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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00) 원래 외로웠는데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18 조회수986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5년3월18일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주교 학자 기념 허용 ㅡ예레미야서20,10-13;요한10,31-40ㅡ

 

           원래 외로웠는데

                             이순의

 

 

아침에 창문을 열었더니 발코니 난간에 장미 넝쿨이 잠을 깨느라고 귀여운 재롱을 떨고 있다. 잔 가지가 죽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겨울동안의 설풍에도 꺽어 버리지 않았다. 거무튀튀한 잔가지에 초록이 오르고, 붉긋붉긋 몽올몽올 잎눈과 꽃눈들이 일어나야 하는데 아직은 춥다고, 그래서 눈꺼풀이 무거워 떠지질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고 있다. 올해 여름은 또 몇 뼘이나 자라서 더욱 가까이 오시려는지?! 여름 장마에 초록은 또 쭉쭉 뻗어 나겠지?! 

 

오늘은 300회 특집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300회 특집에 써 드리겠다고 했던 분이 계시다. 망설이다가.... 그분께 써 드리기로 한 300회 특집은 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처음 부터 쓰고 싶었던 내용을 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좋을 것 같다. 수백 회, 또는 수천 회를 쓰신 신부님들도 계시는데 300회가 무슨 대수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나는 매 번 100회마다 새로운 감사와 다짐을 쓰고있다. 치유를 위해서 묵상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시작의 결심을 상실하기 싫어서도 감사와 다짐은 기다려 지는 시간이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나 계획이 없었다. 그냥 2년여의 칩거 생활만에 내가 세상으로 소식을 띄우는 감동에 젖었을 뿐이다. 무슨 글을 써야할지? 무슨 묵상을 올려야 할지? 구체적인 계획이나 경험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에 몇 군데서 출판을 하여 책을 만들자는 정식 제의가 들어왔다. 평생 글을 써 오기는 했지만 그런 제의가 합당한지에 대하여 내 자신이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엉겁결에 지금은 건질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으니 한 천 회쯤 써 본 뒤에 쓸만한 것이 있다면 골라보자고 거절을 했다.

 

막연히 천 회 정도는 써야한다고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에 내 자신도 두려운 필력에 힘이 느껴지고.... 막연한 목표를 둘 것이 아니라 마지막 네 편을 더 써서 천 편을 쓰는 동안에 동행 해 주신 수호 천사들께 봉헌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천사 편의 묵상글을 쓰기로 한 것이다. 그 덕택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소재의 고갈로 고민하지 않는다. 항상 들고 다니는 메모장의 더 많은 묵상거리들이 날개를 달지 못하고 해를 넘길 정도이니.... 때로는 하루에 두세 편씩을 올려서 모두에게 날개를 달아 줄까도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묵상이 아니라 지겨운 투쟁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하다보면 금방 실증이 날 것 같았다. 나도, 읽으시는 분들도 지쳐서 금방 바닥이 날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나는 생활인이고, 묵상글에 매달려 생활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관상에 어긋나는 실행인 것이다. 그런 절제 때문이었는지 수호천사의 능력은 결코 게으르지 않았고 부지런히 부지런히 묵상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치지도 않고, 실증도 나지 않는, 즐거움으로 묵상글을 쓰고 있다. 

 

나는 신앙생활에서도 스스로에게 매우 독특한 강령을 요구하고 있다. 신께서 가장 가까운 이웃을 섬기라고 하셔서 최선을 다해 이웃을 섬기되 그 이웃을 섬기다가 신을 능가한 우상으로 변질되어서는 안된다는 지론이다. 많은 경우의 신앙이 신을 섬기되 마음에 따라서 우상으로 깊어지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그런 경우를 너무나 많이 목격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사람들 가운데서 외로운 존재였던 것이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그들의 고민과 갈등들을 도와 주면서도, 행하여 살고자 노력하면서도, 그 심성의 축을 상실하지 않으려고 자신과 겨루아야만 했다.

 

묵상글을 쓰면서도 그런 위기를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치유를 위해 도구를 삼아 찾아 왔으나 묵상글을 쓴다는 것은 또 다른 우상으로 얼마든지 변질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었다. 묵상글을 쓰는 것 자체가 우상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그리고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은 최선의 봉헌은 있으되 그 봉헌물로 인하여 내 자신이 오만이라는 양탄자에 앉아서 하늘을 날아다니지는 말아야 한다. 묵상글이 봉헌되고, 그 글로 인하여 많은 벗님들께서 일상안에 섭리하시는 하느님을 알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그 이상은 내 스스로가 차단해야 한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나는 원래 외로운 신앙인이었다. 여기라고 그 외로움을 버릴 수는 없는 것 같다. 여러번 묵상글을 그만 쓸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기에는 나보다 열정에 바쁘신 수호천사들께 너무나 미안할 것 같고, 여름이 오시면 나는 바빠진다. 야간에는 시장에도 나가야하고, 낮에는 잠을 자야하고, 업무도 보아야하고, 조금이라도 한가할 때 수호천사께 일거리를 주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 내게 카페를 열자고 했을 때 거절하기를 정말로 잘했다는 생각을 또 하고 있다. 묵상 글만 쓰면 되지 않는가?!

 

내 묵상글로 인하여 단체를 이루어 누군가를 미워한다든지, 비난한다든지, 했더라면 얼마나 큰 죄의 사슬에 얽혀 괴로웠을 것인가?! 누군가 단체를 이루어 누군가를 변호한다든지, 호도한다든지, 했더라면 그렇게 큰 불구덩에서 어떻게 빠져 나올 수 있었겠는가?! 그냥 이대로의 공허를 사랑할 것이다. 공허! 이 얼마나 알뜰한 위로인가?! 포기! 이 얼마나 신선한 놀음인가?! 애증! 그 얼마나 달콤한 족쇠인가?! 집착! 그 얼마나 어리섞은 우상인가?! 나는 신을 향해 언제나 자유롭고 싶다.

 

앞으로 더욱 조용한 나의 본질로 돌아갈 것이다. 원래 외로운 사람이었으니 제 위치를 찾아갈 것이다. 동무한 수호천사들의 수고만 동행하면 되는 것을..... 그동안 여러 벗님들과 즐거운 추억들에 감사를 드린다. 300회 특집으로 써 드리기로 했던 분께도 한 끼의 식사에 감사를 드린다. 여름이 오셔서 짝궁이 돈을 벌게 되면 근사하게 대접해 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않기로 했다. 바라시지도 않으셨지만 죄송한 마음이 든다. 천사 편의 묵상글이 완성 될 때까지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동안 심려를 끼쳐 드린 점들에 대하여 용서를 청하는 바이다. 

 

부활 판공성사를 보기가 힘들었는데.... 내일은 부활 판공성사를 꼭 보아야 할 것이다. 창가의 장미 넝쿨도 겨울은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세찬 한파를 이기고 봄눈을 뜨려고 저렇게 예쁜 재롱을 부리는데, 나도 새 봄을 맞아야 하리라. 성사를 보고 거듭 태어나 맹세하고, 주님을 알아보는 일상으로 내 자신을 훈육하기에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일은 새로운 1번으로 시작할 것이다. 처음 시작처럼 내 자신의 치유를 위하여!

 

ㅡ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나를 믿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만은 믿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요한10,38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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