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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3. 고해성사의 중요성
작성자박미라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24 조회수825 추천수2 반대(0) 신고

태초에 "빛이 생겨라!" (창세기 1, 2) 하고 말씀하신
"빛의 근원이신 신랑"을 차지하기 위하여 
그분께로 나아가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고해 성사를 잘 보는 것'입니다. 

죄인이기에 가는 이 길에서 죄를 없애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죄를 없애는데는 "고해 성사" 외에 더 좋은 방법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고해 성사"를 잘 보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영신적으로 바르게 이끌어줄 고해 사제를 잘 만나는 것입니다.

대 데레사 성녀는 『완덕의 길』(성 바오로 출판사,1967,최민순 역) 4장 15절에서 
"고해 사제의 세속적 경향이야말로 위험 천만이요, 
모든 수녀들에게 지옥이요, 해독을 끼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어느 의견을 따라야 할지 모를 적에 가장 현명한 방법은 
어느 학식 있는 분을 찾아서 말씀을 드리고, 그분에게 고해 성사를 보고, 
그분이 시키는 대로하는 것"(4장 14절)이라고 하며 
영신적인 풍부한 지식과 덕이 겸비한 고해 사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5장 3절에서는 "이미 아시는 바와 같이 그 첫째 주춧돌은 바른 양심입니다. 
온 힘을 기울여 소죄를 피하고, 가장 완전한 것을 따르는 것입니다. 
고해 신부면 누구나 이런 것쯤은 알고 있겠거니 하겠지마는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나는 어떤 신부님과 양심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신학 과정을 다 떼신 분이었는데도 아무 것도 아닌 문제라고 말해 준 까닭에 
나는 큰 해를 입은 일이 있습니다. 
물론 나를 일부러 속이려 했거나 또 그럴 만한 이유가 없었다는 것을 
나는 잘 압니다. 그는 더 이상 지식이 없었던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이 말고 다른 두 세 분하고도 그런 일이 또 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완덕의 길로 나아가는데 
고해 사제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고해 성사를 잘 보는 일"보다 제게 더 중요한 일은 없었습니다. 
거의 2주에 한 번씩 고해 성사를 보았는데(2주에 한 번씩 성사 볼 기회가 있었기에), 
성사를 보면 볼 수록 더욱 더 '고백해야 할 죄'가 많아지기만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점점 더 죄를 많이 짓고 있는 것일까요?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죄를 점점 더 많이 지어서 '고백해야 할 죄'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럽고 추한 겉껍질을 없애면 없앨수록 빛이신 그분과 더욱더 가까워지기에 
그 빛을 받아 더러움이 점점 더 구체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치도 양파 껍질을 까면 깔 수록 더 두꺼운 껍질이 나오는 것처럼 
'이런 죄를 범하지 않으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예전에는 전혀 죄라고도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엄연한 죄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마침내 두꺼운 속 알갱이 속에 더 이상의 막이 없음을 알 수 있듯이 
그 더러움의 끝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 영혼의 신비여! 자연의 신비여!

그것을 구체적으로 정리하자면 
처음에는 '이웃에게 해를 입힌 것이 저의 죄'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웃이 제게 도움을 청했을 때 도와주지 않은 것이 저의 죄'였고, 
그 다음에는 '이웃의 바람대로 해주지 않은 것이 저의 죄'가 되었고, 
마지막에는 '이웃이 느끼지 못하고 있는 영혼 사정을 도와줄 수 있게 
저 자신이 깨끗하지 못함이 저의 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제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을 때 
저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것처럼 '이웃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도록
저 자신을 온전히 깨끗하게 하려고' 
십자가의 길 안에서 점점 더 크게 다가오는 저의 더러움을 없애려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죄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십계명은 바로 사랑의 계명인데, 
1-3계명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 관한 것이고, 
4-10계명은 이웃에 대한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마지막날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때에도 오로지 
"얼마나 사랑을 베풀었는가?"에 대해서만 심판하시겠다고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마태오 25, 40. 45 

'죄를 짓는다는 것'은 
①계명인줄 알면서 ②스스로 ③어기는 것입니다. 

계명인줄 알면서 스스로 어기게 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것은 "나의 주인이신 분"을 바로 알아보지 못하고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저버리는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나를 만드신 주님보다 나를 더 크게 생각하는 "교만심"과 
내가 영원히 살 수 있는 깨끗한 사람이 되기만을 원하시는 그분의 뜻을 거슬려 
나를 더럽게 만드는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하는 "불순명"입니다. 

그 두 가지만 잘 다스릴 수 있게 된다면 나는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게 되며, 
그렇게 된다면 나는 더 이상 십자가를 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는 날을 향하여 뼈를 깎는 아픔을 겪으며 
자신을 다스리는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마침내 그들의 손에 넘어가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성밖을 나가 희브리말로 골고타라는 곳으로 향하셨다. 
골고타라는 말은 해골산이란 뜻이다. 요한 19, 17


오늘!

세상 사람들을 아버지의 집으로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매일 매일 캄캄한 고해소 그 안에서

애를 쓰고 계신 모든 신부님들께

주님께서 많은 은총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오며

거룩한 사제 되시라고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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