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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통에 대한 의미부여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19 조회수924 추천수15 반대(0) 신고
 

3월 20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마태오 26장 14절-27장 66절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고통에 대한 의미부여>


재를 머리에 얹으며 이번 사순절만큼은 제대로 한번 보내자고 다짐하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사순시기의 끝자락에 서있네요. 주님 앞에 참으로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주님 앞에 참으로 부끄럽기만 합니다.


언제나 돌아오는 연중행사로서의 사순절에서 탈피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입니다.


남은 성주간, 이웃들이 힘겹게 지고 가는 십자가를 보다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천대받고 버림받는 이웃들의 눈망울 안에 담긴 예수님의 고뇌와 염원을 헤아리고자 노력해야겠습니다. 오늘 또 다시 수난당하고, 못 박히는 또 다른 예수님을 찾아나서야 하겠습니다.


병원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중환자실을, 응급실을, 소아병동을 한번 가보십시오. 거기서 끔찍한 병고란 십자가를 지고 힘겨워하는 예수님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교도소를, 소년원을 한번 찾아보십시오. 무관심과 고독과 소외란 십자가를 지고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역 대합실을, 무료급식소를 한번 찾아가보십시오. 갈증과 허기, 비참함이란 십자가를 지고 휘청휘청 걸어가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때론 이웃들이 견뎌내고 있는 극심한 고통 앞에서 우리는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찾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또 우리가 아직 먹고 살 만하면서 굶어 죽어가는 이들에게 던지는 위로의 말은 별 설득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직 싱싱한 젊음을 유지하면서 말기암환자를 위해 드리는 기도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래서 결국 고통은 더 큰 고통을 통해서, 슬픔은 더 큰 슬픔을 통해서, 좌절은 더 큰 좌절을 통해서만이 극복되고 치유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연의 고통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고통의 신비와 의미를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갖은 고통의 치유를 위해 더 큰 고통을 몸소 겪으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오늘 수난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느끼는 슬픔을 덜어주려고 더 큰 슬픔을 선택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죄와 고통, 십자가와 죽음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을 예수님이 구원하실 수 있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먼저 밑바닥 인간의 연약함과 질병과 고통을 직접 짊어지셨고, 고난과 저주의 쓴잔을 기꺼이 마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임종자로서 단말마의 고통, 이국땅에서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서러움을 몸소 체험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는 고통 받고 죽어가는 자와 나란히 누워, 그의 동료로서 위로와 구원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무게가 너무 무거워 죽을 지경인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조금만 참아. 힘내!” 하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보다는 우리보다 더 무거운 십자가를 선택하셔서 직접 지고 우리보다 앞서 가십니다.


오늘 고통 중에서도 가장 극심한 고통인 죽음의 고통을 잘 참아냄을 통해 영광스럽게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완수한 예수님의 최후를 묵상하며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고통은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한 어쩔 수 없이 수용하고 극복해야 할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고통에 대한 의미 부여입니다. 모든 고통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고 나름대로 가치가 있음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성서는 우리가 그토록 부담스러워하고 힘겨워하는 고통 앞에 딱 부러진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고통을 피하기 위한 비법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직접 겪으셨던 그 고통스런 수난과 죽음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없애지 않으셨지만 고통을 겪는 우리 옆에서 함께 고통을 겪으십니다. 우리와 나란히 서서 우리를 위로해주십니다. 우리 눈에서 눈물을 없애지 않으셨지만, 우리가 흘리는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을 치워버리려 오신 것이 아니고 고통을 설명하러 오신 것도 아닙니다. 그분은 당신 현존으로 고통을 채우러 오신 것입니다”(클로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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