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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95) 어머니의 분첩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13 조회수757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5년3월13일 사순 제5주일 ㅡ에제키엘서37,12ㄴ-14;로마서8,8-11;요한11,1-45ㅡ

 

            

 

           어머니의 분첩

                              이순의

 

 

어머니께서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 두실적에는 걱정이 많으셨을 것이다. 단단히 돌아서버린 큰아의 마음도 돌리실만한 여력이 없으시고, 가지신 것도 없으시고, 그렇다고 다른 자식들이 어머니를 살가웁게 거천해줄 놈도 없으시고..... 혼자서 살고는 있지만 다달이 연료비며 전기나 가스료 그리고 전화요금이라든지 일정하게 들어가는 생활비를 어렵게 모아둔 돈에서 쪼개어 쓰기 싫어서도 앞으로의 삶이 막막하셨을 것이다.

 

내가 가슴에 맺힌 응어리와 상관없이 어머니를 살펴드리기로 마음을 먹고 어머니를 뵈었을 때는 어머니의 혈색이 심상치가 않으셨다. 갑작스럽게 마르시기도 엄청나게 마르셨지만 높으신 연세에 일부러라도 마련해서 드셔야할 음식이 소홀하셨으니 더욱 그러하셨을 것이다. 옛말에 어른들의 눈에는 젊은이들의 속이 훤히 보인다고 들었다. 그런데 어찌된 조화인지 나는 신혼 첫 날 부터 어머니의 속을 훤히 들여다 보며 살아왔다.

 

반대로 어머니는 나의 속을 언제나 몇 박자씩 늦게 알아들으시거나 판단에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나의 짐작이지만 어머니는 평생을 좁게 살아오신 분이셨고, 나는 다양한 경험을 전수받으며 살아온 차이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며느리를 처음으로 맞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셨다. 그래서 진수성찬은 아니더라도 산해진미는 마련하지 못하더라도 국이라도 한 그릇 따숩게 끓여 며느리를 맞아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셨던 것이다.

 

반면에 나는 큰오빠가 결혼하던 날에는 상다리가 쓰러지게 장만하여 며느리를 맞으시는 친정어머니를 보았고, 일가친척들이 다 같이 모여 즐거웠던 풍경을 자연스럽게 보고 배우며 자란 것이다. 그러니 생각 자체가 어머니와 나는 다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지치도록 열심히 살았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정말로 충실히 이행하며 살았다.

 

그것이 모순이었다. 그것이 어떠한 최선이었는지를 모르신 것이다. 자라온 환경이 너무나 다른 며느리가 어떤 희생을 감수하며 사는지, 느껴서 배려하는 것 자체가 무엇을 포기하며 사는지를 전혀 상상도 하지 않으셨다. 그 무지에 지처서 내 스스로 좌절해버린 것이다. 말로 해서 가르쳐지는 것도 배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생활은 어렵고 벅찬데.... 모든 끈을 놓아버린..... 처음 얼마간은 그 비난과 탓이 모두 나에게로 쏟아졌었다.

 

했었으니까! 당장 하지 않아버린 혼란을 모두 나의 탓이라고! 그러든지 말든지. 내가 내 자식을 포기하지 않아야한다는 삶에 그냥 스스로 위로를 삼아 견딜만 했다. 시간이 흐를 수록 나는 자유로운 해방감이 짙어져 좀 더 일찍 그 끈을 놓지 않았던 사실을 후회했었다. 내가 아니라도 그대로의 수준 대로 살아지는게 사람인데 나는 내가 최선을 다해서라도 잘살아야 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불리해지는 쪽은 어머니셨다.

 

내가 어머니께 잘 할 때, 내가 어머니를 간섭해 드릴 때, 내가 어머니의 일상을 돌보고 있을 때, 다른 자식들에게 어머니의 자리가 굳어지는 것을! 공백의 시간이 길수록 어머니에게서 모두들 멀어지는 것이다. 늙은 어머니란 짐스러운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맏이도 아닌데....! 형님도 안보는 어머니를 우리가....? 그런 부담감은 어머니께서 더 깊은 한숨으로 느껴가는 것이다. 늙었으므로 일자리를 구할만한 기력도 없는데....

 

어머니께서는 마음의 의지를 둘 곳이 없었으므로 얼굴 빛이 검게 검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이 시대를 살고있는 수없이 많은 부모님들이 그런 심정에 놓여 있을 것이다. 불쌍하게도 자식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천하디 천한 존재로 전락하여 그럭저럭 사는 날까지 살아야 하는......! 내 어머니처럼 너무나 빈곤한 삶을 살아오지 않으신, 젊은날에 자식들에게 할 수 있는 만큼의 여력을 다 하신 어른들도 늙는다는 것은 서러움이 되어 그럭저럭 사는 날까지 살아야 하는......! 

 

어머니 스스로 내게 찾아오셔서 힘이 되어달라고 하시기에는 어머니로서 당당하시지 못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는 늙었구나 라는 사실이 인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토록 나의 짐이 되었던 어머니께서도 당신의 기력이 당신을 오만하게 했을 것이고, 젊은 나의 힘을 좌절시키고도 남았을 것이다. 또 자식이 있고, 그 자식들 생각도 깊었을 것이고..... 그래서 당신의 기력이 정정할 때는 나의 의지가 없어도 살으실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늙는다는 것 또한 사람의 생각처럼 기운이 있을 때 끝나는게 아니지를 않는가! 어머니가 어머니로서의 자격을 떠나서 늙었다는 사실이 누군가의 의지가 필요한, 그러나 스스로 너무나 볼품이 없어져버린 현실을 자식에게 청할 수도 없는....! 처음부터 나는 악하지 않았고, 지금도 나는 악하지 않다. 감사를 감사로 여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 풀에 지칠 때까지 내버려 두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가장 먼저 지쳐 기력을 소진한 사람은 당연히 어머니셨고......

 

그런 어머니를 어느 자식이 지금 나만큼......? 결국에는 나뿐이다고 결론을 지었다. 속이 뒤집어져도 또 주님의 말씀이 있으셨으니 그 행함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결코 소홀하지 않을 것이다. 먹거리를 신경 써서 꼬박꼬박 마련해 드리고, 일정한 생활비를 드리며, 오시라고 해서 이런 말 저런 말들을 여쭙고, 들어드리고..... 연세가 있으셔서 살이 오르지는 않으시지만 혈색이 달라지고 있다. 어머니의 혈색이 달라졌다. 그리고 손주를 생각해서라도 건강하셔야 한다는 나의 부탁이 어머니의 희망이 되시고!

 

그런데 이사를 하려고 방을 보러 다니던 날에 계약을 하려고 어머니를 기다렸다. 주운 폐지를 처분하고 오신 어머니는 바쁘게 세수를 하시고, 얼굴에 크림을 바르시고, 오래된 분곽을 열어서 분첩을 집어 늙은 얼굴에 토닥토닥 하시는 것이다. 손에 들린 분첩이 크림에 절어 가죽이 되다시피 지저분 하다. 곽에 든 분은 몇 알 되지도 않는덩어리가 되어 뒹굴고....!그 순간에 나는 어머니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돌아 보고 있었다.

 

얼마 전에 친정의 가족 모임이 있었는데 사진 촬영을 한 사진들이 인터넷을 통해 올려졌다. 그런데 전혀 화장기 없는 나의 얼굴이 하얀 백옥들 사이에 낀 검은 돌이 되어 화면을 망치고 있었다. 사진을 보며 나도 화운데이션을 발라야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화장을 할 줄을 모른다. 해 보지도 않았지만 약을 많이 먹었던 탓인지 화장을 하면 피부가 가려워서 견디지를 못한다. 그래서 화장품 조차 갖추고 살아보지를 못했다.

 

어머니는 아들만 넷이다. 그것도 모두들 잘나게 가르치지도 못했는데 어느놈 하나라도 잘 사는 놈도 없다. 그러니 여자로서의 어머니가 배려 받지 못한 인생은 짐작조차 불가능하다. 그날 그 자리에서는 묵묵히 지켜만 보고 돌아왔다. 그리고 여기저기 숨어있을 나의 화장품들을 찾아 모았다. 모두가 선물로 한 개씩 주어서 받아 놓고 구색이 맞지 않아서 사용해 보지 못한 새것들이었다. 내가 돈을 주고 산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어제 반찬을 준비 해 놓았으니 오시라는 소식에 어머니께서 오셨다. 그리고 달게 맛난 식사를 마치시고.....! 가장 최근(?)에 선물로 받은 분곽을 꺼내서 어머니께 드렸다.

"어머니!

쓰시던 분곽은 이제 버리세요.

제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저도 화장을 안하니까 미처 어머니를 챙겨드리지 못했네요.

이거 바르고 다니세요."

 

어머니께서는 한 번도 쓰시지 않은 화장품이 있다고 하시면서도 슬그머니 주머니에 담고 가셨다. 다음 날에는 더 고운 분칠로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혈색이 꽃피어 오실지도 모르겠다. 

 

ㅡ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저것 보시오. 라자로를 무척 사랑했던가 봅니다. 하고 말하였다. 요한11,35-36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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