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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5주간 월요일 복음묵상(2005-03-14)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14 조회수850 추천수3 반대(0) 신고

 
예수께서 고개를 드시고 그 여자에게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그 여자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 10-11)
 
 
오늘 미사에서 제1독서로 듣게되는 다니엘서에 대하여 우선 잠시 살펴보
 
면 지금의 다니엘서는 히브리어로 쓰여진 원문에 희랍어로 쓰여진 부분
 
(제2경전으로 대략 13-14장)이 첨가되었습니다. 기원전 333년경 독립국가
 
를 유지하던 유다(이스라엘)가 그리스의 알렉산델 대왕의 침략으로 나라
 
를 빼앗기고, 그 후 기원전 63년 로마제국의 침공으로 제국의 식민지가 되
 
기까지 이스라엘은 그리스의 프톨로메오, 셀레우쿠스 왕가의 등의 통치를
 
받습니다. B.C 2세기경 안티오쿠스 4세가 유다인의 종교, 문화, 관습을 깡
 
그리 없애려는 정책으로 그리스의 문화와 정신을 강요하고 이를 거역하는
 
유다인을 박해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유다인들의 저항과 항구함을 북돋우
 
며 야훼의 나라가 승리한다는 희망을 예언하는 묵시문학적 저서가 바로
 
다니엘서입니다. 다니엘서를 마카베오 상·하권과 함께 읽으면 이해의 지
 
평을 넓힐 수 있는데, 마카베오 상·하권은 안티오쿠스 4세(특히 기원전
 
175년-134년)의 박해에 대항하여 종교적 해방과 나아가 국가적 독립을 물
 
리적 방법으로 성전을 도모했던 마따니아의 아들, 마카베오, 요한, 시몬의
 
투쟁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나중에 첨가된 부분으로써 의인 수산나를 죽음 직전에서
 
구해내는 어린 다니엘의 총명함을 다루면서, 다니엘이 하느님으로부터 식
 
별력을 선물 받은 성숙한 현자로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동시에 다니엘
 
(Daniel)이라는 이름이 뜻하듯이 하느님은 정의로우시고, 정의를 창출하는
 
분이십니다. 오늘 수산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저자는 수산나를 그리스 이
 
방인과 또 이에 결탁하고 영합한 이스라엘 원로들과 재판관들의 온갖 유
 
혹과 모략과 박해에도 끝까지 저항하는 신실한 이스라엘로 묘사하고 있습
 
니다.

 
오늘 복음은 제1독서의 내용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는데, 둘 다
 
간음의 경우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니엘서의
 
수산나는 간통의 누명을 억울하게 뒤집어쓰고 있지만, 복음에서 고발된
 
여인은 간통의 현장에서 잡혔다고 합니다. 구약의 율법을 잠시 살펴보면,
 
"이웃집 아내와 간통한 사람이 있으면, 그 간통한 남자와 여자는 반드시
 
함께 사형을 당해야 한다."(레위 20,10) "어떤 자가 남의 아내와 한 자리에
 
들었다가 붙잡혔을 경우에는 같이 자던 그 남자와 여자를 함께 죽여야 한
 
다. 이런 부정한 짓을 이스라엘에서 송두리째 뿌리 뽑아야 한다. 약혼한
 
남자가 있는 처녀를 다른 사람이 성읍 안에서 만나 같이 잤을 경우에는 둘
 
다 그 성읍 성문 있는 데로 끌어내다가 돌로 쳐죽여야 한다."(신명 22,22-
 
24) "(우상을 숭배하는 자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 죽일 때는 네가 맨 먼저
 
쳐야 한다. 그러면 온 백성이 뒤따라 칠 것이다."(신명 13,10) "(야훼의 눈
 
에 거슬리는 일을 하는 사람을) 죽일 때에는 증인이 맨 먼저 쳐야 한다. 그
 
러면 온 백성이 뒤따라 칠 것이다."(신명 17,7)
 
 
명절의 마지막 날을 올리브산에서 묵으신 예수께서 다음날 이른 아침에
 
또다시 성전에 나타나 가르치신 것으로 오늘 복음은 시작됩니다. 오늘 복
 
음은 언제 들어도 아름다운 복음으로 '간음한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놀라
 
운 판결'에 관한 이야기지만, 성서학자들은 오늘 복음(8,1-11)을 놓고 서
 
로 다른 의견을 보입니다. 이 대목은 원래 요한복음의 수사본에 없던 대목
 
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구전으로 전해오다가 빨라도 5세기경 그 내용
 
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지금의 위치에 삽입된 것이라는 주장이 압도적입니
 
다. 또한 학자들은 오늘 복음을 앞·뒤의 문맥과 비교하여 볼 때 어느 쪽으
 
로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장하는데, 오히려 이것이 7-10장 전체
 
에 고조되는 논쟁의 분위기를 깨뜨리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또 다
 
른 이유로는 8장 12절부터의 말씀이 성전 입구 헌금궤가 있는 곳(8,20)에
 
서 언급된 데 비하여 오늘 복음은 땅바닥이 있는 성전 마당에서 있었던 사
 
건으로서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기도합니다.

 
어쨌든 오늘 예수님의 입장은 진퇴양난입니다. 여인에게 용서를 베풀자니
 
모세의 율법을 무시하는 처사로 되려 고발을 당할 것이고, 그들에게 동조
 
하여 단죄하자니 지금까지 용서와 사랑과 자비의 가르침이 허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순간 둘 다를 얻고 싶었던 것이 분명합니
 
다. 그러나 그들이 쳐놓은 올가미를 빠져나가면서 율법을 옹호하고, 여인
 
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냉정한 식별력과 총명함이 요구됩니다. 예수께서
 
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시면서 "너희 중에 누구
 
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자 나이 많은 사람부
 
터 하나 둘씩 가 버리고 마침내 여자와 예수님만 남게 됩니다.
 
 
결국 인간을 심판하는 일이 인간에게 속해 있지 않음이 드러난 셈입니다.
 
죄 없는 인간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있다면 예수님 한 분 뿐이십
 
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처신은 확실한데,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오늘 독서에서 다니엘은
 
자신의 총명한 식별력으로 죄 없는 수산나를 죽음으로부터 구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니엘 보다 더 위대한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가난하
 
고 힘없는 자의 편이 되어 그들을 돌보고 변호하실 뿐 아니라, 현장에서
 
붙잡힌 죄인까지도 그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용서받은 자는 삶의 변
 
화를 통한 새로운 생활로 돌아와야합니다. 사실 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스스로는 죄인이면서도 남의 잘못을 응징하려 한다면 죽음의
 
길을 걸으려는 바리사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제
 
자로서 비록 죄인이지만 생명의 길을 걷도록 노력하는 한주가 되시길 바
 
랍니다.
 
 
 
자비의 잣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께 데려와 단죄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 둘씩 모두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들은 나보다 더 솔직하고 하느님 두려운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돌을 들고 버티고 서 있는 내 모습을 발
 
견하기 때문입니다.
 
자주 나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도 남에게는 엄격한 이중 잣대를 사용합니
 
다.
 
그래서 남의 잘못을 보면 즉시 비난의 돌을 집어 듭니다.
 
적어도 같은 잣대를 적용한다면 그리 쉽게 남을 단죄하는 칼날 같은 잣대
 
를 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죄인에게 자비로운 예수님은 죄 없이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저의 허물과 약함을 발견할 때
 
이웃에게 너그러워지는 자신을 자주 봅니다.
 
저희 모두는 주님의 자비로 새로워지고
 
기쁘게 살아가는 같은 처지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 출처: 단순한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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