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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다 (펌)
작성자이현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30 조회수1,060 추천수3 반대(0) 신고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다

 

빈 무덤, 비어 있는 무덤.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임은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 눈으로는 임을 볼 수 없습니다.

 왜 임을 볼 수 없을까요? 왜 우리는 임을 보지 못할까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일리오트(T. S. Eliot)는 말하였습니다. 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을까요?

 

 

   … 주님은 부활하셨는데 우리는 아직도 사순시기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덤에서 나와야 하는데 여전히 무덤 속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깨어나야 하는데, 부활하여야 하는데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아직도 부활하지 못하고 있으니 마음은 간절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똥을 누기 위해 화장실에 들었는데 아무리 용을 써도 똥이 나오질 않는 그 안타까움 마냥 남이 사는 부활을 나는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는데 여전히 나는 …
   계절을 따라, 계절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절기에 맞게, 절기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부활을 살아야 합니다. 4월을 가장 아름다운 달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4월을 가장 아름답게 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사랑하는 나의 임을 볼 수 있겠습니까? 만날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요한 20, 2). 막달라 여자 마리아, 겸손한 마음(humility of heart)을 뜻하는 이름을 가진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여인입니다. 참으로 부활을 살고 있는 여인이 마리아 막달레나입니다. 창녀라고 까지 불렸던 여자 마리아 막달레나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미리암이라는 흔한 이름을 지니고 있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동족인 히브리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로마 총독의 사령관의 첩으로 들어갑니다. 히브리인들은 동족과 결혼하지 않고 이방인과 결혼하면 창녀라고까지 불렀습니다. 동족의 눈으로부터 벗어나 업신여김을 당했으나 부유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리암은 자신의 집 앞을 지나가는 한 떼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무리들 중의 한 사람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 눈동자, 여느 눈동자와는 전혀 다른 그 눈동자. 너무도 포근한 그 눈동자. 미리암은 불현 듯 스쳐 지나가면서 얼핏 마주친 그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눈동자를, 그 눈동자의 주인공을 만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미리암은 집을 나섰습니다. 다시 보지 못하면 미칠 것만 같은 그 눈동자를 찾아 미리암은 모든 것을 버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미리암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을 결코 떠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예수님 곁에 머물렀습니다. 그리하여 성서에서 말하는 부활의 첫 번 증인이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떠남'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집을 떠날"
(창세 12, 1~9) 수 있었던 것처럼 마리아는 용감히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죽음의 상태에서 참다운 생명에로 극적인 변화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증인으로 미리 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사도 10, 41).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택하신 부활의 증인으로서 막달라 마리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따랐던 여인, 막달라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습니다"
(요한 20, 1). 무덤이 상징하는 또 다른 의미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입니다. 무덤이 비어 있습니다. 내 마음이 비어있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비어 있습니다. 어떻게 비어있는지 알았겠습니까? 무덤을 막았던 돌, 그 걸림돌이 누군가에 의해 이미 치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죽음으로! 죽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사람 몸속에 기생하던 병균들도 더 이상 그의 몸에 머물지 않습니다. 떠나버립니다. 더 이상 뜯어먹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병균이 상징하는 것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나쁜 것들, 즉 죄, 악습입니다.
   무덤 속에 있는 것들을 가만 살펴봅니다. 흩어져 있는 수의입니다. 수의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죽은 사람이 입는 옷입니다. 죽음의 옷, 즉 죽음을 나타냅니다. 내 마음에 흠집을 만들고 병들 게 하여 결국 죽음의 꽃을 피우는 것들을 가만 살펴봅니다. 모욕 · 성냄 · 불화 · 오류 · 의혹 · 절망 · 두려움 · 근심 · 걱정 · 의기소침 · 침울 · 어둠 · 슬픔 등입니다. 바로 지상의 것들입니다. 죽은 것들, 죽어 버린 것들입니다. "누군가가 주님을 꺼내갔습니다. 주님을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아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니 살아 있는 것들 안에서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참음 / 인내 · 화목 · 진리 · 믿음 · 희망 · 빛(光明) · 기쁨 · 용기 · 훌훌 털어 버림 등이 살아 있는 것들입니다. 바로 천상의 것들입니다. 비유는 유의 결여(Nonbeing is privation of Being). 살아 있음은 자유로움입니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말합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어떤 경계, 어떤 한계를 두지 않습니다. 그러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막고 있던 그 큰 돌, 그 걸림돌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으므로 우리 몸에는 더 이상 나쁜 것들, 죽은 것들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니 있어서는 안됩니다. 당연히 없어져야 합니다. 무덤 속을 채우고 있던 모든 죽은 것들이 하나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직도 죽어야 할 것들이 남아 있다면, 참으로 부활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죽음의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여러분은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는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참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있어서 보이지 않습니다"
(골로 3, 1~3).
   지상의 것이 아닌 천상의 것을 추구해 나갈 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볼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여러 가지 모습이 바로 참음입니다. 인내입니다. 화목입니다. 진리를 사는 것입니다. 믿음을 사는 것입니다. 희망을, 기쁨을 사는 것입니다. 용기를 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는 것입니다. 소유(to have)가 아닌 존재(to be)를 사는 것입니다. 존재를 사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 때, 사랑을 할 때 나는 하늘을 사는 것입니다. 천상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부활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사는 것입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 아닙니다. 내가 부활을 살 때 4월이 가장 아름다운 달이 될 것입니다. 4월, 부활을 사는 가족이 되십시오. 부활을 축하합니다! Happy Easter! 기쁜 부활되십시오!

                         - 고 민성기 요셉신부님의 '일상의 신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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