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주간 월요일 복음묵상(2005-03-21)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21 조회수1,035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때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르드 향유 한 근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요한 12, 3) 
 

어제 주님수난성지주일에는 환호와 열광, 고통과 죽음의 극단적인 두 가

 

지 서로 다른 분위기가 큰 대조를 이루었는데, 제1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행렬에서는 군중과 제자들의 환호와 기쁨과 믿음이 고조

 

되었고, 제2부 미사에서는 예수님 스스로가 십자가를 지고 겪어야 할 불신

 

과 배신, 고통과 죽음의 현실이 시종 무겁게 깔려있었습니다. 특히 긴 수

 

난복음만큼이나 긴 암흑의 터널을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느낌으로 어제

 

주일을 보냈을 것입니다. 오늘 성주간 월요일부터는 암흑의 긴 터널을 하

 

나씩 토막내어 부둥켜안고 묵상하고 또 묵상하며 내 것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제1부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될 12장은 베다니아와 예루살렘을

 

무대로 펼쳐지는 예수님 공생활의 마지막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구체

 

적으로 요한복음 12장은 죽었던 라자로를 소생시켜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보이는 베다니아 사람들의 영접 만찬회와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바르는 사건(1-11절), 예루살렘 입성(12-19절), 이

 

방인 그리스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이 자기계시(20-26절), 며칠 안에 벌어

 

질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예고(27-36절), 예수님의 마지막 공적 말씀에 대

 

한 유다인들의 최종적 불신과 이에 대한 심판예고(37-50절)를 그 내용으

 

로 다루고 있습니다.

 

 

베다니아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바르고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린 사건과 비슷한 내용을 마태오와 마르코복음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

 

성 후에 있었던 사건(마태 26,6-13; 마르 14,3-9)으로 기록하고 있는 반

 

면, 요한복음은 입성 전에 있었던 사건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마태

 

오와 마르코복음에는 예수께서 베다니아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

 

실 때 '어떤 여자'가 와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고 하지만 향유

 

를 머리에 붓든 발에 붓든 여인(마리아)의 행위는 예수님의 '장례일'을 위

 

하여 한 일입니다.

 

 

요한은 이 사건을 과월절 엿새 전에 일어난 일로 보도함으로써 이 날이 금

 

요일임을 암시하고 있는데, 정확히 엿새 후 금요일엔 예수님의 장례식이

 

치러질 것입니다. 장례식을 일주일 앞두고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생애

 

마지막 만찬을 영접 받았으며, 값비싼 향유를 자신의 주검을 위한 수의의

 

표징으로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라자로, 마르타, 그리고 손님들 모

 

두가 기뻐하였으며, 마리아는 예수님께 특별한 사랑(향유)을 보였고, 그

 

사랑의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가리옷 사람 유다만이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예수님

 

발에 쏟아 부은 매우 값진 한 근의 순 나르드 향유 값어치 때문이었습니

 

다. 순 나르드 향유 한 근을 돈으로 계산하면 3백 데나리온, 이는 사람

 

5,000명을 빵으로 배불리 먹일 수 있는 값어치의 놀라운 금액입니다.(요한

 

6,7-9 참조) 유다의 눈에는 그것이 낭비로 보였는데, 어찌보면 마리아의

 

행동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분명 낭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값진 한 근의 순 나르드 향유를 오직 예수님의 발을

 

위하여 쏟아 부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머리칼로 예수님의 발을 닦

 

았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대한 자신의 넘치는 사랑을 보였으며, 예수

 

님은 이 사랑을 자신의 장례식을 위한 일로 받아 들이셨습니다. 마리아는

 

이로써 자신이 할 수 있는 사랑 그 이상을 한 셈입니다. 사랑이 살 수 없는

 

곳에서 사랑은 이해 받을 수 없으며, 사랑이 이해 받지 못하는 곳에서 사

 

랑은 살 수 없는 법입니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행위가 전적

 

으로 내적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리가 없을 것입니다. 
 

고난을 감수하는 사랑
 
하느님의 크신 사랑은 십자가에서 잘 드러납니다.

동시에 십자가는 그 사랑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따라 나선 제자들이 걸어

 

야 할 길입니다.

예수님이 살리신 라자로와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는

그분의 사랑을 특별하게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마음 또한 각별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위협과 비난을 감수합니다.

그들의 처지는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운명을 암시해 줍니다.

그러나 고난을 감수하고라도 주님을 사랑할 힘을 우리는 그분의 사랑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 마음을 알고 힘이 되어주십니다.

주님을 위해서 나의 시간과 재물과 능력을 쓸 수 없다면,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도 결코 내어줄 수 없을 것입니다.

성주간 동안 십자가에서 쏟아지는 주님의 사랑에 젖어들도록

먼저 내 마음을 온전히 내어드리고 싶습니다.
 

성주간을 시작하면서 저의 관심을 온전히 주님께 드립니다.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그 사랑에 제 몸과 마음이
흠뻑 젖어들게

 

 

                                                                        - 출처: 단순한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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