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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05) 지극히 개인적인 십자가의 길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23 조회수1,168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5년3월23일 성주간 수요일 성 투루비오 데 모그로베호 주교 기념 없음 이사야50,4-9ㄱ;마태오26,14-25ㅡ

     

       지극히 개인적인 십자가의 길

                                      이순의

 

 

중림동 성당. 서소문 손교자 기념탑 앞의 십자가의 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 예수님.

◎저를 위하여 온갖 수난을 격으신

주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성모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고자 하나이다.

그동안 겁없이 나눈 무례를 뉘우치고

주님의 수난을 깊이 새겨 겸손한 마음을 주시며

묵상방 가족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모두가 평화로워지도록 은혜를 내려 주소서.

 

제1처로 가며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의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선고 받으심을 묵상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그리스도님

    깊은 절을 하며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구세주 예수님,

저로인하여

마음이 갈라지고 미움과 원망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으셨으니

그 야속한 분노와 질책을 감싸 용서하시고

주님께 의탁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잠깐 묵상한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제2처로 가며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의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구세주 예수님,

저를 사랑하신 까닭에

묵상글을 쓰는 영광을 허락하셨나이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지고 정진하여 일치하지 못하고

경험없는 복락을 누렸나이다. 

앞으로는 주님을 본받아

근신하여 경건한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소서.

잠깐 묵상한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제3처로 가며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의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구세주 예수님,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걸림돌들을 만나

넘어지고 깨어지는지 모릅니다.

저로인하여

기력이 떨어지고 마음이 무거워 넘어진

많은 이유들을 제거해 주시고

변함없는 주님의 일꾼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잠깐 묵상한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제4처로 가며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의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구세주 예수님,

온갖 모욕과 조소의 고통길에서도

어머니께서는 기꺼이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저로인하여

마음이 상하고 원망에 지친 마음들을

사랑이신 어머니의 마음으로 감싸 주시어

기꺼이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잠깐 묵상한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제5처로 가며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의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구세주 예수님,

저는 늘 시몬을 부러워하였습니다.

구세주이신 주님의 십자가를 지도록 선택된 시몬이 될 수 있다면

언제든지 그 청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시몬이 아니라

내 십자가로 여러 마음들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저로인하여

짐으로 지고 있을 마음의 십자가들을 제거 하셔서

모두 제 등에 얹어주소서.

잠깐 묵상한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제6처로 가며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의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구세주 예수님,

제가 주님의 얼굴에 침을 뱉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저의 부덕한 소치로 인하여 주님의 얼굴에

침 뿐만 아니라, 온갖 더러운 오물을 끼얹어

마음들을 어지럽히고 더럽힌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두의 마음들이 베로니카가 되어

주님의 얼굴을 닦아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소서.

잠깐 묵상한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제7처로 가며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의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7처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

.

.

ㅡ그만 줄입니다.

 

 

중림동 성당의 제대 유리화

 

어제는 중림동 성당에 다녀왔습니다. 14처 기도문을 들고 십자가의 길을 걷고 오기는 했지만 그 기도가 어찌나 개인적인 바람이든지! 그만 제 자신에게 실망스러운 한탄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그 자체가 지금 제가 격고 있는 가장 근접한 심정이라고 믿었으므로 정성껏 봉헌하고 왔습니다. 주님께서는 또 오롯이 다 알고 계시므로 부끄러운 것도, 수치스러운 것도 열심한 마음으로 봉헌 드리고 왔습니다.

 

이 사순시기가 지나고 부활이 오시면 모든 벗님들의 마음에 평화와 화해가 가득하시기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또 다 함께 주님의 지휘봉을 바라보고 있으므로 그 지시에 따라서 충실할 것을 믿습니다. 만난적도 없지만, 본적도 없지만, 주님을 중심에 둔 공동체의 신비가 섭리로서 작용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지질이도 못난 죄인인 저를 보지 말으시고, 각자의 마음 가운데 사랑으로 작용하시는 분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중림동의 단아한 풍경은 포근하게 다가왔습니다. 빌딩 사이에 틈으로 박혀있는 기와 집들이 그곳이 과거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붉은 벽돌들이 낡아서 바스러진 흔적들도 흔하게 목격되고, 구불구불한 도로의 표정들은 걸음이 가는대로 길을 뚫었을 옛사람들의 격의 없는 인심이 느껴지고..... 오래된 기억을 되새기며 더듬더듬 찾아서 갔습니다. 그런데 지저분한 천막들이 너덜너덜 하였던 흔적은 사라지고......

 

복원공사가 끝난 성당은 너무나 말끔한 새 벽돌들로 규격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인상은 이미 탈피되고, 오히려 작고 아담하며, 익숙한 정겨움이 심성에 평화를 안겨주었습니다. 근래에 짖는 새로운 양식의 성당들이 대규모의 콘크리트 공간을 이루고 있는 반면에, 오히려 약현성당의 작은 몸매는 제 몸에 아주 꼭 맞는 아늑함을 안겨 주었습니다. 오랫동안 입고 있었던! 매우 편안한 안정감을 주는! 그곳이 선조들의 체취가 묻어있는 곳이 아니라 내가 오래오래 살았던 내집 같은 감촉이 돌았습니다.

 

예전부터 보존보다는 복원이 줄 실망감은 예견하고 있었으므로 그대로의 편안한 모습에 감사를 드리고 왔습니다. 상처받고 고난당하신 성당이 그대로 보존 되었다면 성주간의 성지순례가 더 숙연한 체험으로 다가왔을지는 저도 모릅니다. 너무나 정갈하게! 시련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조차 없이! 오래 되었다고 느끼기에는 내 머리속의 이론을 동원해야만 가능한! 그렇게 정돈이 잘된 성당이었습니다. 그래도 마당을 밟으며 마음은 행복했습니다. 그 성당이 유실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그렇게 나를 맞고 계시며, 또 더 후세의 영혼들을 기다리고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복원은 더 먼 후세의 신앙인들에게 훨씬 이전의 모습을 남겨서 지켜주고 싶어서도 반드시 필요했을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그 스테인드그라스가 얼마나 황홀한지요?! 그 영롱함이 방울방울 피가 되어 쏟아지는 감동이었더랍니다. 그런데요. 성지순례를 할적마다 아쉬운점이 있습니다. 각 본당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에 대하여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누구의 작품인지? 어떤 영감에서 만들어졌는지? 성서의 기록은 어느부분이 내재되어 있는지? 알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본당을 많이 다니고 작품을 경험하다보면 대충 어느 분의 작품이고, 어떤 영감이 느껴지며, 작가의 신앙관이 어떠하신지를 짐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험으로는 다녀 왔으나 본 것이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냥 자신이 소속한 성당과 모양이 다른 성당만을 보게되고, 거기도 존재하셨을 전능하신 분에 대한 체험을 느끼는, 그런 성지순례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지순례지에서 종교 예술을 접한다는 것은 또 다른 복음을 접하는 것과 같게 됩니다.

 

또한 교회 예술의 안목을 넓히는 것이며, 그 수요를 증가시키고, 시대적 신앙의 모습을 기록하는 역사적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본당이 지니는 교회 예술품에 대하여 작은 안내지 정도가 아쉽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쉬운 성당에서 기도를 마치고, 마당의 언덕을 내려와 부조로 조각된 서소문 순교자 위령탑 앞에 섰습니다. 기도는 하지 않았고, 조각속에 모셔진 어른들에게 사진을 찍어드리겠다고 <김치>를 하시라고 우겼더랍니다.

 

그랬더니 선열들께서 모두들 <김치>를 하셨더랍니다. 찰칵 찰칵! 사진을 찍어드리고, 그 시절에는 상상도 못하실 디지탈 사진기를 구경시켜 드렸으니, 사진까지 굿뉴스에 올려 드릴 것이니, 저와 굿뉴스의 가족들이 늘 평화로울 수 있게 도와주셔야한다고 소원하였습니다. 전에도 중림동에 <십자가의 길> 언덕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 길의 중간에 서소문 순교자 탑이 있었습니다. 다음에 성지순례를 가게되면 <십자가의 길> 기도를 그곳에서 성인들과 함께 받치기로 약속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고.....

 

마당의 자판기에서 율무차를 한 잔 뽑아서 나눔의 방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카페에 온 것 처럼 분위기가 짱!  이었드랍니다. 투명 유리 탁자위에 투명 유리 꽃병들이 놓여있고, 하얀색 카라 꽃이 두 송이씩 꽂혀 그 줄기의 초록이 어찌나 화려하든지! 나눔의 방에는 성당쪽으로 벽 전체가 투명 유리창으로 되어 있습니다. 창가에 놓여진 탁자에 앉으면 마치 유리상자 속에 담겨져있는 근사한 전리품인 성당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내가 건물 안의 유리 상자 안에서 성당을 바라 보고 있는데, 성당이 유리 상자 안에 담겨져 있는 착각이 들었습니다.

 

언제 한 번 성지 순례를 다녀 오시지요?!

저는 근사한 봉헌을 하려고 성지순례를 갔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십자가의 길> 기도를 봉헌하고 왔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또한 자비로우시리라고 믿으며, 신앙의 선조들께서는 귀여운 후손에게 너그러우셨으리라고 믿나이다. ㅡ아멘ㅡ

주의 사항ㅡ 화장실에 들어 갔는데 전등 스위치를 찾지 못해서 껌껌한데 앉아서 여명이 생길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미리 사무실에 화장실 스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보시도록! 

 

ㅡ그때에 예수를 배반한 유다도 나서서 "선생님, 저는 아니지요?" 하고 묻자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그것은 네 말이다." 마태오26,25ㅡ 

 

 

 

나눔의 방 유리창 안에서 바라 본 성당

 

 

서소문 순교자탑 ㅡ 어른들께서<김치>라고 하시며 폼을 잡아 주셨습니다.

 

 

 

전철 2호선 충정로 역에서 내리면 중림동 성당이라고 써진 화분들이 삭막한 실내를 시각적으로 즐겁게 맞아주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만저보니 전부 가짜였습니다. 히~! 햇빛 없는 지하에서 중림동 성당이라고 써진 초록들이 순례길의 제 마음을 기쁘게 해 주셨습니다. 중림동 교우들께 감사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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