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령의 인도를 받은 성모 마리아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12 조회수1,196 추천수2 반대(0) 신고

 

마리아의 삶과 역할은, 마리아의 소명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확정하는 말

 

씀에, 즉 성령이 내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감싸주실

 

것이다(루가 1, 35)라는 말씀에 포함되어 있다. 구원사에서 마리아가 차지

 

하는 위치를 보기 위하여 그 외에 다른 문헌을 더 볼 필요가 없다. 정교회

 

의 신학자 쉬머먼(Alexander Schmemann)이 쓴 바와 같다:
 


 다소 역설적인 방법이지만, 비록 마리아가 존재했다는 단순한 사실만이,

 

즉 신인(神人) 그리스도께 어머니가 계셨으며 그의 이름이 마리아였다는

 

사실만이 복음에 제시되었다 하더라고, 교회가 마리아를 사랑하고 마리아

 

와 그의 아들과의 관계를 생각하기에 넉넉하며, 그로부터 신학적 결론들

 

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부가적인 계시나 특별

 

한 계시가 필요하지 않다. 마리아는 복음 자체의 자명하고도 본질적인 차

 

원인 것이다.

 

 

영보의 순간에, 말하자면 중개자로서의 그리스도의 고유한 사명과 강생의

 

첫새벽에 마리아는 하늘과 땅 사이의 교차점이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까지 끝없이 뻗어오는 하느님의 사랑이시며,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의 전

 

권사절이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성령께서 한낱 피조물인 마리아를 들어

 

올리시어 바로 당신을 만날 수 있게 해주셨다. 그리하여 우리 편에서 마리

 

아는 가장 순결한 형에서 피조물의 사랑이다. 그들의 사랑이 서로 어우러

 

지는 접합점에서, 그 일치의 심장부에서 우리는 우리 주 그리스도를 발견

 

한다. 우리는 진정 여기서 말을 잃게 된다. 우리는 신비의 심장부 강생의

 

신비에 닿은 것이다.

 

 

당신 아들에 대한 마리아의 관계는 그의 모성(母性)에 기초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 어느 모성도 그렇지만 자연적,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잉태를 멀

 

리 초월한다. 순전히 자연적인 면에서조차 어머니란 아들 이라는 상관개

 

념, 상호 인간 관계를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이 관계는 아기의 존재란 세

 

상에 주는 선물이라는 점에 무조건으로- 또 그처럼 결정적으로- 동의함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모성은 생명을 낳는다는 단순한 생물학적 사실로

 

격화될 수 없다. 어머니는 자기 아기의 인격적 실존과 그 소명에, 처음에

 

는 전적으로 그후에는 차차 구체적으로 동의한다. 마리아에게만 고유한

 

점은 그의 아기가 세상의 구원자라는 사실이다. 세상과 역사 안에 그리스

 

도가 현존하기를 흔연히 동의함으로써 마리아는 세상을 구원하는 데도 협

 

력할 것을 동의하는 것이다.

 

 

성령께 대한 마리아의 개방성을 영보의 순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활동에도- 그의 신비롭고 감추어진 능력에도- 여전

 

히 개방적이고 순종적이었다.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하느님 아버지

 

의 아들이시며 동시에 마리아의 아들이시다. 성령께서는 영원한 계약으로

 

마리아에게 주어지셨으며, 그리스도의 강생의 각 단계에 함께 계신다.

 

 

신앙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가 하나이기 때문에 강생의 신비를 깊이

 

묵상한다면, 우리는 마리아가 구세주의 어머니이며 강생하신 말씀의 어머

 

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확인된 것이다.

 

우리가 오늘 받는 은총들은 마리아의 아들의 인성(人性)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마리아가 성령의 감도로 하느님께 말씀드린 그 피앗(fiat, 이루어

 

지소서)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마리아의 신앙은 그가 첫 대답을 할 때의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십자가의 어둠을 통하여 부활의 빛으로 성장했다.

 

 

마리아의 피앗(순종)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과거지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변함없이 실제적이며 인격적인 실재인 것이다. 인성을 지

 

니신 그리스도의 중개를 통하여 성령 안에 은총을 받는다면, 의심없이 거

 

기에는 마리아의 피앗(fiat)에 대한 우리의 관계가 내포된다. 거기에는 또한

 

동일한 이 성령으로 가득차서 지금 영광을 누리며 당신 아들을 통하여 아

 

버지를 향하고 있는 마리아와의 관계가 내포되어 있다. 성인들의 통공을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언제나 모든 은총의 샘이며, 구원의 역

 

사가 단순히 과거사만이 아님을 믿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우리의 구원사

 

에서 일익을 담당했고 지금은 영광 중에 그 역할을 계속하고 있는 모든이

 

들과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성인들의 통공에서 마리아를 고립시킬 수 없다. 우리는 개선(凱

 

旋) 교회를 믿느니만치 성인들이 서로도 사귀고, 또 우리와도 사귀면서 그

 

리스도 안에 살아계심을 믿는다. 각자의 소명과 선택의 정도에 비례하여

 

각자는 관계, 중개, 교호작용에 참여한다. 어린양의 어좌를 에워싼 구원받

 

은 자들을 결합시키는 이 통교에서,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는 고유한

 

역할을 차지하지 않을 수 없다. 마리아는 언제까지나 하느님의 말씀을 받

 

아들이는 자로 또 그분으로 하여금 우리 중의 하나가 되실 수 있게 해주는

 

자로 영원히 남는다. 마리아는 이음줄이며, 성령께 성실하여 성령과의 완

 

전한 친교를 영육으로 이룬 자이다.

 

 

성서는, 구원을 위한 예수의 죽음과 결정적인 순간에 마리아가 갈바리아

 

에 있었음에 주의를 상기시킨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 예수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요한 19, 25). 마리아가 거기 있었다는 이 명백한 언급은 매우 중대

 

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그러한 언급이 없었더라도, 성령께서 날인하신

 

계약에는 마리아의 아들에 대한 모든 신비, 즉 기쁘고 슬프고 영광스러운

 

모든 신비가 포괄된다는 것과, 또한 성령께서 마리아와 그 아들의 일치를

 

영원히 날인하셨다는 것을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확증하기 위하여 문서에 찍은 검인처럼 밖에서 찍은 날인

 

이 아니다. 성령의 활동과, 이 성령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종속하는 마리아

 

의 활동은 같은 목표를 지향한다. 즉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고,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그리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려는 데 목표를 두

 

고 있다.

 

 

성령께서는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모셔다 주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예수의

 

현존을 하나의 실재가 되게 하시고 우리 안에 그분을 형성하신다. 오로지

 

그분만이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위해 예수의 이름을 부르게 하실 수 있다.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새 삶에 태어나게 하실 수 있으며,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사는 참다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힘을 우리에게 주신다.

 

 

한낱 피조물로서 은총의 불리움을 받아 성령의 사업에 참여하게 된 마리

 

아는 또한 전적으로 당신의 아들에게로 전향(轉向)한다. 성서가 우리를 위

 

해 기록한 단 한번의 마리아의 명령에서, 마리아는 자신의 존재의 깊이를

 

열어보인다. 무엇이든지 그가 하라시는 대로 하라(요한 2, 5)라고 가나에

 

서 일꾼들에게 한 말씀 속에 나타난 마리아의 영혼을 들여다보기 위하여

 

역시 문헌 따위가 필요치 않다. 과거에 이루어졌던 마리아의 역사적 사명

 

과 현재에 이루어지는 마리아의 신비로운 사명은 그의 아들과의 이 지극

 

히 중요한 관계 속에 서로 연결된다. 마치 강이 바다로 흐르듯이 마리아는

 

우리를 어김없이 예수께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예수께 대한 마리아의 관

 

계가 환히 밝혀질 때에야 비로소 마리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마리아는

 

예수께 기꺼이 대답함으로써 우리에게 예수를 주신다. 그리스도는 살이

 

되신 말씀이시며, 마리아의 소명은 그 말씀을 지녀 옮기는 자가 되는 것이

 

다. 즉, 마리아는 오로지 그리스도를 세상에 데려오기 위해서만 사는 것이

 

다. 마리아는, 측량할 수 없이 깊이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

 

한다. 마리아는 순전히 그리스도께 대한 관계 안에서만 존재한다. 

 

 

마리아는 주님을 못 보게끔 가리고 있는 휘장이 아니다. 마리아가 누구인

 

지를 잘못 이해하는 근본적인 오해로 말미암아, 그처럼 마리아가 주님을

 

가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마리아를 사랑하지 못하고 주저한다면

 

차차 주님도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 하느님의 신비의 심장

 

부에 있는 것이다. 그분의 사업은 우리의 시간적, 공간적 범주에 제한받지

 

않는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열고 이기심없는 사귐의 세계에 들어

 

가는 것이다.

 

 

마리아를 가득 채우신 성령께서는 지금도 앞으로도 언제나 아들의 영이시

 

다.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깊이에서 마리아를 그리스도화하신 분은 바

 

로 이 영이시다. 마리아는 특히 뛰어난 그리스도인이며 그리스도의 영으

 

로 가득 차서 흘러넘친다. 마리아 안에서 성령께서는 당신의 걸작품을 빚

 

어내셨다. 마리아는 성령의 자랑이며 영광이다.

 

 

마리아의 사명은 은총을 하사하는 서열에 있지 않다. 영만이 홀로 또한 언

 

제나 아버지와 아들의 사자(使者)이시다. 마리아의 자리는 중재자로서가

 

아니다. 마리아의 역할은 우리의 대답과 관련된다. 마리아와 결합하여, 마

 

리아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우리는 성령을 받고 성령의 격려에 귀를 기울

 

이는 데 도움을 받는다. 이미 하늘의 영광을 누리면서 마리아는 우리가 신

 

뢰와 기쁨 속에 우리의 길을 계속 가도록 고무한다. 공의회는 마리아를 나

 

그네 길에 있는 하느님 백성의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시라 일컬었다.

 

 

 

                                             (성령은 나의 희망/수에넨스 추기경/김마리-로사 수녀 옮김/분도출판사)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