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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슬피운 사연 5
작성자김창선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23 조회수884 추천수4 반대(0) 신고

  

    제 12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하는 자리이다.  나는 십자가 나무 앞에서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한때는 어떤 기적도 행하실 수 있는 ‘하느님의 아들이 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나?’하고 의아해 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와 예수님의 죽음이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따라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십자가의 신비이며, 죽음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


   나는 무릎을 꿇은 채로 “주님, 당신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끝이 아니라 시작인줄 압니다.  삶의 여정에서 시기와 질투의 늪에 빠져 시련 받은 지난날은 십자가 희생의 제물이 된 줄 압니다.  이제 다시 태어나 당신과 사랑의 친교를 맺게 해 주소서.  당신의 거룩한 피로 저의 영혼을 깨끗이 씻어 주소서. 아멘.”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성모님께도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하고 기도를 드리면서 13처로 향했다.

 

   제 13처는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리심을 묵상하는 곳이다. 나는 다시 십자가 나무 앞에 무릎을 꿇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이 성모님의 품에 안긴 모습을 묵상하였다. 축 늘어진 예수님의 성시가 성모님의 치마폭에 쌓인 「삐에따 성모님」모습의 성물을 자주 보아왔기 때문에 그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성시가 내려진 빈 십자가, 「유다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고 쓴 저 명패는 만민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심으로서 하느님과 인류와 새로운 계약을 맺은 성사의 표지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할 것과 우리의 이웃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저 십자가가 말없이 나타내 주는  하느님의 사랑의 상징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또한 성시를 품에 안으신 성모님의 가슴을 찌를 듯한 아픔과 통고의 눈물을 되새겨 보았다.


  나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체 마음의 기도를 바쳤다.  “주님,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신 당신의 성시는 이제 거룩하신 어머니의 두 팔에 드리워졌습니다.  당신은 이제 모든 것을 이루셨으니 이제는 저의 차례인줄 압니다.  어머님의 도움 받아 십자가 나무가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그 동안 나태의 잠에서 깨어나 생명의 빵과 참 음료를 받아 모시고 생기 돋아나 날 오라 부르시면 달려가겠습니다.  주님 이끌어 주소서. 아멘.”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상처 깊이 새겨주소서.’라고 기도하며 14처로 향했다.


   제 14처는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하는 십자가의 마지막 길이었다.  예수님은 사십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과 기도를 하신 후 공생활에 나서시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며 가난하고 병든 자의 벗이 되어주셨다.  수난 전에도 올리브 산에서 제자들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시며 당신의 뜻을 이루어 달라는 사명을 남기신 후 십자가에서 원수들의 죄까지도 용서하신 체 저 세상으로 떠나셨기에 당신의 주검은 이제 돌무덤에 묻혀 있는 것이다. 

 

   우리를 진실로 사랑하셨고 세상의 참 평화를 위해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던 예수님을 이 세상 어디에서 다시 만나 뵐 수 있단 말인가? 당신께서 단식하시면서 기도하셨고 친히 걸으셨던 그 길목에서 만난 가난한 이웃과 그들에게 베푼 자선의 모습에서 주님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완수하시고 돌무덤에 묻히신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며 조용히 마음의 기도를 올렸다. “주님, 세속 사람들은 무덤이 세상의 끝이요 그곳에는 희망도 없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 하셨기에 ‘죽어야 산다.’는 새로운 희망을 안고 저의 죄를 통회합니다.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시었고(루가 5:32), 의인 아흔 아홉보다 죄인 한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하느님 나라에서 더 기뻐한다(루가 15:7)고 일러 주셨지요.  이제 새 날, 새 하늘, 새 땅에서, 새 사람이 되겠습니다. 당신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그 길, 회개와 자선과 단식과 기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소서. 아멘.”

 

   십자가의 길을 걸어와  14처에 우뚝 솟은 「십자가 나무」를 바라보고 내가 참회의 시간을 가지는 동안 문득 창세기의 원죄이야기가 떠올랐다.  하와가 에덴동산 한가운데 있는 과일나무의 열매 중 생명나무의 것을 따먹지 아니하고, 간교한 뱀의 유혹에 빠져 먹음직스럽고 보기에도 탐스러운 열매가 인간을 영리하게 해 줄 것 같아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고 함께한 아담에게도 따주어 먹게 하였다. 알몸이 된 것을 부끄럽게 여긴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렸다.


   날이 저물어 선들바람이 불 때 하느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그들은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야훼 하느님 눈에 뜨이지 않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는데,  야훼 하느님께서  "너 어디 있느냐?"하고 아담을 부르셨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내가 세속의 삶을 살면서 수많은 죄를 지을 때마다  하느님께서 “요한아, 너 어디 있느냐?”라고 수없이 부르셨을 터인데, 유혹에 빠진 나는 귀마저 막힌 신세가 되어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하였으니 죄인 중에 큰 죄인임을 깨달았다. 


   나는 14처를 떠나기 전에 삶의 여정에서 생각과 말과 행위로 그리고 의무를 소홀히 한 죄가 모두 나의 탓임을 자책하고 나의 가슴을 치며 고백의 기도를 바치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였다.  이어서 나는 통회의 기도를 바쳤다.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 받으셔야 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사오니 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아멘.”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산기슭을 내려와 성당 안에 마련된 고해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고해소로 가는 동안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나의 죄를 모두 고백하기로 결심하였다. 진정 마음의 평화와 죄의 사함을 얻으려면 모든 죄를 낱낱이 고백해야 함에도 고백하기조차 부끄러워 전에는 "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라 말했던 게 아닌가 생각하니 더욱 참담한 심정이 되어 이 죄를 어떻게 씻을 수 있을지 마음이 무거웠다. 고백한지 2개월이 되었지만 과거 제대로 고백하지 못한 죄와 남을 용서하지 못한 죄까지도 고백하였다. 담담한 어조로 시작된 고백은 어느새 눈물어린 사연으로 변했고 울먹이는 가운데 고백하다보니 고해성사를 보는데 거의 반시간이나 걸렸다.


   사제의 훈계와 보속은 나의 마음의 등불이 되어 광명의 길로 나아가게  밝혀주었기에 나는 감격하여 다시 흐느끼게 되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성전에 끌려온 여인에게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는 다시는 죄짓지 말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요한 8장)이  새롭게 마음에 새겨졌다. 나는 그 날 그렇게도 슬피 울었다. 내가 죄인 중에 큰 죄인임을 깨닫고 슬피 울었다.  더구나 씻을 수 없는 나의 죄를 용서받았기에 감격의 눈물마저 흘리고 또 흘려야만 했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느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는 말씀은 그 날의 나를 두고 하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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