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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0, 내자리를 찾은 기쁨
작성자박미라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21 조회수1,052 추천수3 반대(0) 신고
<실생활>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하여졌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나온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본래 모습인 참 사람이 되기 위해,
또한 "하느님을 모독한 죄인"이기에 사형선고를 받았으니
십자가형을 받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일을 시작할 때가 왔습니다.

분명하게 '사형 선고'를 받았으니 저는 "죄인"입니다.
그러기에 고통을 피하는, 창피 당하지 않으려는 그 어떤 마음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죄인으로써 고통 당하며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는데
그 일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기로 하고
먼저 지난번에 밀어두었던 결혼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결혼 성소가 제게 있는지를 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자마자 곧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여덟 살 때 옆집에 살고 있던 언니(그 당시 고1)가
"사람이 꼭 필요한데 올라와라" 라고 전화를 해서 올라가 보았더니,
말로는 '가게 일을 도와 달라'는 것이었지만 실지로는
시동생의 결혼 상대자를 찾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때가 왔구나' 생각하며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만' 하겠기에
아예 거소도 그 집으로 정하고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만 빼고 그 사람과 늘 함께 지내게 된 것이었지요(1976년 9월 7일부터).

그 언니가 저를 택한 이유는
그 집안 모든 주권을 온통 자기 손아귀에 잡으려는데 제가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골에서 상업 학교를 나와 주제에 취직도 못하고 집에서 놀고 있었거든요.
또, 제가 '이건 분명히 내가 져야할 십자가이다' 하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언니가 두 아이를 둔 과부였는데, 여차하면 그 두 아이를 제게 맡기고 재혼을 하고 싶어하며,
그 남자 또한 저로 인하여 용기 백배하여
그 동안 형수에게 눌렸던 가슴을 펴고 힘있게 일을 하였으며,
시어머니 될 사람도 그것을 보고 너무나도 기뻐하였고,
신기하게도 저도 그 사람의 모든 결점, 약점까지도 사랑하고 받아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3개월이 되었을 때에 그 동안의 모든 일을 통해
'이제 모든 것이 다 분명하여 졌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그 언니가 은연중에 방해를 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고
'나는 최선을 다하여 주어지는 모든 상황을 다 받아들이려 하는데
언니가 편하지 않은 것을 보니 이곳은 내가 십자가를 지고 갈 곳이 아니구나' 하고 판단하고는
짐을 싸 들고 집으로 돌아와서(1976년 12월 24일) 그 해가 가기 전에
저 스스로 결혼을 거부한 것이 아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수도 성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수도원 중에서도 가장 제 자신을 낮추고
교만심을 없앨 수 있는 수도원을 찾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제 안에 있는 교만심과 주님께 불순명 하는 마음이
결혼성소 안에 있는 이들보다 더 크고 강하였기에 제 딴에는
'그 정도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던 그 사람하고의 결혼이
성사되지 않았던 것이었음을 지금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77년 1월 11일부터는
"사랑하올 주님! 제게 고통을 주십시오! 제가 당신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저를 도와줄 고해 사제를 만나게 하여주십시오!
아울러 당신의 영광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제게 주십시오!"
라고 말씀드리며 54일 9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33군데의 수녀원 중에 저 자신을 가장 낮출 수 있는 수도원을 찾아보니
두 군데 수녀원만 국졸 이상 받아주는 곳임을 알게 되어
그 두 군데 중 하나를 선택하기로 결심했었는데,
드디어 1월 23일에 그 중 한 수녀원을 찾아가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제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것까지 다 들어맞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그곳에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너무나도 반가웠습니다.
가정에서 아이들을 잘 교육시키는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여 결혼을 포기하는 일이 힘이 들었었는데,
이제 금상 첨화로 그 일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일로도 자신을 높일 수 없도록 그곳 수녀들은
검은 고무신을 신고 있었으며, 수도복도 나일론이었는데
'사철 한 벌을 가지고 입는다' 고 하였고
다른 수도회에서조차도 인정을 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모든 조건이 다 맞아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 날 면접 때 다른 수녀원을 보류한 일과 결혼하려고 했던 일과
이제 그 수도원에 들어가고자 하는 이유를 말씀드리자
면접을 맡은 부원장 수녀님은 너무나도 환하게 웃으며
"그럼 한 번 살아봅시다. 한 달 동안 지원자로 살아보고
양쪽 다 좋으면 그 때 결정합시다!" 하며 흔쾌히 허락하여 주었습니다.

그 날!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제 자리"를 찾은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모든 것 다 버리고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님을 따라
십자가를 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떠나 왔던 본향을 향해 떠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는 두려움보다는
"제 자리"를 찾은 기쁨이 훨씬 더 컸습니다.....

그 다음 날인 1월 26일에 드디어
세상 모든 것 다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님을 따를 수 있는 곳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곳으로 갔습니다.

한 달 후 모든 것이 완전히 결정이 났습니다.
입회 허락을 받은 것이지요.
이제 모든 것 다 버리고 그분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허락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너무나 기뻐서 성당으로 달려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은 저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칩니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길이요,
    저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제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시편 23, 1-4


드디어 2주 후인 3월 5일!

'54일 9일 기도가 끝나는 날'에 세상 모든 것 다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삶의 형태가 어떻든...

      그 장소가 어디이든...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시어 넣어 주신 그 장소에서

      모든 님들~~~ 오늘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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