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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97) 아~! 잠 깨어가자~! 아아~!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15 조회수1,116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05년3월15일 사순 제5주간 화요일 ㅡ민수기21,4-9;요한8,21-30ㅡ

 

             아~! 잠 깨어가자~! 아아~!

                                              이순의

 

 

94년 초여름에 짝궁의 권유로 운전면허 시험을 보았다. 섬으로 이사를 가서 농사를 지을 것인데 자동차 운전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섬에는 가기도 싫은데 어떻게 된 남자가 자기가 면허를 따려하지 않고 나에게 운전을 하라고 하느냐고 반론을 제기 할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글을 읽는다는게 쉬운줄 안다. 그러나 짝궁은 그렇지 않다. 물론 글을 아주 잘 읽는다. 그러나 글자만 인식해서 읽는다. 읽은 글을 뜻과 함께 동시에 머리에서 풀어진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쉬운예를 든다면 영어공부를 처음 할 때를 생각하면된다. 영어와 한글을 단어로 익혀서 공부를 잘 하던 사람도 외국인 앞에 서면 한 마디도 못하게 된다. 분명히 영어를 잘 읽을 줄 아는데도 그 해석이 한글로 동시에 입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짝궁은 한글을 그렇게 인식하는 사람이다. 글자 따로 뜻 따로 그래서 문자로 시험을 볼 수가 없다. 여러번 시도를 해 보고 가르쳐도 보았지만 절대로 안되는 사람이다. 아마 누군가 구두로 읽어주어서 보는 면허시험이라면 단번에 합격이다. 각종의 자동차와 교통규칙에 대하여 그만큼 잘 알고있다.

 

입에서 나오는 말로 되는 모든 것은 천재적인 기억력과 이해력을 자랑하고 있는 사람이다. 아마도 문자인식이 어렵기 때문에 신께서 말로 표현되는 모든 인식에 대하여 탁월한 능력을 주셨을 것이다. 그냥 이렇게 농사지으며 시장에서 장사하며 사는데는 전혀 불편하지가 않다. 그러나 대내외적으로 좀 더 다른 일을 해 보기 위해서는 승용차 운전이 필수라서 꼭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시점에서 그 분쟁을 내가 포기했다. 동시에 진보나 발전이라는 새로운 도전조차 내 가슴에서 접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운전면허 시험을 보았다. 간단히 생각한 탓에 이론에서 한 번 떨어졌다. 두 번째에서 합격하고 왔더니 짝궁이 실기학원 등록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날밤에 나를 앉혀 놓고 이르는 것이다.

"자네는 섬에 가야하니까 절대로 떨어져서는 안되네. 내가 얼마의 비용을 줄테니까 지도선생님을 주면서 사정이야기를 하고 선생님이 알고있는 노하우를 꼭 전달받아야하네. 떨어져서 자꾸 학원에 가야하는 것 보다는 이게 비용면에서도 절약이고, 급한 우리형편에도 맞는 것일세."

 

당시에 동네 엄마들 사이에 운전면허 붐이 일어나서 몇 번씩 떨어지고, 또 시험 볼 때마다 학원에 가서 시간급을 주고 연습하곤 했었다. 내가 마지막주자였다. 엄마들을 따라서 학원에 갖고 나는 짝궁이 시키는 대로 했다. 가르쳐주시는 대로 열심히 배웠다. 그리고 실기시험날이 다가왔다. 몇 일 후면 이사를 가야한다. 처음이자 마지막 시험이 될 것이었다. 그 쓸쓸한 마음을 안고 시험용 차에 올랐다. 그런데 어찌나 고물차이던지 운전석의 등받이가 뒤로 발랑 누워져 있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면허시험장에 변변한 차가 없다는게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브레이크와 엑셀을 밟아야 하는데, 나는 키가 작아서 다리도 짧은데, 등을 기대어 버틸 등받이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의자가 아래로 푹 꺼져서 앞이 잘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안전벨트를 매면서 마음을 비워버렸다. 보나마나 불합격이었다. 시간 안에나 들어오자. 점수를 따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연히 짝궁이 시키는 대로 했던게 아까웠다. 잘 배웠어도 차가 그 모양이었으니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 것이다.

 

내 앞으로  시험을 치르던 사내들이 우수수수 추풍에 낙엽처럼 떨어졌다. 탈락을 알리는 그놈의 벨소리는 또 얼마나 크게 울리던지! 구경하는 사람도 간이 졸리는데 탈락하는 당사자는 얼마나 깜짝 놀라겠는가?! 성호를 한 번 긋고, 차분한 마음으로 시간이나 지켜서 들어오면 그놈의 벨소리는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열심히 열심히 운전을 했다.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열심히 열심히...... 다행히 선을 밟거나 특별한 잘 못이 없었다. 시간을 지키려고 엉덩이를 살짝 들어 엉거주춤하게 서서 엑셀을 밟았다.

 

보나마나한 불합격 판정을 기다리며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그분의 입에서 점수가 먼저 호명되었다. 합격의 최하 점수가 80점이었는지 60점이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나는 그 점수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한 번에 합격을 하였다. 얼마나 좋든지! 그자리에서 껑충껑충 뛰어서 날다시피 하여 집에 왔다. 그리고 몇 달 동안 몇 번씩 떨어져서 이중 삼중의 비용과 시간을 들이고 있었던 엄마들 앞에서 당당히 1등이 되었다. 실기에서 한 번에 합격했다고! 아마 그 고물차 때문에 마음을 비운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딴 면허증은 지금까지 장농지기로 있었다. 섬에 가서 일을 시켜먹으려고 했던 짝궁은 내가 불사신인 줄 알았나보다. 수 십명이나 되는 작업인부들을 혼자서 밥해주는데...... 돌아보니 아무리 짝궁이지만 진짜로 나에게 너무한 사람인 것 같다. 차는 사지도 못했지만 차까지 있었다면 아마 나는 섬에서 뼈도 추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고생을 할 때는 잠도 두세 시간 밖에 잘 수가 없었다. 억지로 고생을 자초했으니 하느님의 뜻이 함께 했을리도 없었다. 실패였다. 또 그 고통은..... 

 

이제 장농지기 면허증이 잠을 깨야한다. 막상 운전을 하려고 하니까 쓰던 차를 주시겠다는 일가 친척도 많다. 친정부치들이 잘산다는 것은 이럴 때 참으로 좋다는 생각이 든다. 면허증을 딸때는 억지로 따서 실패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묘한 섭리가 나에게 운전을 해야할 일을 요구하고 있다. 나는 오늘부터 자동차 운전연수를 간다. 셋방살이에 주차공간이 없어서 주시겠다는 차들을 거절해 왔었는데 주차는 나중에 생각해야할 것 같다. 우선 새벽에 등교하는 아이가 좋아할 것이고, 여름이면 산에서 일을 하는 짝궁에게 반찬을 공급하기가 쉬울 것이고......

 

작년에도 <나의 묵상글ㅡ(151) 2000원 씩이나 = 40%씩이나>에서처럼 터미널에서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싸움을 해야했던가?! 그래서 올해는 차를 주신다는 분께 감사한 마음으로 받든가 아니면 월부로라도 경차를 사든가 해서 짝궁을 도와야한다. 솔직히 겁도난다. 무섭기도 하다. 그래도 주님께 모든 섭리를 맡겨야한다. 인생이 억지로 살아지는게 아니지를 않는가?! 오늘은 또 이것이 최선이라고 살았다가 아니면 쓴물을 삼키고라도 다시 재도전을 해야한다.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야할 본분일 것이다.

 

다만 한가지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걸어서 다닌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시야를 나에게 열어 주었던가?! 지하철역의 양말 파는 할머니와 구걸하는 할아버지의 나눔이라든지, 생선장수의 객기라든지, 늘어난 노점상들이라든지..... 걸어다니면서 느끼고 공유했던 정담들을 놓쳐야 할 사실들이 내 가슴에 슬픈 부음을 안기고 있다. 차를 타고 보는 세상은 또 다르리라. 거기에도 사람의 냄새가 있고, 풍경이 있고, 질서와 다툼이 있고.....

 

그동안 내가 나에게 만족한 것이 딱 하나가 있었다면 걸어다니는 풍경을 사랑했다는 나의 심성이다. 정말로 유심히 보고, 살피고, 느끼고, 맛들며...... 사랑했었다. 홀연히 스쳐와 한기를 느끼게 했던 바람조차도....! 연수를 받기는 하겠지만 정말로 내가 운전을 하게 될지는 내 자신도 아직 모른다. 뜻이 함께 하시기를 바랄 뿐이며 오늘도 나의 의지를 주님께서 이끄시는 순간에 순종할 것이다. 이 모든 생각과 실행이 주님께서 점지하시는 목적이 되고 이유가 되기를 빈다. 안전운전이 되시기를....!

 

ㅡ나를 보내신 분은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시지는 않는다. 요한8,29ㄱ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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