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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4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2005-03-11)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11 조회수1,113 추천수4 반대(0) 신고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면서 큰 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있으며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정녕 따로 계신다. 너희는 그분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은 나를 보내셨다."(요한 7, 28-29)

 
 
비교적 많은 분량의 가르침과 사건들을 담고 있는 공관복음은 서술 구조
 
상 예수님의 전체 공생활 기간을 약 1년 조금 넘게 설정하고 있으며, 아울
 
러 예수님의 활동시기와 활동무대를 예수님의 유년시절(베들레헴, 나자
 
렛, 예루살렘) - 예수의 세례(요르단강) - 갈릴래아 활동기(갈릴래아, 시로
 
페니키아, 골란, 데카폴리스 지방) - 예루살렘 상경기(데카폴리스, 베레아
 
지방, 사마리아 접경지역) - 예루살렘 활동기(유다지방, 예루살렘)의 순서
 
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의 수난 직전의 마지막 가
 
르침과 죽음과 부활사건(13-21장)을 제외한 비교적 적은 분량을 가지고
 
예수님의 순수 공생활 기간을 꼬박 3년으로 나누어 보도하고 있는 점은 요
 
한복음만이 가지는 특징입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의 활동무대가 예루살
 
렘(유다지방)에서 갈릴래아로,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자주 바뀌는
 
것도 요한복음의 특징인데, 그 사이에 사마리아 지방도 끼어있습니다. 요
 
한복음만의 이러한 특징들은 복음서 전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늘 주의를
 
요하는 부분입니다.

오늘 복음은 유다인의 3대 명절 중의 하나인 초막절을 맞아 상경하신 예수
 
께서 초막절 기간(7일) 중에 성전에서 가르치신 내용을 전해 주고 있는데,
 
편의상 초막절을 앞두고 아직 갈릴래아 지방에서 있었던 예수와 형제들간
 
의 대화부분(7,3-9)을 삭제한 채로 오늘 복음은 구성되었습니다. 우리
 
가 그날의 복음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항상 전후 문맥을 살펴보아야 하
 
는데, 오늘 복음은 앞서간 6장의 내용보다는 5장과의 직접적인 연결을 요
 
구합니다. 왜냐하면 6장은 갈릴래아 호수 근처에서 있었던 빵의 기적과 물
 
위를 걸으신 기적과 생명의 빵에 대한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고, 오히려 5
 
장의 내용이 오순절 기간 중에 예수님의 예루살렘 활동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6장의 내용은 단독으로도 중요하지만, 복음서 전체를 꿰
 
뚫고 있는 생명의 빵으로서의 예수 정체성을 계시하는 가르침으로 평가됩
 
니다.

따라서 오순절 기간 중에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가르침과 오늘 초막절 기
 
간 중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하시는 가르침을 연결하여 오늘 복음을 살
 
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아들임을 주장하였
 
고, 존재의 본성상 하느님과 같은 하느님임을 주장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이러한 주장이 진실한 진술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증인 셋을 내세
 
우는데, 그것은 세례자 요한과 하느님 아버지와 성경말씀이었습니다.
 
(5,31-47) 그러나 세례자 요한도, 하느님 아버지도, (구약)성경도 유다인들
 
의 예수에 대한 이해를 돕지 못했습니다. 어느 것도 예수의 '범법적 행위
 
와 신성모독적 발언'에 대한 증오감을 누그러뜨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
 
히려 그들은 예수를 제거해 버리려는 음모를 꾸미는데, 이 점에 있어서는
 
오늘 미사전례의 제1독서(지혜서 2,1.12-22)를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
 
습니다.
 
 
기원전 50년경에 희랍어로 집필되어 제2경전에 속하면서 '솔로몬의 지
 
혜'라는 명칭을 가진 지혜서의 핵심사상은 '정의의 불멸', 좀더 구체적으
 
로는 '의인은 죽지 않는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지혜서의 저자는 당시 희
 
랍 정치문화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이집트 북동 해안도시)에 살고
 
있던 유다인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저자는 당시 이방인의 도시인 알렉
 
산드리아에 살면서 희랍문화에 영합되어 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유다인들과 자신의 신앙을 고수함으로써 온갖 위협과 경멸과 박해를 받던
 
유다인들을 위해 이 글을 쓴 것입니다.
 
 
여기서 후자의 유다인을 저자는 의인으로 칭송하는 바, 예수님이 지금 처
 
해 있는 상황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그렇다고 저자가 지혜서의 집필과정
 
에서 예수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께서 믿음과 신뢰로 인
 
해 당하는 모든 이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십니다. 모든 성서
 
말씀의 주체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셨고, 아들
 
은 아버지의 뜻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심과 믿음 사이에서
 
 
유다인들이 죽이려고 찾는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분이 대중 앞에서 큰소리로 말씀 하셨지만 아무도 손대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의 출신배경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누구신지 더욱 혼란스러웠지만 아무도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처럼 우리도 불확실한 믿음 때문에 방황하지는 않습니까?
 
정말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어야 할지,
 
혹시 그분에 대한 믿음이 헛된 것은 아닐지 의심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구체적이고 확실한 증거를 원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는다는 것은 비록 의심이 우리를 괴롭힌다 하더라도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 삶을 전적으로 투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그분이 누구신지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신을 저의 주님으로 믿습니다.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 출처: 단순한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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