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속이지만 우리는 서로서로 우리를 속입니다......딱 한 줄을 놓쳤음.중요한 말씀이셨는데......

 

세상에는 여러 소경이 있습니다. 육신의 눈이 어두운 사람만 소경이라고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돈에 미친 사람은 돈만 보고, 권력에 미친 사람은 권력만 쫒아 살게 되고, 여자에 미친 사람은 여자만 보게 되며, 도박에 미친 사람은 화투장만 볼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소경일 수 밖에 없습니다....예시1ㅡ신부님께서 아시는 선배님의 외도로 파탄난 가정 이야기....마음이 닫히면 보이지 않고, 보여도 헛된 것만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세상을 옳게 보고 있다고 합니다.

 

복음에서는 태중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십니다. 흙을 게어 발라줌으로 죽은 인생이 절망의 어둠에서 구원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능력의 위대함에 머리를 숙입니다. 가슴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어둠에 촛점을 두고, 안식일에 촛점을 둡니다. 눈 먼 사람은 예수님께서 메시아 라고 고백하는데 눈 뜬 사람들은 예수님을 죄인 취급하고 있습니다. 과연 누가 눈 먼 사람입니까?....예시2ㅡ신부님께서 단식을 경험한 후에 맛에 대하여 새롭게 밝아진 경험담ㅡ여러 날을 굶어 속을 비워 본 뒤에 무엇이 맛이 있었는지 맛이 없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음식에 눈을 뜬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눈을 뜨고 사순시기를 보내야 합니다. 눈을 뜹시다. 지금 잘 보인다고 착각하지 말고, 사순시기는 눈을 뜸으로서 죄를 벗는 시기입니다.ㅡ

 

작은 체구의 노사제의 강론은 제대도 보이지 않는 맨 뒷좌석의 내 귀에까지 오셔서 외치고 계셨다. 그러니 앞좌석에 앉은 교형자매님들의 귀에는 얼마나 강건한 의지로 선포 되었을 것인가?! 한국의 교구사제들은 일정한 임기를 두고 이동하신다. 신부님들은 그 고충들을 나름대로 격으며 살아야만 한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교우들조차 각자가 지닌 혼란을 이동 시기에 치르기 때문이다. 사제들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새 임지에 임하는 것 보다 떠날 때가 더 힘들다고 한다. 특히 젊은 사제들 보다 노사제들이 더 힘들다고 한다. 우리가 교회의 제도권 안에 스스로 머무는 신자로서 가시고 오시는 사제들에 대하여 마음을 펴는 것도 신앙의 성숙이다.

 

교회 공동체는 신부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다. 교회 공동체의 주인은 사제가 아니라 교형자매님들이다. 교회 공동체의 주인인 신자들은 성직자의 힘이 되어야 한다. 그분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그분들이 본당에 머무는 이유가, 바로 나 자신의 구원을 돕기 위함이다. 성당안이 한가했던 이유는 결코 신부님의 탓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간사한 탓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또 이런 사실을 망각하게 될 것이고...... 나는 평화의 인사를 할 때면 먼저 제대를 향해 <신부님 건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우리 본당에, 아니면 내가 소속 된 어느 본당이든지, 미사를 집전하시는 모든 사제를 향해, 변함없이 평화의 첫째 몫으로 인사를 올려왔고, 올릴 것이다.

 

귀가 어두운 내가 다시 좌석을 앞으로 옮기려면 적응해야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나는 제대 위에서 빵과 술이 살과 피로 변환되는 순간의 믿음을 확인해야 한다. 사제의 손이 존재하는 오직 한 이유는 그 성찬의 기적에 있기 때문이다. ㅡ아멘ㅡ  

 

ㅡ예수께서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 믿습니다." 하며 그는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렸다. 요한9,37-38ㅡ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