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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98) 바보 같은 학사님!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16 조회수961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5년3월16일 사순 제5주간 수요일ㅡ다니엘서3,14-20.91-92.95;요한8,31-42ㅡ

 

     바보 같은 학사님!

                          이순의

 

 

바람이 보드란 차가움으로 수줍게 다가왔다. 두껍게 입은 겨울을 비집고 구중심처 살갗까지 들어와 간지러움을 선물하고 있었다. 여인의 바람기가 손님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상큼하고 그 촉감 좋은 유혹에 홀려 아직 마저 당도하지 않은 소식을 깊이 기~ㅍ~이 숨을 쉬어 폐부의 중심까지 전달하였다. 좋았다. 햇살은 연하고, 풍경은 따스한! 봄이 봄님이 가까이 오셨다는 육감을 모르는체 할 수 없었다. 여인을 품은 두꺼운 잠바는 곧 오실 손님에게 밀려 쫒겨갈 것이고, 찬설을 지켜준 은덕을 배반한 여심이 될 것이고.....  히~! 

 

봄바람이 좋은 촉감을 안고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11년 전에 다녔던 운전면허 학원에 갔다. 내 마음 대로 한 몇 일 연수를 할 요량이었다. 그곳은 달라진게 없었다. 풍경도 위치도 분위기도 그대로였다. 머무는 사람들도 똑 같아 보였다. 얼굴이야 달라졌겠지만 모습은 한결같았다. 뭐 익숙하게도 쫄래쫄래 내 위치를 잘도 찾아갔다. 식은 죽 먹기처럼 쉬웠다. 그런데 이달 말일까지는 매진이었다. 빈 틈이 없었다. 내심은 시원하였다. 성주간을 경건히 보내고 싶으고, 부활도 다가오시고, 어머니 이사도 해 드려야하고......

 

걸리적 거리는게 제법 여럿이었는데 차라리 시원한 마음이었다. 다음달 초승으로 날을 잡고 사무실을 나왔다. 다음 셔틀버스가 당도하려면 시간이 멀었다. 구경거리가 많았다. 내가 처음 학원에 왔을 때의 기억은 먼저 안전벨트를 매는 법을 배우고, 열쇠 꽂는 법을 두 번째로 배웠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런 절차를 거쳐서 모두들 열심히 운전연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차를 갖게 된다면 주차장이 없다. 우선순위 주차장을 접수해 보겠지만 그것도 당첨되려면 매우 힘들다고 들었다. 그런 내심의 이유가 작용했는지 주차코너를 거치고 있는 차들에게만 유난히 눈길이 멈추었다.

 

그러다가 어느틈에 고개를 돌렸는데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 운전연습에 열중인 사람들을 보았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가 있었다. 섬에 살을적에 건강상의 이유로 휴학중인 학사님이 공소에를 오시게 되었다. 나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학사들이 공소에 오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시골 사람들의 의식은 보수적이며 고루하다. 그러므로 낯선 사람들에게 민감하기도 하지만 토속적인  사고와 시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기 때문에 그 기억들을 오래 간직하고 있다. 섬사람들이 본 학사들에 대한 기억은 학사들의 본의나 상황과 관계없이 나쁘게 인식되어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학사가 온 것이다. 학사님이 오셨으니 뭔가 하기는 하고 있어야 한다. 날마다 사택에 앉아서 끓는 피의 젊은 청춘이 감옥살이를 할 수도 없는 일이고, 하다못해 바닷가에라도 나가 없는 물고기라도 불러 대화를 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넓은 섬을 걸어다닐 수도 없는 일이고..... 어린(?) 학사가 혼자 몸을 싣고 공소에서 운행하는 커다란 봉고차를 끌고 기름 값을 써가며 돌아다닌다는 것은 일손 바쁜 어른들의 눈총을 피할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기운센 학사님이 뉘집 일손은 거들어주고, 뉘집 일손은 안거들어주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서울에서 짝궁이 왔다. 짝궁더러 우리 오토바이를 학사님을 드리자고 했다. 짝궁도 시골 사람들의 심성을 알고 있었으므로 서울로 가기 전에 학사님께 오토바이 타는 법을 가르쳐 드렸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섬을 누비면서도 오토바이를 배우지 못했는데 학사님은 한 번에 잘도 타시는 것이다. 짝궁이 몇 마디의 설명만 했을 뿐인데 금방 잘도 타시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해 여름은 오토바이가 학사님 것이 되었다. 그 오토바이를 타고 학사로서 하실 수 있는 사목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도움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면소재지에 나오는데 트럭에 우리 오토바이가 실려가고 있었다. 먼저 오토바이를 빌려드린 책임감이 눈앞을 가렸다. 사고가 나서 학사님의 신변에 불상사가 생겼다고 생각을 했다. 분명히 그렇지 않고서야 멀쩡했던 오토바이가 실려서 나갈 일이 아니지를 않는가?! 자전거의 폐달을 정신 없이 밟아 공소로 향했다. 무슨 일이 발생했다면 교우들이 공소에 몰려 들었을 것이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공소에 당도해 보니 인기척이 없었다. 너무나 조용한 농번기의 텅빈 공소였다.

 

자전거를 세워 놓고 사택의 현관문이 잠겨있는지 확인하려고 마당에 들어섰다. 잠겨있다면 학사님께서는 병원에 실려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택에는 현관만 열려있는 게 아니었다. 마루를 거쳐서 사랑방을 지나 거실과 안방까지 한 눈에 직선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저 멀리 안방의 탁자 밑으로 머리를 가슴팍까지 처박아 놓고 누운 학사님이 보였다. 꼴로 미루어 짐작해 보니 멀쩡한게 안심이 되었다. 기척을 했다. 학사님께서 좁은 탁자 밑의 고개를 나에게 돌리셨다. 

 

그리고 꼼지락거려 박힌 상체를 이탈시켜키더니 일어나 앉으셨다. 행색은 온전하신데 낯빛은 풀이 죽어 있었다. 나는 왜 오토바이가 트력에 실려서 나가는지 여쭈어 보았다. 사목 방문차 금포리에 갔는데 농번기의 농가는 빈집이라서 밭으로 찾아가셨던 것이다. 차마 우두커니 서서 정담을 나눌 수가 없어서 일손을 거들어 드린다는게 오토바이 열쇠를 빠뜨린 것이다. 섬마을에서는 열쇠를 깍을데도 없고 나름대로 알아보시니 목포에까지 오토바이를 가져가야만 열쇠를 새로 달거나 깍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이 선의로 오토바이를 빌려준 우리 부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열쇠를 잊어버린 불찰을 알리기도 면목이 없었을 것이고, 더욱 난감한 것은 오토바이를 트럭에 싣고 배에 태워서 목포까지 운반하고 열쇠를 만들어 오기까지의 비용이 학사의 입장에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순간에 학사님이 얼마나 바보로 보이던지?! 얼마나 깨끗해 보이던지?! 얼마나 귀여워 보이던지?! 얼마나 착실해 보이던지?!

"학사님! 열쇠는요.

오토바이 주인집에 여유분이 또 있는법이예요.

전화하시지 그러셨어요?"

 

그 즉시 뱃머리에 전화를 해서 오토바이가 배에 타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시는 학사님의 기가 살아 보였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끔은 이해가 쉽지 않았던 신부님들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죄에 대하여 섬세한 성찰을 배워오신 신부님들은 자신의 실수를 쉽게 풀어내지 못한다. 죄가 아닌 실수조차도 크게 깊이 생각을 하다보니 아주 간단한 지혜를, 또는 해결법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 영악한 사람들의 눈에는 이해가 어려울 수 밖에 없을 것이고.....

 

학사님께서는 선한 마음으로 성의를 보여준 우리부부를 생각해서 당신의 불찰을 크게 탓하신 것이다. 그 자책감이 아주 간단한 해답을 차단한 것이고, 일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 일이 있었던 후로 성찰의 영역에서 세속의 지혜와 타협하지 못하고 궁지에 몰리는 신부님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세속이었다면 별스런 열정과 유혹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을 피 끓는 청춘들이 소심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에는 신학생들이 의외로 여리고 나약한 심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자아를 가꾸며 신의 영역에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나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잘 쓰는 말이 있다. 세속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면서도 변하고, 부자가 실패를 하여 가난해 지면서도 변하고, 나이가 들면서, 환경이 달라지면서, 가족 구성에 따라...... 수시로 무수히 변하는게 사람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렇게 급변하는 이기의 시대에 가장 더디게 변하는 주역들이 있었다. 그 순결한 바보스러움에 우리는 그들을 따르는지도 모른다.    

"어리디 어린 학사나, 평생을 사제로 살다가 고희를 맞으신 노사제나 똑 같으시더라." 

 

그 학사님 생일이 곧 다가 오신다. 미리 축하를 전해 드리고 싶다. 신부님께서는 요즘 사목의 주역을 찾아가시느라고 헥헥거리며 분주하신 것 같았다. 아직도 그분의 마음은 공소에 오셨던 학사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으며, 앞으로도 크게 변하시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신부님! 잘 살으세. 잉?! 생일 축하허고! 잉?!

소식 안드려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시구랴.

굿뉴스에 오시면 제 소식이 다 들어있당께요. 히~!"

 

운전연수를 하려고 학원에 갔다가 오토바이를 처음 타시던 학사님의 고운 모습이 떠올라 행복했다. 곧 봄께서 도착하신다고 전령은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여심은 잠시 외출을 하고 돌아왔다.

 

오늘의 복음은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유다인들이 주님을 죽이려고 한다. 우리는 가끔, 신앙의 중심축을 상실하고 사생아 같은 행동을 할 때가 있다. 특히 사심을 동하여 죄를 죄라고 인정할 수 없는 경우들에 종종 집착하게 된다. 고통의 시기를 절정에 두고 나는 진리이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유다인은 아니었는지? 아니면 주님처럼 그들에게 죽을 수는 없었는지? 성찰 해 본다. 사랑하지는 못하더라도 죄를 지어서 죄의 노예로 전락하는 신앙인은 되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가톨릭 교회와 모든 성직자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교우님들을 사랑한다고 다짐하면서 그 송구함을 깨달아 마음을 열고자 한다.  

 

ㅡ예수께서 또 이렇게 말슴 하셨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와 여기 와 있으니 만일 하느님게서 너희의 아버지시라면 너희는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나는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보내셔서 왔다." 요한8,42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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