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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토요일 부활 성야 복음묵상(2005-03-26)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26 조회수1,238 추천수2 반대(0) 신고

천사가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무서워하지 마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를 찾고 있으나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다. 전에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그 분이 누우셨던 곳을 와서 보아라. 그리고 빨리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께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당신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거기에서 그분을 뵙게 될 것이오' 하고 알려라. 나는 이 말을 전하러 왔다."(마태 28, 5-7)

 

 

부활 찬송(Exsultet)

 

용약하라 하늘 나라 천사들 무리. 환호하라 하늘 나라 신비. 구원의 우렁

 

찬 나팔 소리,

 

찬미하라 임금의 승리. 땅도 기뻐하라, 찬란한 광채 너를 비춘다.

 

영원한 임금의 광채 너를 비춘다. 비춰진 땅아 깨달으라, 세상 어둠 사라

 

졌다.

 

기뻐하라 자모신 거룩한 교회, 위대한 광명으로 꾸며진 거룩한 교회.

 

백성의 우렁찬 찬미 소리 여기 들려온다. 이 거룩한 광명의 빛 찾아,

 

사랑하며 함께 모인 형제자매, 뜻을 같이하여 전능하신 하느님께 그 자비

 

하심 간구하자!

 

아무 공도 없는 이 죄인을 성직 대열에 부르시며 굽어살피신 주님, 찬란한

 

광채 보내시어,

 

이 초의 찬미 완성하소서.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와 함께.)

 

+ 마음을 드높이! ■ 주님께 올립니다.

 

+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마음과 뜻을 다하여, 눈으로 볼 수 없는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독생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소리 높여 찬송함이 마땅하고 옳은 일

 

이오니,

 

성자께서는 우리 대신 성부께 아담의 죄 갚으시고, 거룩한 당신 피로 옛

 

죄 씻으셨나이다.

 

파스카 축일 오늘 지내오니, 참된 어린양 오늘 살해되시어, 그 피로 우리

 

마음 거룩해지나이다.

 

이 밤은, 주 친히 우리 조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불러 내시어,

 

홍해 바다 마른 발로 건네 주신 거룩한 밤. 거룩한 이 밤은,

 

불기둥의 빛으로써 죄악의 어둠 몰아낸 밤. 이 밤은, 온 세상 어디서나,

 

그리스도 신자들을 세속 온갖 죄악과, 죄의 어둠에서 구원하여,

 

은총으로써 성덕에 뭉쳐 준 밤. 이 밤은, 죽음의 사슬 끊으신 그리스도,

 

무덤의 승리자로 부활하신 밤. 구원될 희망 없었다면 태어나 무엇하리오?

 

오, 기묘하도다, 우리에게 베푸신 자비! 오, 헤아릴 길 없는 주님 사랑!

 

종을 구원하시려 아들을 넘겨 주신 사랑! 참으로 필요했네, 아담이 지은

 

죄,

 

그리스도의 죽음이 씻은 죄. 오, 복된 탓이여! 너로써 위대한 구세주를 얻

 

게 되었도다.

 

오, 참으로 복된 밤! 너 홀로 때와 시를 알고 있었으니, 너 홀로 그리스도

 

의 부활을 알았도다.

 

이 밤은 기록된 밤, "밤이 낮과 같이 밝으리니, 내게 기쁨 주는 밝은 밤"이

 

라 하였도다.

 

거룩하여라, 이 밤. 죄를 용서하고 허물 씻으며, 도로 준다. 죄인에게 결

 

백, 우는 이에게 기쁨.

 

미움 없애고 화목 이룬 이 밤, 권세를 꺾는다. 은총 가득히 내리는 이 밤

 

에,

 

아버지 받으소서, 향기로운 이 저녁 제사. 주님께 이 초를 성대하게 봉헌

 

하오며,

 

벌들이 만든 것을 성직자의 손으로, 거룩한 교회가 봉헌하나이다.

 

이미 들려오는 불기둥의 찬미 소리, 하느님 영광 위해, 밝은 불이 켜졌도

 

다.

 

불꽃이 아무리 갈라져도, 나누어 받은 불꽃은 감소될 줄 모르며,

 

밀이 녹아 타오르고, 어미 벌이 마련한 밀, 귀한 초를 만들었네.

 

오, 참으로 복된 밤, 하늘과 땅이 결합된 밤, 하느님과 인간이 결합된 밤!

 

그러므로 주님, 주님 영광 위하여 봉헌된 이 촛불을 끊임없이 타오르게 하

 

시어,

 

이 밤의 어둠 물리치소서. 향기로운 제사로 받아들이시어, 밝은 천상 광채

 

에 합쳐 주소서.

 

샛별이여, 이 불꽃을 받아들이소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인류를

 

밝게 비추시는 샛별이여.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혹, 십자고상을 끌어안아 보신적이 있으신지요? 끌어안을 정도로 큰 십자

 

고상은 대체로 사람손이 닿기 힘든 높은 곳에 있어서 만져보기조차 힘들

 

겠지만 남양 성모성지에 가면 비스듬히 누워계신 대형 십자고상이 있습니

 

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한번

 

안아보십시요, 그리고 사랑한다고 속삭여보십시요, 주님의 따뜻함을 느끼

 

실 수 있습니다. 어제 예수님은 참으로 돌아가셨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셨으며, 인간실존이 경험해야만 하는 가장

 

부정적이고, 두렵고, 비참한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

 

러나 우리는 희망하고 또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

 

활하심으로써 우리 인간의 죽을 운명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임을 말

 

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오늘 하루종일 십자가도 가리고, 제단도 벗기

 

고, 감실도 비워둔 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성토요일의 무언의 메

 

시지'입니다.

 

성토요일을 비추던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교회

 

는 바빠지는데, 모두가 주님의 부활을 맞이할 준비로 분주하기 때문입니

 

다. 정해 놓은 시간이 되면 화로의 숯불만이 깜깜한 밤을 밝히는데, 어둠

 

을 밝히는 것은 오직 빛이요, 죽음을 이기는 것은 오직 생명입니다. 빛과

 

생명의 잔치, 이것이 오늘 성야전례의 핵심입니다. 오늘 성야는 성토요일

 

이 전하는 무언의 메시지가 성취되는 밤이요, 일년 365일의 밤들 중에 가

 

장 거룩하고 성대한 밤입니다. 예수께서 어둠을 뚫고 빛으로, 죽음을 이기

 

고 생명으로 부활하신 밤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부활성야 예식을 함

 

께 치러본 사람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 왜 '부활신앙'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부활성야의 예식은 총 4부로 이루어지는데, 먼저 제1부에서 죽음을 이기

 

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시간과 공간, 빛과 생명의 주인이심

 

을 고백하는 '빛의 예식'을 거행합니다. 축성된 불로써 준비된 부활초를

 

밝히고 이 부활초로부터 모두가 차례로 불을 전해 받는데, 부활하신 주님

 

으로부터 빛과 생명을 모두가 전해 받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빛의 예식은

 

주님 부활의 기쁨을 어둠을 뚫고 만방에 선포하는 부활찬송(Exultet)으로

 

마무리됩니다.

 

제2부 말씀의 전례에서는 주 하느님께서 세상창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펼치신 놀라운 업적을 묵상합니다. 우선 구약성서에서 7개의 독서

 

- ① 창세기 1장: 천지창조/ ② 창세기 22장: 성조 아브라함의 제사/ ③ 출

 

애급기 14장: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다/ ④ 이사야 54장: 새로운 예

 

루살렘/ ⑤ 이사야 55장: 구원의 보편성/ ⑥ 바룩서 3장: 지혜의 샘/ ⑦ 에

 

제키엘 36장: 새 마음과 새 영 - 가 봉독되고 매 독서 후에 장엄한 기도를

 

바칩니다. 대영광송(Gloria)과 본기도 후에 신약의 서간 - 로마서 6장: 불멸

 

의 그리스도 - 과 복음 - 가해: 마태 28,1-10/ 나해: 마르 16,1-7/ 다해: 루

 

가 24,1-12 - 이 선포됩니다.

 

 

제3부는 세례예식으로 선발된 예비신자들에게 물로 씻어 새로 태어나게

 

하는 세례성사를 베풀고, 기존의 신자들은 자신의 세례서약을 갱신합니

 

다. 이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묻히심과 부활에

 

동참함을 의미합니다. 제4부는 성찬전례로서 새로 태어난 신자들과 함께

 

모든 신자들이 성목요일 저녁 주님께서 친히 세우시고 성금요일 십자가

 

제사로 완성하신 성체성사의 성찬에 초대받는데, 이 성찬은 주님의 죽음

 

과 부활을 기념하여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어제 성금요일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전례를 통하여 우리는 어

 

떠한 욕설과 조롱도, 침 뱉음과 모욕적인 발언도, 무자비한 채찍질과 구타

 

도, 살을 파고드는 아픔도, 나아가 인간 최대의 부정적인 체험인 사형선고

 

와 그로 인한 죽음도 예수님의 인간적이고 하느님적인 사랑을 굴복시킬

 

수 없음을 보았습니다. 하느님 사랑은 이렇게 죽음까지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이제 다 이루었다."(요한 19,30) 이 말씀을 마지막으로 인간 예수님은 고

 

개를 떨구며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신 순

 

간, 공관복음이 공통적으로 보도하는 바에 따르면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

 

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으며(마태 27,51; 마르 15,38; 루가 23,44), 예수

 

의 죽음을 지켜보던 백인대장과 사람들은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

 

의 아들이었구나"(마태 27,54; 마르 15,38; 루가 23,47) 하고 고백하였습

 

니다. 마태오는 그 순간 땅이 흔들리며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이 열리면서

 

잠들었던 많은 옛 성인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추가로 보도하고 있

 

는데(마태 27,51-53), 이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가져온 사건들입니다. 바로

 

예수께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 그분이 원래 지니고 계셨던 신성이 그 모습

 

을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제 세계의 역사에는 또 다른 하느님의

 

자기계시가 시작되는데, 예수의 죽음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가

 

드러난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승리의 사건

 

입니다. 이는 인류의 역사가 지금껏 누려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누리지 못

 

할 최대의 승리이며, 이는 죄에 대한 승리요, 죄로 말미암은 죽음에 대한

 

승리로서 곧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이었고,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

 

리고, 온갖 분노와 모욕을 불러일으킨 일이었지만(1 고린 1,23), 예수님의

 

공생활 중 모든 가르침과 행동의 마지막 책임 있는 결론이 십자가상 죽음

 

이라면, 오늘 우리가 자랑스럽게 믿고, 경축하는 예수님의 부활은 이 모든

 

것이 참되다는 것을 확증해 주는 사건이다. 그분이 일찍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더라도 영원히 살 것"(요한 11,25)이라는 말씀

 

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는 말씀에 대한 확증이다. 따

 

라서 그분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우

 

리의 믿음과 희망이 죽음으로 끝나거나 죽음에 머물지 않고 살아 있는 자

 

에 있다는 사실을 보증해주는 것이다. 참된 믿음이란 거짓에 뿌리를 둘 수

 

없다. 참된 믿음은 변할 수 없는 '진리'에 그 뿌리를 두어야 한다. 하느님

 

께서는 자기 아들을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리심으로써 그분 삶의 내용뿐만

 

이 아니라, 그분 자체가 진리임을 증명해 주신 것이다. 진리는 불멸한다.

 

죽을 수 없다. 만약 죽더라도 다시 살아나야 하는 것이 진리이다.

 

하느님께도 예수님께도 죽음은 없습니다. 그분은 부활이요 생명이기 때문

 

이며, 이것이 곧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편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죽어야 할 운명을 지닌 우리 인간들 편에서 진리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와 그분의 부활에 관한 믿음을 얻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 일단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을 마

 

태오복음에서도 부활의 목격보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전부

 

입니다. 이는 다른 복음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확실한 것 두 가지는 안

 

식일 이른 아침에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

 

리아)이 예수님의 시신이 없는 빈무덤만을 보았다 것과 천사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전부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빈무덤과 메시지를 가지고 우리는

 

예수부활의 믿음에 도달하여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결국 예수부활에 관한

 

믿음은 하나의 도전인 셈입니다. 믿어지지 않는 것을 믿어야하는 도전말

 

입니다. 이 도전이 비단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만 갑자기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첫날 아침부터 이어져온 도전입니다.

 

 

부활의 믿음에 대한 도전의 실마리는 빈무덤과 천사의 메시지입니다. "무

 

서워하지 마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를 찾고 있으나 그분은 여

 

기 계시지 않다. 전에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그 분이 누우셨던

 

곳을 와서 보아라. 그리고 빨리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께서는 죽었다가 다

 

시 살아나셨고 당신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거기에서 그분을

 

뵙게 될 것이오' 하고 알려라."(마태 28, 5-7) 이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갈릴래아 활동시절에 세 번에 걸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

 

입니다. 더욱이 오늘 복음에서 빈무덤을 최초로 목격한 여인들이 바로 갈

 

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줄곧 따라 다녔던 여인들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 마태오복음의 내용을 미루어 볼 때 이 여인들은 예수님 부활의 최초

 

증인들입니다. 이 여인들은 갈릴래아 시절부터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순

 

간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안

 

식일 이른 새벽에 급하게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에 갔던 이유도 '명절

 

준비일'과 '안식일 시작' 때문에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과 함께 경황없이

 

치렀던 예수님의 장례(요한 19, 38-42)를 송구스럽게 생각하여 보완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그 이상을 그분과 함

 

께 하려 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런 여인들에게 부활신앙의 은총은 주어지

 

는 것입니다. 우리들 또한 부활신앙이 갈릴래아와 빈무덤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방문하시는 모든님들, 주님의 부활

 

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참된 죽음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알면서도, 죽음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

 

니다.

 

나 자신이 무덤에 묻힌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간의 운명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몸소 무덤에 묻히셨습

 

니다.

 

그래서 이제 '죽으면 살리라'는 당신 말씀의 참됨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주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저도 당신과 함께 영원히 살기 위하여 참된

 

죽음을 준비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누구나 '자신을 버리고 따르라' 하셨으니,

 

제 욕심과 교만을 이제는 무덤에 묻어버리게 하소서.

 

버렸다고 하면서도 매번 슬그머니 주워담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정말

 

괴롭습니다.

 

하오니 주님! 그런 삿된 마음이 괴롭힐 때마다

 

그 마음을 다시 묻어버리는 데 지치지 않도록 당신의 은총으로 도와주소

 

서. 아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아픈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시는 주님, 무덤에 묻힌 당신의 죽음이
저를 살리는 힘임을 믿고 깨닫게 하소서.
 

 

 

                                                                                    - 출처: 단순한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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