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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없이 밑으로 밑으로만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23 조회수957 추천수15 반대(0) 신고
3월 24일 성주간 목요일-요한복음 13장 1-15절


“주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한없이 밑으로 밑으로만>


자신의 전 생애를 성서 안에서 시작하여 성서 안에서 사셨고, 또한 성서 안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신 분, 그래서 임종의 순간 성서를 끌어안고 영원한 나라로 떠난 사제 선종완 신부님을 주제로 한 논문을 읽었습니다.


선종완 신부님의 청빈한 삶은 동료 교수 신부님들 사이에서 유명했다고 전해집니다.  신부님께서 지도신부로 계시던 신천리 성모영보수녀회를 방문한 심상태 신부님은 이렇게 당시의 감회를 전하고 계십니다.


“신부님은 참으로 청빈한 삶을 사시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셨는데, 흙으로 지은 자그마한 집 안에 들어가 보니까 제대로 된 벽지가 아닌 신문지로 벽을 바르시고, 거친 목재로 짜여진 책상 위해서 성서를 번역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또한 선종완 신부님께서 지니셨던 겸손의 덕은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공손하게 경어를 쓰셨습니다. 단 한 번도 권위적인 모습으로 사람을 대한 적이 없었답니다. 항상 사람들을 존중해주셨답니다. 어찌나 겸손하셨던지 자신이 애써 번역한 번역서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조차 꺼리셨답니다.


성서학 박사 과정을 마치시고 논문까지 제출하셨기에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러 오시라고 할 때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공부를 했으면 그만이지 학위는 무슨 학위, 나 같은 사람이 학위를 얻으면 박사들의 가치가 떨어져서 안돼요. 박사 학위는 필요 없어요.”


선종완 신부님께서는 소신학생들에게까지 깍듯이 존댓말을 쓰신 걸로 유명했습니다. 누구를 만나시면 행여 질세라 먼저 머리를 깊이 굽히시며, 그것도 부족하셔서 꼭 세 번은 더 머리를 굽히시고야 마셨습니다. 자리에 앉을 때는 아무리 권해도 한사코 윗자리를 사양하셨답니다(‘신학과 사상’ 제51호, ‘선종완 신부의 삶을 통한 가르침’<정인준> 참조).


오늘 성목요일 밤, 요한 복음사가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겸손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자신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님의 행동은 제자들이 전혀 예측 못했던 돌출행동이었습니다. 너무도 갑작스럽고 어이없는 예수님의 행동 앞에 제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그만큼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행동은 당시 유다 관습 안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유다지방은 강수량이 적기에 대기가 건조하고 그만큼 먼지가 많았습니다. 샌들 모양의 신발을 즐겨 신었기에 발에 먼지가 많이 끼었습니다. 그래서 외출 다녀온 주인이 집으로 들어오면 제자들은 주인들의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발 씻어주는 일은 철저하게도 종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 종이 할 일을 대신하고 계십니다. 묵묵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너무도 당황스럽기도 하고 황공하기도 했던 제자들은 발을 씻어주시는 주님을 향해 다들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제자인 제가 스승님의 발을 씻어드려야 마땅한데, 오히려 스승님께서 제 발을 씻어주시다니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이유를 곰곰이 묵상해봅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사실 말이란 것이 한계가 있지요. 때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제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알아듣게 설명해도 아예 귀를 막아버리는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이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날은 멀지 않았는데, 이제 당신이 떠나시고 나면 제자들이 겪을 고통이 눈에 선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전혀 변화나 성장이 없었습니다.


말로 아무리 외쳐도 효과가 없음을 알게 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마지막 방법을 쓰십니다. 온몸을 통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직접 시범을 보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언 같은 다음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남기십니다.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


오늘 성목요일입니다. 한없이 겸손하신 예수님을 따라 한없이 형제들의 밑으로 밑으로만 내려가는 우리, 그래서 가장 밑바닥에서 형제들을 섬기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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