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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저는 아니겠지요 ?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23 조회수915 추천수6 반대(0) 신고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아 같이 음식을 나누시면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몹시 걱정이 되어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물었다.(마태 26, 20-22)


                                                   곽명호 신부(대전교구 신탄진성당 주임)    

  

신학교의 사월은 참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다. 라일락 향기가 창가에 눅

 

눅히 젖어 들고,

 

고요함 속에 들려오는 소쩍새의 울음소리는 밤을 더욱 깊고 그윽하게

 

만들었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하느님은 세상을 온통 병아리 연두빛으로 바꾸어

 

놓으셨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돌아다보면 힘겹던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신학교를 느지막이 들어간 내게 가장 큰 걸림돌이요 십자가는 뜻밖에도


동료 신학생들에게 자존심을 짓밟히는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닌 사소한 말에도 나는 상처를 받았다.

 

그해 사월은 내게 잔인한 달이었다.

 

이해받지 못한 분노와 미움이 그리고 구겨진 자존심이 뒤엉켜 갈팡질팡

 

하다가  결국에는 매일 습관처럼 성당을 찾았다.

 

묵상을 한 것이 아니라 미움을 삭이느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주님! 저는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조그마한 자존심 하나인데 이것마저 빼앗으려 하

 

시니  참 어이가 없습니다.”

 

사월이 다가도록 주님께서는 아무런 답변도 없으셨다.

 

매일 물끄러미 성당에 앉아 아무 생각도 없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길게 늘어진 현란한 봄 햇살과 창문 너머로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쩍새의

 

울음소리 속에 묻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라한 모습으로 졸고 있던 내 영혼 깊은 속에서

 

“네가 양보할 수 없다고 한 조그만 자존심과 이기심이 네가 버렸다고 말

 

한  그 모든 것보다 더 큰 것이다”라는 말이 울려 퍼졌다.

 

사월의 길고 지루했던 싸움이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순식간에 뒤집기 한

 

판으로 끝났다.

 

주님수난 성지주일은 일년 중 복음을 두 번 읽는 특별한 전례를 지낸다.


성당 밖에서 평화의 행렬 전에 읽는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모습을 전하고 있다. 사람들은 겉옷을 벗어 길에 깔고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이여,

 

찬미 받으소서. 하늘에는 평화, 하느님께 영광”이라고 찬양한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그야말로 최고의 환영식을 베풀어 준 셈이다.

 

그런데 성당 안에 들어와서 읽는 복음은 정반대로 처절한 예수님의 십

 

자가 죽음을 전하고 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하며 그들이

 

가장 혐오하는 십자가에 못박으라 소리친다.

 

방금 찬미의 노래를 부르던 입으로, 이제는 거침없이 욕설과 저주의 고

 

함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화나게 하였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매년 같은 수난 복음을 반복하여 읽고 있는 것일까?

 

예수님이 그렇게 비참하게, 그렇게 고통스럽게 돌아가셨음을 되새기자

 

는 것일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너희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일게다.

 

자기 이기심의 잣대로 형제들을 재고 판단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미움과

 

분노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그리고 그 미움과 분노의 끄트머리에서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라고 소

 

리치며 단죄의 칼을 휘두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스가리옷 유다처럼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오늘도 여전히 예수님은 십자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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