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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주간 화요일 복음묵상(2005-03-22)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22 조회수1,133 추천수3 반대(0) 신고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시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신다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다. 아니, 이제 곧 주실 것이다.(요한 13, 31-32)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의 제2부(13장-21장)에 해당되는 첫 부분입니다. 요

 

한복음 제1부(1장-12장)가 세상을 향한 예수님의 자기계시적 업적을 전개

 

하는 과정이라면, 제2부는 이 업적의 완성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2부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의 제자들 앞에서

 

행하신 마지막 말씀(13장-17장)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사건(18장-21장)입

 

니다. 오늘 복음은 그 전반부에 속하는 것으로 예수께서 제자들과의 마지

 

막 만찬석상에서 그들의 발을 씻겨주시고 난 뒤, 새계명의 선포 부분

 

(13,34-35)을 제외한 가리옷 사람 유다의 배반과 함께 베드로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그의 배반을 예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어제 복음에서 3백 데나리온 어치의 향유 한 근을 예수의 발에 붓고 자신

 

의 머리카락으로 닦았던 마리아의 예수를 위한 사랑의 행위를 심한 낭비

 

의 행동으로 생각하고 투덜거렸던 가리옷 사람 유다는 이미 예수를 배반

 

할 자로 암시되었습니다.(12,4-6) 물론 이 부분은 복음서가 기록되던 시점

 

에서 소급하여 언급된 부분이지만 예수님은 복음서의 기록과는 관계없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만 빼고는 다른 어떤 제자들도 유

 

다가 배반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할 수 없었는데, 유다는 최후의 만

 

찬 석상에도 함께 자리를 하였고, 예수께서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그의 발

 

도 씻어주셨기에 그때까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자 예수

 

께서는 몹시 착잡한 심정으로 예언적 비밀을 폭로하시는데,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 가운데 나를 팔아 넘길 사람이 하나 있다." 이 비밀이 폭로되

 

자 만찬석상은 순식간에 서로에 대한 의심과 자신에 대한 변명의 자리로

 

변하게됩니다.

 

 

제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가 사뭇 걱정스런 어투로 "주님, 저는 아니

 

겠지요?"(마르 14,19; 마태 26,22) 하고 자신 없는 반문을 하기도 하고,

 

"자기들 중에 그런 짓을 할 자가 도대체 누구일까"(루가 22,23) 하고 서로

 

묻기도 했습니다. 이미 그 전날 대사제들을 찾아가 예수를 넘겨줄 것을 약

 

속하고 그 값으로 은전 서른 닢을 챙긴 유다도(마태 26,14-15) 나서서 예

 

수께 "선생님, 저는 아니지요?"(마태 26,25) 하고 물었습니다. 수제자(베드

 

로)와 애제자(통상 요한을 지칭함) 사이에 눈짓이 오가면서 마침내 배반자

 

를 색출하는데, 애제자가 예수께 속삭입니다.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예

 

수께서 스스로 배반자를 암시적으로 지목하시는데, "내가 빵을 적셔서 줄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이로써 배반자는 수제자, 애제자, 예수님, 그리

 

고 배반자 스스로의 선에서 밝혀졌습니다. 이제 배반자는 더 이상 그 공동

 

체 안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게되자 예수님 스스로 유다를 밖으로 내보내

 

십니다.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 유다는 곧 밖으로 나갔고 때는 밤이

 

었습니다. 유다에게는 배반의 밤이지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실

 

영광의 밤을 내다보시고 남은 제자들에게 말씀을 계속하십니다.

 

 

베드로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오갔을까요? 아마도 머릿속이 복잡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데, 요한복음에서 참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새계명"(34-35절) 부분이 오늘 복음에는 빠져있

 

다고 했는데, 이 부분을 원래 자리에 넣어 읽어보면, 베드로가 딴 생각을

 

하고 있었거나 그의 생각이 한 곳에 머물러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

 

마도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

 

다"(31-34절)는 부분에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복음서의 문맥상 베드로

 

는 예수께서 선포하시는 새계명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을 흘려들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 때문에 갑작스레 "주님,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하고 물으면서,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 하고 장담합니다. 결국 수제자도

 

걸려들었는데, 예수께서는 스승을 배반할 자가 유다만이 아님을 이미 내

 

다보고 계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새벽닭이 울기 전에 실

 

제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고, 닭이 울자 가슴을 치며 눈

 

물을 흘려야 했습니다.(마태 26,75; 루가 22,62)

 

 

사태가 이쯤 되면 제자들 중 어느 누구도 스승을 배반할 가능성에서 배제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바로 그날 밤에 제자들은 예수를 버리

 

고 모두 달아났습니다.(마태 26,36) 스승에 대한 제자의 신의와 충성은 호

 

언장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 속에 있음을 봅니다. 배반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정작 배반했을 그 순간에 해야 할 가장 필요

 

한 일은 즉시 회개하는 것입니다. 유다인 종교철학자 마르틴 부버(1878-

 

1965)는 '인간의 가장 큰 잘못은 회개할 수 있는 모든 순간에 회개하지 않

 

는 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주간 화요일은 이렇게 가리옷 사람 유다와

 

수제자 베드로가 걷게 될 길, 같은 길인 듯 하면서도 서로 다른 길, 분명히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아버지와의 일치
 
유다와 베드로의 배반을 예고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너무 담담합니다.

 

당신을 팔아 넘기고 부인하고 달아나 버릴 제자들에 대한 섭섭한 감정이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이 훗날 어떻게 당신을 따르게 될지 아셨겠지

 

만,

 

그것이 당장의 고통을 없애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매를 맞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육체적 고통보다

 

제자들과 군중들로부터 받은 배신과 조롱이 그분을 더 괴롭혔을 것입니

 

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와 이룬 깊은 일치로

 

철저한 고독과 육체적 고통까지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사제로 사는 나는 어디서 그런 힘과 위로를 얻는지 반성합니다.

 

하느님 대신 인간적 위로에 더 기울어지는

 

나의 연약함을 송두리째 십자가에 못박고 싶습니다.
 

 

 

사랑의 주님,

제가 오늘 만난 어려움을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받아드리려 하오니
당신께 작은 위로가 되게 하소서.

 

                                   

                                                                           - 출처: 단순한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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