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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94) 미룡(微龍)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12 조회수965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5년3월12일 사순 제4주간 토요일 ㅡ예레미야서11,18-20;요한7,40-53ㅡ

 

 

 

 

               미룡(微龍)

                            이순의

 

 

마을 뒷동산 계곡의 실개천 가에 살얼음이 마지막 조각을 남기고 있었다. 그렇게 차거운 유리면 속에서 녹은 겨울물이 흐르고 손가락 굵기의 희뿌두두한 투명막이 위장전술에 숨어 있었다. 그 안에는 좁쌀만한 검은 점들이 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았다. 아저씨들이 마른풀숲에서 작은 잔가지 하나를 주워다가 물 속에 잠갔다가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그 끝에는 투명막 속의 검은 깨알들이 따라서 올라왔다. 어린 소녀의 눈으로는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던 실체들이 허공에 떴다.

 

준비한 스텐레스 국사발을 누군가 그 미끄덩한 물체의 아래로 가져갔다. 잔가지는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사발 가득 검정깨알을 품은 줄기들이 넘쳐났다. 미끄덩 미끄덩 이리저리 밀려 다니던 길다란 줄기는 사발 가득한 물체를 다시 계곡물 속으로 끌어 담갔다. 모두가 한데 엉기고 연결되어 물살에도 떠내려가지 못하도록 서로 단단히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잔가지를 든 아저씨의 손놀림이 시작되고, 물속으로 회귀한 줄기들은 고스란히 따라 올라 길게 늘어졌다.

 

아저씨들은 반도막을 치라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어느 한 분이 손가락으로 처진 줄기에 손을 대었다. 흐믈흐믈 잘린 도막이 물속으로 퐁당 떨어졌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달린 줄기들은 스텐레스 사발에 얌전히 담겨졌다. 준비해간 초고추장을 덜어서 비비기 시작했다. 숟가락을 가로로 세워 탁탁치며 미끄덩거리는 줄기들을 작게 작게 도막을 쳤다. 붉은 초국물 속에서 투명한 막들이 이리저리 밀려다니고 있었다. 좁쌀만큼 작고 검은 점들을 그 안에서 그대로 보호하고 있었다.

 

다시 물 속에 부어 넣는다면 붉은 핏물 같은 초고추장은 물을 따라 말끔히 흘러 버려지고 깨알의 정체는 그대로 소생할 것 같은! 새콤한 식초의 아린 도전에도 검은 알갱이는 그대로 있었다. 잔인한 숟가락의 난도질에도 불구하고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며 그대로 생명을 지키고 있었다. 잘게 부수어진 도막들이 흘러 내리지 않고 숟가락에 담길 때쯤, 사발에서는 달그락 달그락 부디치는 소리가 바빠졌다. 이내 사발은 텅 비어 허전하고, 일행은 몇 걸음 더 높은 계곡으로 향했다. 그 자리에는 놀란 미룡(微龍)이 남은 알주머니를 살피고 있었다.

 

마당에 제법 봄볕이 들고, 문간체의 일꾼들이 좁은 방안에서 나와 서성일때면 미룡(微龍) 알을 먹으러 가자고 술렁거렸다. 언제 일감이 적은 한가한 날을 잡아 소풍을 겸해서 산행을 간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즐거운 비명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 날을 약속해 주셨고, 사내들만 득실거리는 산행에 소녀의 동행을 결코 허락하시지 않았다. 그런데 아저씨들이 용(龍)을 잡으러 간다는 것이다. 용(龍)이란 실존의 동물이 아니다고 배웠는데 아저씨들이 용(龍)을 잡으러 산에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로 산에 가면 용(龍)이 있다는 것이다.

 

너무 어렸을적에는 용(龍)이 산에 있든지 말든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동화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부터 용(龍)이 정말로 산에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영험한 동물인 용(龍)이, 그렇게 엄청나게 큰 용(龍)이, 그렇게 힘이 센 용(龍)이, 산에 있다는 것이다. 아저씨들을 따라다니며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느냐고 여쭈어 보았지만 아저씨들은 웃으면서 놀림감을 삼았다. 그 신비로움에 더욱 안달이 났고..... 아버지께 용(龍)을 보러 가고 싶다고 졸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용(龍)이 아니라 미룡(微龍)이라고 말씀하셨다.

 

용(龍)은 무엇이고 미룡(微龍)은 무엇인가? 본적도 없는 용(龍)을 잡으러 아저씨들은 산에 가신다는데 아버지께서는 산에 있는 것은 용(龍)이 아니라  미룡(微龍)이라고 하신다. 일꾼들은 모두 어른들이었지만 거친 사내들인데다 산세 험한 곳에 어린 딸자식을 딸려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미룡(微龍)을 만나고 싶은 소녀의 신기루가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런 소녀의 심성을 알아채신 아저씨들은 짓궂은 허풍들을 시시때때로 쏟아놓았다.

 

여의주의 색깔이 푸르다고도 했다가, 붉은 빛이 훨훨 탄다고도 했다가, 하늘로 올라갈 때는 바람이 태풍처럼 일어난다고도 했다가, 어린 아이들은 간혹 안고 가버린다는 무시무시한 겁도 주었다가, 그런  용(龍)을 아저씨들이 잡아다가 구워 먹을거라고도 했다가,  용(龍)을 죽이게 되면 마을에 재앙이 따르므로 잡지는 못하고 구경만하고 오신다고도 했다가..... 그러다가 어린 아이를 놀린다고 아버지께 호된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소녀가 어떤 고집을 부렸는지는 모르지만.

 

아저씨가 지고 가시는 지게의 바작에 앉을 수 있었다. 지게가 둘이었는데 하나는 깔고 앉을 가마니 몇 장과 밥이랑 반찬이랑 초고추장이 얹어져 있었고, 하나는 소녀가 얹어져 있었다. 집을 나설적에는 아버지의 눈이 무서워 지게에 태우고 등짐져 갔다. 그러나 마을을 벗어나 산 아래에 섰을 때는 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으리라! 산에서도 지게를 탔던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중간 어디쯤에서 걸어간다고 우겼을 것이다. 아직 살얼음이 남은 산 속은 매서웠다. 

 

얼마나 얼마나 지루하게 올라가든지 소녀의 질문은 쉬지 않았다. 용(龍)을 보려면 아직도 멀었는지? 용(龍)은 어디서 살고 있는지? 용(龍)을 만나면 어디로 숨어야 하는지? 아저씨들이 용(龍)을 죽이면 어떤 재앙이 오는지? 아이들은 몇 명이나 잡아 갔는지? 용(龍)이 나타나면 아저씨가 소녀를 꼭 잡고있어야 한다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마을이 훤히 내려다 보이고, 넓은 소녀의 집 뜰이 고사리 조막 손 보다 작아 보일 때쯤에 아저씨들의 발걸음은 멈추었다. 소녀는 등골이 오싹해지기 시작했다. 높은 산 줄기를 더듬어 올려다 보며 저기 어느 뫼 쯤에서 용(龍)이 포효를 지르며 솟아오를지 두려워 떨고 있었다.

 

그런데 그저 평범한 어투의 아저씨께서 "용(龍) 여기있다." 라고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큰 용(龍)을 발견했을 때는 숲의 풀잎이라고 흐터지고, 바람이 거칠며, 아저씨들은 집에서 돼지 잡던 날 보다는 소란스런 고함을 질러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계곡의 고랑에는 무시무시한 용(龍)이 서 있지 않았다. 실개천 위에 덮여있는 살얼음 가에서 아저씨는 손바닥을 펴 보이고 있었다. 소녀의 마음은 휑하니 비어버린 실망감으로 다가가 보았다. 그런데 정말로 용(龍)은 용(龍)이었다. 너무나 귀엽고 예쁜 용(龍)이었다.

 

아저씨들은 알을 키우는 시기에는 어미 용(龍)을 건들지 말아야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산을 오르는 내내 사발에 담기도고 남을 만큼의 알들이 뭉치 뭉치를 이루며 줄 지어 있었다. 아저씨들은 포식자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한 어미의 알들을 모조리 포획하지는 않았다. 반드시 알 자루의 일부만을 잘라서 초고추장에 비볐다. 어미 용(龍)은 남은 알들을 지키느라고 물 속을 떠나지 않았다. 정말로 귀여운 용(龍)이었다. 여의주도 물지 않았고, 산 봉우리에 걸터 앉은 구름을 가르기에는 너무나 미소해 보였다. 

 

계곡을 따라 몇 걸음 가지 못하고 알을 채집하는 일은 중단 되었다. 싸온 점심을 먹기로 한 것이다. 점심을 먹고 배부른 한가로움은 그냥 그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시는 분도 있었고, 혼자서 산의 어디를 찾아서 오르시는 분도 있었고, 멀거니 쭈구리고 앉았기도 하는..... 소녀는 재미가 없었다. 용(龍)은 시시했고, 놀이는 없었으며, 너무나 심심하고, 추웠다. 집에 가자고 졸라버린 사람은 소녀였다. 춥다고 춥다고, 집에 가고 싶다고 집에 가고 싶다고, 지게에 탈란다고 지게에 타고 갈란다고....... 소녀는 지게 바작의 옴폭한 온기에 잠이 들었다.

 

작은 소녀의 손바닥 위에는 더 작은 미룡(美龍)이 놀고 있었다. 소녀는 꿈을 꾸며 산을 내려왔다.

 

<지난 경칩 날에 이 글을 올려드리고 싶었는데 미룡(微龍)이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 보았더니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여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자유게시판에 올려진 사진을 보며 미룡(微龍)이 도롱룡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미룡(微龍)은 미룡(微龍)이고, 도롱룡은 도롱룡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어린시절의 추억을 돌아보았습니다. 사순이라는 성찰의 때에 마음의 고향도 돌아보며 편안한 정다움을 드립니다. 그런데 사진 속의 미룡(微龍)은 환경 탓인지 알주머니가 너무나 빈약하여 안타까운 마음이 간절합니다. 저렇게 작은 몸으로 그렇게 많은 알들을 역어 놓았던 기억을 사진에서는 볼 수가 없네요. 저만큼의 알이라도 잘 부화하여 미룡(微龍)의 자손만대가 번창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행여라도 이 글로 인하여 누군가가 미룡(美龍)알을 먹게 된다면......??? 어휴......?! 제가 환경을 파괴하는 대역죄인의 묵상글을 쓰지 않았기를 간절히 비나이다. 지금은 37~8년 전 보다 물이 오염되어서 간디스토마가 살벌합니다. 그래서 미룡(美龍)도 알을 저렇게 쪼꼼 밖에 못 낳는 것이구요. 써 놓고 보니 걱정 됩니다.    >

 

ㅡ사람들이 나를 헤치려고 하는 것을 주님께서 알려주셔서 나는 그 일을 알게 되었다. 예레미아서11,18ㅡ

 

※바작이 장착된 지게※ = ※바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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