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야곱의 우물(3월 14 일)매일성서묵상-♣ 습관과 투사♣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14 조회수607 추천수3 반대(0) 신고







      ♣ 습관된 투사 ♣ (요한 8,1­-11)
      그때에 예수께서 올리브산으로 가셨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또다시 성전에 나타나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 앉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그때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앞에 내세우고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우리의 모세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하였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예수께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이런 말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그들이 하도 대답을 재촉하므로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계속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버리고 마침내 예수 앞에는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예수께서 고개를 드시고 그 여자에게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그 여자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라.”

      『야곱의 우물』《매일성서묵상》에 나오는 3월 14일자 이재욱 신부(예수회) 님의 글입니다. *^^*
      ◆사람은 자기 얼굴을 볼 수가 없다. 기껏해야 거울이나 물에 비춰볼 뿐이다. 내가 내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사실인가? 그래서 옛말에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지 말고 사람들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라고 했나 보다. 얼마 전 수도회 전 회원이 모인 자리에서 장상 신부님 한 분이 강론 중에 재미있는 진리 한 가지를 말씀하셨다. 공동체의 장상들은 회원들이 타인에 대해 어려워하는 갈등이나 문제점을 지켜보면서 계속해 “그게 그러니까 네 거야, 네 거!”라고 하면, 그 회원은 “그건 내 것이 아니야, 아니야!”라고 끝없이 항거한단다.

      참 재미있지 않은가? 또 다른 이야기는 수도자가 수도생활을 한 10년 정도 하고 나면 뒤통수에 ‘너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하고 꼬리표가 하나 붙는데, 다른 사람은 그것을 다 보는데도 정작 본인은 그것을 보지 못한단다. 그리고 한 20년 수도생활을 하게 되면 앞이마에도 꼬리표가 하나 더 붙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다 보는데 본인은 그것마저 보지 못한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되새겨 보면서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다들 보고 있는데 나만 보지 못하는 내 모습은 무엇일까?

      복음에서 두 사람이 위기에 봉착한다. 위기에 처한 두 사람은 간음한 여인과 예수님이다. 왜냐하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간음한 여인의 죄를 비난하고 처단하는 동시에 눈엣가시 같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혜로운 주님은 남을 비난하는 그들의 손가락을 그들 자신에게 향하게 만드신다.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그들은 그 말에 자신들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마침내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버렸다고 한다.

      스스로 의인으로 여기고 남의 죄를 비난하던 사람들이 자신부터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심리학 용어에 투사(project)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고 거부하는 내적인 문제를 무의식적으로 외부로 투사하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점은 스스로 보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서 드러나는 문제는 누구보다 쉽게 발견하고 분개하며 비난 하게 되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나의 습관화된 무의식적인 투사의 형태를 스스로 깨닫는 것은 내 성장의 한 열쇠가 될 것이다. 나는 타인의 어떤 점에 대해 남들보다 특히 불편해하고 있는가?
      [영성체후묵상] 예수님께서는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셨습니다. 여인은 죄를 용서받았지만, 이제부터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 주는 사람이 있거나, 내편이 있다고 느끼면 힘과 용기가 생깁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당하는 사람의 편에 서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힘이며 희망이며 구원이십니다.

      <권요셉 올림>
        (소스입니다) <br><UL> <br><img src=http://www.cdmb.co.kr/pds/004/10/j190.jpg><br> <br> </<br> <br></UL> <BR><BR></UL><PRE><UL><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음체 color=#005e77> <B>♣ 습관된 투사 ♣</B>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green> <B> (요한 8,1­-11) </B><FONT style="FONT-SIZE: 10pt" color=red> <BR>그때에 예수께서 올리브산으로 가셨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또다시 성전에 나타나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 앉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그때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앞에 내세우고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우리의 모세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하였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예수께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이런 말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BR> <BR>그들이 하도 대답을 재촉하므로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계속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버리고 마침내 예수 앞에는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예수께서 고개를 드시고 그 여자에게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그 여자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라.” </BR> <IMG height=567 src="http://www.nancho.co.kr/prgs/3day/data/agzk000101.jpg" width=425 border=0> </FONT></P>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green ace="돋음체"> 『야곱의 우물』《매일성서묵상》에 나오는 3월 14일자 이재욱 신부(예수회) 님의 글입니다. *^^* </B>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darkviolet ace="돋음체"> <BR>◆사람은 자기 얼굴을 볼 수가 없다. 기껏해야 거울이나 물에 비춰볼 뿐이다. 내가 내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사실인가? 그래서 옛말에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지 말고 사람들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라고 했나 보다. 얼마 전 수도회 전 회원이 모인 자리에서 장상 신부님 한 분이 강론 중에 재미있는 진리 한 가지를 말씀하셨다. 공동체의 장상들은 회원들이 타인에 대해 어려워하는 갈등이나 문제점을 지켜보면서 계속해 “그게 그러니까 네 거야, 네 거!”라고 하면, 그 회원은 “그건 내 것이 아니야, 아니야!”라고 끝없이 항거한단다.</BR> <BR>참 재미있지 않은가? 또 다른 이야기는 수도자가 수도생활을 한 10년 정도 하고 나면 뒤통수에 ‘너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하고 꼬리표가 하나 붙는데, 다른 사람은 그것을 다 보는데도 정작 본인은 그것을 보지 못한단다. 그리고 한 20년 수도생활을 하게 되면 앞이마에도 꼬리표가 하나 더 붙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다 보는데 본인은 그것마저 보지 못한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되새겨 보면서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다들 보고 있는데 나만 보지 못하는 내 모습은 무엇일까?</BR> <BR>복음에서 두 사람이 위기에 봉착한다. 위기에 처한 두 사람은 간음한 여인과 예수님이다. 왜냐하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간음한 여인의 죄를 비난하고 처단하는 동시에 눈엣가시 같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혜로운 주님은 남을 비난하는 그들의 손가락을 그들 자신에게 향하게 만드신다.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그들은 그 말에 자신들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마침내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버렸다고 한다.</BR> <BR>스스로 의인으로 여기고 남의 죄를 비난하던 사람들이 자신부터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심리학 용어에 투사(project)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고 거부하는 내적인 문제를 무의식적으로 외부로 투사하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점은 스스로 보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서 드러나는 문제는 누구보다 쉽게 발견하고 분개하며 비난 하게 되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나의 습관화된 무의식적인 투사의 형태를 스스로 깨닫는 것은 내 성장의 한 열쇠가 될 것이다. 나는 타인의 어떤 점에 대해 남들보다 특히 불편해하고 있는가?</BR> <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음체 color=red> <IMG src="http://nami2.com.ne.kr/bg5/048.gif" border=0>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red> <B>[영성체후묵상]</B>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green> 예수님께서는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셨습니다. 여인은 죄를 용서받았지만, 이제부터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 주는 사람이 있거나, 내편이 있다고 느끼면 힘과 용기가 생깁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당하는 사람의 편에 서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힘이며 희망이며 구원이십니다.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green>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red> <br> <FONT style="FONT-SIZE: 10pt" color=green> <IMG src="http://www.pennyparker2.com/image20.gif"> <BR>&lt권요셉 올림&gt;<BR> <bgsound src="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b/1669/1998070280.asx" loop="infinite"> <UL>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