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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의 복음 묵상기도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09 조회수1,011 추천수2 반대(0) 신고
 묵상기도  
 시작기도 : ▷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요한 5,17-30

주 예수님,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을 저희에게 보내주신
그 사랑에 저를
열어 드립니다.

거룩한 주님의 탄생부터
나자렛의 일상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당신 생명을 바쳐 십자가
죽으시기까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신 당신을 저희가
사랑하오니 주님을 따르는 은총을
이 기도를 통하여 내려주소서.
아멘

 


 오늘의 복음 : 사순 제4주간 수요일(요한 5,17-30)

(필자가 묵상한 구절을 중심으로 싣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유다인들에

 

게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

 

하셨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예수를 죽이려는 마음을 더욱 굳혔다. 예수

 

께서 안식일법을 어기셨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하시며

 

자기를 하느님과 같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유다인들에

 

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할 뿐이지 무슨 일이나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아버지

 

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할 따름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친히 하시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보여주신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을 시켜

 

이보다 더 큰 일도 보여주실 것이다. 그것을 보면 너희는 놀랄 것이다. 아

 

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듯이 아들도 살리고 싶은 사람

 

들은 살릴 것이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친히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

 

권한을 모두 아들에게 맡기셔서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존경하듯이 아들도

 

존경하게 하셨다. 아들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존경하지 않는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

 

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요한 5,17­-24ㄱ)

 영적권고 : 하느님 보여주기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친히 하시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보여주신다."(요한 5,20)

예수님의 관심사는 오직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생

 

각과 말씀과 행동은 그대로 하느님을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말

 

씀을 듣고 그대로 따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처럼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일생을 살면서 찾아나서야 할 일도 바로

 

하느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미 세례 때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해 죽고

 

하느님의 뜻만을 따라 살기 위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

 

느님의 뜻을 묻고 찾으며 그에 비추어 자신을 반성하고 끊임없이 노력하

 

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보다 내 뜻, 나의 계획과 집착을

 

고집하며 살아왔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올 사순절에는 예수님 대신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싶습니다. 나의 이기심과 자존심, 낡은 생활방식

 

을 말입니다.

<잠시 묵상 후 나의 실천 결정하기> : ☞ 사순 제4주간 동안은 가난의 길

 

을 묵상하십니다.

앞으로 1주일간 매일 실천할 바를 선택하여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합니다.

싫어하는 반찬이 있어도 맛있게 먹습니다.

냉담하고 있는 가족이 있다면 그와 신앙에 대해 대화합니다.

오늘은 친구와 술을 마시는 대신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십니다.

만나는 사람에게 밝게 웃으며 인사합니다.

나의 실천:<주님께 도움을 청하며 기도하기>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세운 결심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당신께 마음을 엽

 

니다.

주님, 이렇게 늘 함께 하시니 감사합니다.

 

 <야곱과 함께하는 묵상> :  † 선재(先在)하신 하느님 † 

주님은 어제복음에서 베짜다 연못에 누워
있던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
병자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자기가 누워
있었던 요를 걷어들고 걸어갔습니다. 그
런데 그 날은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유다인들은 그가 안식일에 해서
는 안될 일을 하고 있다고 꾸짖었습니다. 그들은 후에 그 병자에게
치유하고 명령 사람이 예수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유다인들은 주님이 안식일을 범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
러나 주님은 아버지께서 일하기 때문에 나도 일한다고 당당하게 말
씀하셨습니다.

오늘복음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아들이라는
단어를 10번, 아버지라는 단어를 7번이나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
다. 참고로 구약성서에서는 아버지라는 단어는 15번 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 오늘복음에서만 7번을 사용했다는 것은 주님께서 오늘은
단단히 마음을 먹고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당신의 친아버지라
고 선언하시는 매우 웅장한 복음임을 묵상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님의 선언을 듣고 있던 유다인들은 주님을 신성모독이라
고 판단하고서는 매우 분노하여 주님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기 시작
합니다.

I. 아버지와 아들(신성 선언)

안식일에 병자 치유 등을 포함한 주님의 모든 행적에 사사건건 시비
를 거는 유다인에게 주님이 오늘 매우 단호하게 또 반복적으로 하느
님과 아들의 관계, 주님의 신성을 선언하십니다. 다시말하면 하느님
을 당신의 친아버지라고 말씀하셨으며, 반대로 유다인들은 계속 분
노의 극을 달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신성에 대한 말씀은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즉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개신교 성경 참조)"고 선언하셨습니다. "정
말...진실로 진실로"(아멘 아멘)라는 표현은 복음서에서 주님께서 매
우 중요한 사실을 이야기하실 때에 사용하시는 표현입니다. 이 말은
앞으로 주님께서 하실 말씀이 매우 중요하고 확실한 것이라는 사실
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께서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모든 일을 공동으로 하고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즉, 주님은 아버지와 관계가 없는 일을 하지 않고 아버지가 하시는
일만을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아버지의 뜻
을 따르고 순종하는 충직한 아들이라는 관계성을 선언하는 것입니
다. 그러면서 또 동시에 주님은 아버지와 동등된 분이라는 것을 강
조하셨습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아들도 행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기는 하지만, 자
신은 하느님과 동등된 신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
다. 주님은 자신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지만, 자신의 신성도 간과
하면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자신과 하느님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를 말해주
고 있습니다. 주님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이 하
시는 모든 일을 보여주신다고 말합니다. 하느님과 아들이 동등되지
않다면 하느님께서는 자기 계획이나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줄 필요
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주님을 같은 동반자로 인정하시
고 서로 자기 계획과 일을 나누고 의논하였습니다. 주님은 하느님께
서 지금까지 당신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에게 모두 보여주셨으며, 앞
으로는 더 큰 일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아들은 앞
으로 더 큰 일도 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
놀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리하여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존경
하듯이 아들도 존경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 부활과 심판

하느님은 죽은 자들에게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주
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생명의 창조자시며, 죽은 자들
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은 아버지 뿐 아니라 당신 자신도 당신께서 원하는 자들을 살릴 권
한과 능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당신 스스로를 하느님
과 동동한 위상에 놓는 발언이었기 때문에, 당시 유다인들에게는 충
격적인 발언이었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들을 살리시고, 마
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당시 유다인들은 오직 하느님만이 인류를 심판하실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 앞에서
말씀하시기를 하느님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모든 심판을
아들에게 맡겼다고 말합니다. 또한 하느님은 주님에게 심판을 행사
할 권한을 주심으로 사람들이 주님께 존경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행위와 죄를 심판할 권한을 가진 분을 두려워하고 존
경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하느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세상
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당신을 공경하는 자는 결국 당신을
보내신 하느님을 공경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
로 주님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주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
을 멸시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사신을 거절하는 일은 결국
그를 모든 나라와 통치자를 멸시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님의 발언들은 당시 유다인들에게는 가히 충격적인 발언
이었습니다.

주님은 다시 한 번 "정말로(진실로 진실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
은 앞으로 주님께서 하실 말씀이 중요하며 확실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말을 듣고 또 당신을 보내신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심판을 받지 않으
며 이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으로 옮겼다고 선언하고 있습
니다. 하느님은 주님을 받아들이는 자에게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리를 주셨습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하느님을 믿고 주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은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사람들
을 심판하실 때에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심판에서 제외시켜 주실 것
입니다. 우리의 최종 구원과 심판은 역사의 마지막에 가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에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될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미 심판을 이기고
최후의 승리와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은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
느님은 한번 구원하신 사람들을 다시 버리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느님과 동등하신 심판자이시며, 자기를 믿는 사람들을 죽
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권능을 가지신 하느님이십니다.

II. 생명과 심판의 권한을 가지신 예수님

1. 듣는 자는 살아난다.

주님은 다시 한번 "정말 잘 들어 두어라"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
다. 이 말은 뒤에 나오는 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고 이미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때가 오면 죽은
이들이 하느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것이며 그 음성을 들은 이들은
살아날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때이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때에 "하느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만일 이 구절에서 "그때"라는 언급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구절이 최후의 부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러나 복음에서 주님이 언급하고 있는 일은 최후의 심판이
아니라 바로 "지금"(그 때)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바로 지금 사람들의 생명을 살려 주시는 일을 하고 계십니
다. 바로 지금 주님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의 영혼
을 살려 주시고 계십니다.

주님은 "아들의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
기에서 "듣는다"는 말은 단순히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기
쁜 마음으로 듣고 그것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당신을 가리
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스스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명칭은 매우
특별한 명칭이었습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을 부를 때에 가장 많이 사
용한 명칭은 "아들"이였습니다. 그리고 가끔 "인자"라는 명칭이 사용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복음에서와 같이 주님께서 당신을 직접 "하
느님의 아들"이라고 10번을 부르고 있는데, 이는 주님께서 스스로
하느님의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생명과 심판하는 권한이 주어짐

주님은 "아버지께서 생명의 근원이신 것처럼 아들도 생명의 근원이
되게 하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느님 속에 생명이 있는 것
처럼, 아들에게도 생명이 있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성서에서는 분명히 생명이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하
고 있습니다. 인간의 코에 숨(생기)를 불어넣어 주신 분은 하느님이
셨습니다(창세 2,7). 하느님은 모든 생명을 만드셨으며, 또 존재할
수 있도록 보존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
의 근원은 하느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이미 모두 믿고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러한 생명
의 힘이 자신에게도 주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느님 뿐
만아니라 당신 자신에게도 생명을 부여하고 살려내는 힘이 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세상의 생명들을 살리거나 죽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신성
을 모독하는 충격적인 발언이었습니다.

또한 주님은 하느님께서 "아버지께서는 또한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
한을 주셨다. 그는 사람의 아들이기 때문이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구약 성서는 하느님만이 우리 모든 행위를 심판하실 분이라고 말하
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이(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시며(창세 18,25), 따라서 성서는 하느님을 심판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재판관들이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대신해서
사람들을 심판하는 권한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은 재판관들에게 하느님을 대신해서 공정한 재판을 하라고 가르쳤
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에 있을 최후의 심판만은 오직 하느님
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또 다시 유다인들에게 충격적인 발언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마지막에 행해질 심판권이 당신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선언
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살리는 권한 뿐만아니라, 인간을 심판
할 권한도 자신에게 위임되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는 사
람의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한을 주
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주님은 육체를 입고 오셔서 죄인들
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죄인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자신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
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심판
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다니엘은 오래 전에 환상을 통해서 "사람
의 모습을 한 이(사람의 아들)"가 하느님으로부터 주권(모든 권세)를
위임받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다니엘은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권과 영화와 나라가 그에게 맡겨지고 인종과 말이 다
른 뭇 백성들의 섬김을 받게 되었다. 그의 주권은 스러지지 아니하
고 영원히 갈 것이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하리라." (다니
7,14).

3.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
이러한 주장은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신성을 모독하는 충격적인 발
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분노하여 주님을 제거하려고 했습
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향해 "내 말에 놀라지 마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주님은 장차 마지막 때에 무덤 속에 있는 죽은 자들이 '사
람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올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
은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이 아들의 음성을 듣게 되면 모두 다시 살
아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부활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심판의 부활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 때의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그리고 악을 행한 자는 "단죄(심판)의 부활"로 주님 앞에 나
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복음 묵상의 마무리입니다.
인간의 구원이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에 의한 공과에 달려 있지 않
고, 주님에 대한 믿음에 달려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부
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믿음에 달려 있다'라
는 표현은 '선한 행동을 반드시 수반하는 믿음'임을 잊지 말아야 하
겠습니다. 어떤 종교는 믿기만 하면 그 후에 아무리 나쁜 짓을 하더
라고 일단 구원받은 사람이기에 ...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궤변들
을 털어 놓는 경우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의 사람
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기에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는 가정을 두
고 하는 말입니다. 만약에 하느님과의 만남 이후에 나쁜 짓을 한다
면?
그건 에덴동산에서 그 결과를 이미 보았지 않습니까. 하느님의 아들
아담은 하와와 뱀에 의해 죄를 짓고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파기당하
고 쫓겨납니다. 아시지요??? 구원행 티켓을 이미 받았다는 사람들
은 그것이 가짜표가 아닌지요? 

그래서 주님의 오늘복음의 마지막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
습니다. "선을 행한 사람"은 주님을 믿고 성령을 통해 죄와 세상과
싸워 승리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말하며, 그리고 "악을 행한 사
람"은 주님을 거부하고 자기 힘으로 살다가 결국 자기 죄에 걸려 넘
어진 사람들을 말합니다. 주님은 생명과 심판의 권한을 가진 분으로
서, 마지막 날에 악인은 단죄하시고 올바른 신자들은 생명의 부활인
하늘나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이 마지막날이라
면 어디로 갈 것 같습니까? 그날은 도둑같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아
직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고 딴전을 부리다가 나중에 후회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말씀봉사: 두올 / 편집 : 심 바오로]



 <요한과 함께하는 묵상> : † 누가 이토록 아버지의 뜻을 받드는가? †

오늘 복음의 첫머리에 "내 아버지께서 언
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
다"(5,17)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
선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이 어제 복음에서 안식일에 38년 동안 앓던 병자를 치유하여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게 하심으로써 안식일 금지규정을 어기신 것
에 대한 예수님의 해명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버지는 유다인들이 유일신으로 섬기는 하느님 야훼이며,
궁극적으로는 예수의 아버지이시다. 안식일에 관한 율법을 내리신
아버지께서 안식일에도 일하시므로 아들인 예수께서도 일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들도 자동적으로 안식일 율법 위에 서게 되는 것
이다. 예수께서는 그 근거를 아버지와의 철저한 일치성에 두고 있
다.
즉 예수님은 자신을 아들로서 아버지와의 관계를 밝히고, 일치성으
로 하느님과 같다는 주장을 하시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변호와 자세
한 설명이 가르침으로 이어진다.(5,19-47)

우리는 요한복음이 공관복음과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안다. 공관복
음서가 예수의 사건들을 연대기적으로 보도하는 방식을 통하여 지
상 예수에서 메시아 그리스도로 향하는 신학(상향 그리스도론)을 전
개하고 있는 반면, 요한복음은 전승된 사료들을 심층적으로 분석,
명상, 해석하여 하느님의 아들에서 예수로 향하는 신학(하향 그리스
도론)을 전개하고 있다. 물론 상향 그리스도론이나 하향그리스도론
이나 출발점만 다른 것이고 실상은 같은 것이다. 나아가 요한복음은
예수가 육화(肉化)된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이 말씀은 이미 세상창
조 이전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는 선재(先在) 그리스도론을 펴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요한복음서는 그리스도교 신학에 있어서 둘도 없는 중
요한 자료이다. 여기서 신학은 그리스도론, 삼위일체론(구원경륜적
삼위일체론과 내재적 삼위일체론), 성령론, 교회론, 성사론 등 다양
한 분야의 신비를 조명하게 된다. 물론 더 중요한 자료는 두말할 필
요 없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세상은 예수께서 보여 주신 그
만큼 하느님에 대하여 알고 있으며, 복음사가는 그만큼을 성령의 감
도에 의하여 기록한 것이다.

예수님 스스로가 하느님과 같다는 발언은 유대인들에게 천지개벽할
일이었고, 이는 곧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중죄였다. 예수를 신앙하는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언명이지만 '하느님은 오직 야훼 한 분
뿐이다'는 철저한 유일신관을 가진 유다인들에게는 용납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예수의 십자가 죽음의 외적원인이 율법을 어긴 범법
자로서가 아니라, 신성모독이라는 독성죄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
이 아님을 우리는 이 자리에서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
동은 하느님 아버지의 위탁에 의한 것이었다. 아들은 하느님 아버지
스스로의 말씀이며 계시(啓示)이다. 이 말씀은 병자를 낫게 하고, 죽
음을 살려 생명을 주는 말씀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기 때문이
다.

하느님의 말씀은 이렇게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나
동시에 하느님의 말씀은 '금(禁)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하느님 말
씀의 이 두 작용은 서로 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 말씀 앞
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순명(順命), 아니면 항명(抗命) 뿐이다.
하지만 '행(行)하라는 말씀'이 항상 먼저이고 그 다음이 '금(禁)하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말씀과 계명을 통하여,
비록 그것이 내용상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원
하시는 것은 단 한가지이다. 그것은 바로 온전한 우리 자신이다. 이
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에게 원하신 것과 같은 것이
다.............◆◆◆

[말씀묵상 : 박상대 신부 I 편집 : 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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