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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복음묵상(2005-03-20)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20 조회수853 추천수1 반대(0) 신고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그 위에 겉옷을 얹어 놓았다. 예수께서 거기에 올라앉으시자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펴 놓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아 놓기도 하였다. 그리고 앞뒤 에서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환성을 올렸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지극히 높은 하늘에서도 호산나!"(마태 21, 7-9)
 
교회는 오늘 주님수난성지주일을 시작으로 1년 전례력 가운데 가장 거룩

 

한 한 주간인 성주간(聖週間)을 맞이합니다. 성주간은 예수께서 비천한 나

 

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을 시작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시는 월

 

요일, 유다와 베드로의 배반을 예고하시는 화요일, 유다의 실제적인 배반

 

과 최후의 만찬을 준비시켜 그 만찬에 임하시는 수요일, 제자들과의 마지

 

막 만찬을 통해 성체성사를 제정하시고, 친히 제자의 발을 씻겨 사랑의 본

 

보기를 주시며, 게쎄마니 동산에서 피땀 섞인 마지막 기도를 아버지께 바

 

치신 성목요일,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체포되어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결국

 

에는 사형선고를 받고 갖은 수모와 조롱의 십자가를 지고 죽음에 이르는

 

성금요일, 살아 계실 적에 한 번도 누리지 못했던 안식의 무덤에 묻히시는

 

성토요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주간의 이러한 의미는 오늘 주님수난성지주일의 모든 전례 독서에 잘

 

담겨져 있는데, 오늘 성지주일의 전례는 제1부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념

 

식과 제2부 수난복음을 중심으로 한 미사로 구성됩니다. 특히 제2부 미사

 

에서 봉독되는 야훼의 종의 셋째노래를 담은 제1독서(이사 50,4-7)와 바울

 

로 사도가 펼치는 그리스도론의 핵심이라 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강생

 

신비와 찬가를 담은 제2독서(필립 2,6-11)는 성주간의 의미를 마음껏 표현

 

하고 있으며 이어지는 수난복음(마태 26,14-27,66)에서는 성주간의 절정

 

을 이루는 성삼일 전례의 만찬, 수난과 죽음, 묻히심의 사건을 미리 앞당

 

겨 기념합니다.


 

제1부에서는 성지를 축복한 후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관한 복음(마태

 

21, 1-11)을 듣고 손에 성지를 들고 행렬하는 예식을 갖습니다. 축복한 성

 

지를 손에 들고 행렬하는 예식은 당시 군중이 나뭇가지를 꺾어다 길에 깔

 

았던 것(마태 21,8; 마르 11,8)과 손에 종려나무 가지들을 들고 예수님을

 

환영한 것(요한 12,13)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은 제자 둘을 시켜 새끼 나귀 한 마리를 구해 오도록 하시

 

는데, 이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정의와 평화의 왕임을 상징하는데, 이미

 

예언자 즈가리야가 외쳤듯이 예수께서는 세상의 왕들이 타는 군마가 아닌

 

겸손을 상징하는 나귀를 타시는 것입니다. 즉, "수도 시온아, 한껏 기뻐하

 

여라, 수도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아라. 네 임금이 찾아오신다. 정

 

의를 세워 너를 찾아오신다. 그는 겸비하여 나귀, 어린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시어 에브라임의 병거를 없애고 예루살렘의 군마를 없애시리라."(즈가

 

9,9-10)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예수님을 향하여 군중들이 만세를 외치며

 

환호하고 그 가시는 길에 겉옷과 나뭇가지를 깔고서 열광하는 모습은 솔

 

로몬의 즉위식(1열왕 1,38-40)과 예후의 즉위식(2열왕 9,12-13)을 연상시

 

킵니다. 군중들의 이러한 태도는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께서 솔로몬이나

 

예후와 똑같은 왕으로 군림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우리는 오늘의 전례가 관중들의 믿음과 불신, 환호와 배신, 기쁨과 슬픔

 

등의 두 가지 서로 다른 감정의 측면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 즉,

 

오늘 전례는 사뭇 의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는 환호하고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군중들과 천진난만하게 기뻐하는 어린

 

아이들에 둘러 싸여 성대하고 웅장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우리

 

들도 오늘 이 미사를 시작하면서 행렬을 통하여 그 기쁨에 동참하지만 곧

 

바로 미사 중에 듣게 되는 수난 복음을 통하여 기쁨과 환호의 장면들이 일

 

순간에 사라지고 모든 것이 아픔과 죽음으로 향하는 비탄에 젖은 분위기

 

를 느껴야 합니다. 이런 까닭에 오늘 주일을 "성지주일"(환호와 열광), 또

 

는 "수난주일"(아픔과 죽음)이라 하며, 이 둘을 합쳐서 "주님수난성지주

 

일"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사실상 예수께서는 당신의 공생활 중에 한번도

 

스스로 영광을 받으려 하시지 않았습니다. 병자들과 악령 들린 사람들을

 

치유하는 기적을 행하신 후에도 당신의 이름을 알리지 말기를 단단히 당

 

부하셨으며,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오 천명 이상의 군중을 배불리 먹이

 

신 기적을 베푸신 후에 군중들의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 했지만 그분은

 

거절하시고 오히려 그 자리를 피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예수께서 지금껏 받지 못하셨던 영광을 허락하시고 환호와

 

열광을 한 몸에 받으십니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

 

으소서"하고 군중들이 외칩니다. 이는 곧 예수께서 당신이 왕이며 메시아

 

임을 부르짖는 군중의 고백을 받아들이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제 머지않아 몸소 수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또 부활하심으로써 친히 영

 

원한 왕이시며, 메시아로서 드러나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왕

 

이며 메시아라 부르고 환호하던 군중들은 백성의 대사제들과 원로들, 그

 

리고 율법학자들의 선동에 빠져들어 마음이 변하는데, 결국 그들은 돌변

 

하여 살인자 바라빠를 놓아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부추깁니다.

 

예수님의 주변에는 차츰 빈자리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군중들과 당신의

 

제자 유다스만이 당신을 배반하여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겁

 

에 질려 예수를 버리고, 베드로까지도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부인합니다.

 

결국 사형선고를 받으신 예수님! 머리 위에는 왕관이 아닌 가시관이 씌워

 

지고 채찍질에 온몸이 헤어져 피범벅이 된 예수! 이제 그분은 몸소 매어

 

달리실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로 향하십니다. 언젠가 그분은 말씀하셨듯

 

이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매일 나를 따라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한때는 환호하고 열광하던 군중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옆에 따라 가면서 침을 뱉고 조롱하는 구경꾼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입니까? 구경꾼입니까? 동반자입니까? 아

 

니면 방관자입니까?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행렬

 

에 임하고 있습니까? 또 어떤 마음으로 수난복음을 들었습니까? 우리가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며 "호산나"를 외

 

치는 것은 그분이 진정 메시아요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

 

리가 처절한 고통의 수난복음을 듣는 것은 우리도 그분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그 위에서 목숨을 내어놓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그분의 길은 우리의

 

길이 되었고 그분의 십자가는 우리의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사랑하올 주

 

예수님,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당신을 낮추셨으니, 거만한 저희

 

를 용서하소서. 그러나 하느님께서 모든 것 위에 당신을 높이셨으니, 나약

 

한 저희를 받아주소서. 이제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고백하나이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시여!" 아멘. 
 
 

깨달음의 눈물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는 전날 밤 예수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라 밖으로 나가 몹시 울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결코 그런 일은 없으리라고 장담했습니다.

예수께서 쏟아주신 그간의 사랑을 생각하고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호숫가에서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일,

열병을 앓던 장모를 위해 주님을 모시고 간 일,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을 때 자신을 반석이라 부르며

그 위에 교회를 세우고 하늘나라의 열쇠도 맡기겠다고 하신 일들을 기억

 

하며 목이 메었습니다.

고난의 길을 가신다는 그분을 말리려다 야단을 맞기도 했지만,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목격했을 때는 정말 황홀했습니다.

모두가 주님을 버려도 자기는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는데,

주님께 너무 면목이 없어 그저 목놓아 울었습니다.

신앙의 연륜이란 단순히 시간 문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더 깊이 헤아려 가는 체험의 과정입니다.

실로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음을 보고 놀랍니

 

다.

그러면서도 자주 다시 철부지가 되어 주님의 뜻을 거역하곤 합니다.

베드로는 세 번 배반하고 깊은 통회로 새사람이 되었지만,

나의 배반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잘못을 눈물로 뉘우치고 훗날 죽음으로써 주님을 증명한 베드로처럼

나도 그렇게 새로워지길 주님이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눈물을 기억하며 이 거룩한 성주간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당신을 내주신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

가슴으로 느끼며 깨달음의 눈물을 쏟고 싶습니다. 


한결같은 사랑으로 저를 기다려 주시는 주님,
당신의 그 사랑에 힘입어
한걸음 작게나마 새로워지고자 합니다.
축복해 주십시오.

 

                                                                                      - 출처: 단순한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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