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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막달라 마리아 (펌)
작성자이현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31 조회수970 추천수5 반대(0) 신고

 

 

막달라 마리아

 

   오, 참으로 복된 밤, 하늘과 땅이 결합된 밤!  하느님과 인간이 결합된 밤!
   세상에 길들여져 살던 저희에게 오늘의 부활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복된 밤, 복된 시간입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어느덧 사순시기가 지나 오늘 부활의 복된 밤을 맞게 되었습니다. "사람아 너는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라" 는 말씀과 함께 머리에 재를 뒤집어 썼던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저는 제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저희 대연동 공동체적으로도 영적으로 새로워지기를 바라면서 사순시기를 살았습니다.
   십자가상에서 하신 일곱 가지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한 부활맞이 9 일 기도가 3월 11일부터 3월 19일까지 이어지고 9일 기도 기간 동안과 매주 금요일마다 십자가의 길을 봉헌하며 오늘의 부활을 학수고대하였습니다. 성주간 7일을 특히 성삼일을 정화 - 조명 - 일치의 영적성숙의 3단계로 살아감으로써 하느님께로 향하는 영혼의 목마름을 노래해왔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제 큰 탓이로소이다" (mea culva mea culva mea maxima culva)로 시작한 사순시기를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제 복된 탓이로소이다" 라고 노래할 수 있는 부활의 거룩한 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영적 성숙을 위해 준비해 온 바를 교회는 오늘 선포된 복음 말씀을 통하여 다시금 확신시켜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할 묵상 내용은 마르코 복음 16장 1절에서 7절의 말씀입니다. 저희 본당의 주보이신 빠도바의 성 안토니오는 상징적 · 신비적 해석을 통하여 저희에게 귀한 말씀을 전합니다 :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우리가 사는 삶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우리를 관상에로 초대합니다. 그녀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함께 복음에서 이야기하는 관상에로 떠나봅시다.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의 몸에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리고 안식일 다음날 이른 아침 해가 뜨자 그들은 무덤으로 가면서 "그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을 굴려 내 줄 사람이 있을까요?" 하고 말을 주고 받았다. 가서 보니 그렇게도 커다란 돌이 이미 굴러져 있었다. 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갔더니 왠 젊은이가 흰 옷을 입고 오른편에 앉아 있었다. 그들이 보고 질겁을 하자 젊은이는 그들에게 "겁내지 말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나자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지만 예수는 다시 살아 나셨고 여기에는 계시지 않다. 보라. 여기가 예수의 시체를 모셨던 곳이다. 자,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예수께서는 전에 말씀하신 대로 그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니 거기서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전하라" 하였다.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입니다. 이들은 각기 '마음의 겸손'(humility of heart),  '세상에 대한 이탈'(contempt for the world)그리고 '평화스러운 기쁨'(peaceful joy)을 상징합니다. 무덤 (The Tomb) 이 상징하는 것은 관상생활 (the contemplative life)입니다.
   세상에 대해 죽어 버리는, 일시적인 것들의 모든 찌꺼기들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세상이 보기에는 숨겨진 것처럼 보이지만 차원이 다르게 세상을 살아가는 삶이 관상생활입니다. 그렇게 빨리 달리는 토끼가 느림뱅이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제논의 이상한 (?) 논리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관상생활을 살면, 욥기에서 엘리바즈가 "자네의 장막에는 다시 평화가 깃들이고, 목장을 찾을 때 아무 것도 잘못되지 않았음을 알 게 될 것일세. 자녀들이 마구 불어나 후손들이 푸성귀처럼 번지는 것을 보게 되겠고 자네는 무덤에 이르도록 건장하리니 곡식이 영글어 타작마당에 이름과 같은 것일세" (욥 5, 24-26) 라고 말하는 것처럼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그런데 무덤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즉 관상생활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을 굴려내야 합니다. 어떻게 그 큰 돌을 치울 수 있을까? 관상생활로 들어가지 못하게끔 머뭇거리게 하는 장해물인 큰 돌을 치우기 위해서 우리는 항구한 기도 (constant vigils) 와 자주하는 단식 (frequent fasts)을 해야 하며, 음식을 절제하고 (frugal fare) , 화려하지 않은 의복 (course clothes)  을 입으며, 엄격한 자제 (hard discipline) 와 자발적 가난 (voluntary proverty) 그리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명 (prompt obedience)을 행해야 합니다. 이를 정화의 단계로 풀 수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 그 큰 돌을 치우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무덤으로 가면서 "그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을 굴려내 줄 사람이 있을까?" 하고 말을 주고 받는 세 여인의 넋두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그렇게도 커다란 돌이 이미 굴러져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들이 무덤 안을 들여다 보니 웬 젊은이가 흰옷을 입고 오른편에 앉아 있습니다. 젊은이는 은총의 성령을 상징합니다. 이를 조명의 단계로 풀 수 있습니다.
   흰옷을 입은 젊은이가 한 첫 번째 말은 "겁내지 말라" (Do not be alarmed)입니다. '흰옷을 입고 있다' 는 것은 세상과는 다른 차원의 삶을 살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관상생활?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삶이기에 웬지 낯설고 괜히 겁이 납니다. 그러기에 망설여집니다. 그러나 관상생활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겁을 내는 저희에게 흰옷을 입은 젊은이 즉 성령께서는 "겁내지 말고 들어오라' 고 권고하십니다. 결국 세 여인은 무덤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를 일치의 단계로 풀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저희의 약한 점을 강하게 (Strengthens weakness) 하시고, 저희가 하기 어려운 것을 손쉽게 (make severity ease) 이끌어 주시며 쓴맛을 내는 것 모두를 단맛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러니 관상생활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몸에 바를 향유가 저희의 몸에 발라짐으로써 저희는 가난하지 못하면서도 가난할 수 있고, 정결하지 못하면서도 정결할 수 있고,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관상을 통하여 막달라 여자 마리아를 만나야 합니다.

                                                                                                         (인천주보, 1997. 7. 27)

 

 

   결국 흰옷을 입은 젊은이는 부활하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갈릴래아로 선포합니다. 무덤 안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즉 관상생활 그자체로는 하느님 계시는 하늘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희가 부활하신 하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무덤을 나와 서둘러 갈릴래아 땅으로 가야 합니다.
   마르코 복음 16장 1절에서 7절까지의 우리의 묵상에서 무덤 안으로 들어 간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 즉 마음이 겸손하고, 세상에 매이지 않고 세상 것에 애착을 지니지 않고 살아가며 그리고 평화로운 상태에서 기쁨을 사는 관상생활 자체가 하늘 나라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결국 관상은 갈릴래아 즉 하늘나라로 가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무덤에 들어간 사람들 즉 관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관상생활을 통해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하늘 나라,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늘 나라, 하느님 나라가 바로 갈릴래아입니다.
   그렇다면 갈릴래아가 어디입니까?  바로 이곳 오늘 부활이 선포된 이곳 저희 공동체입니다. 이곳이 바로 부활하신 하느님이 계신곳, 바로 저희의 갈릴래아입니다. 바로 저희 공동체는 마음이 겸손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며, 세상 것에 맛들이지 않고 세상에 매이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며, 기쁨 속에 평화를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저희는 십자가의 길이며 9일 기도를 통해 무덤을 막고 있던 큰 돌을 굴려 보냈고 사순시기라고 하는 무덤을 헤쳐나왔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는 갈릴래아, 저희 대연동 공동체에 있습니다.
   저희 대연동 공동체 가족들은 참으로 복이 많은 가족입니다. 사순시기 동안 영적 성숙을 위해 십자가의 길과 9일 기도 등 전례를 준비하고 세상에 찌들리고 세상에 길들여진 저희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하느님 보시기에 더 좋은 가족이 될 수 있도록 수고하고 노력하고 기도한 모든 가족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복된 밤에 함께한 저희 모두에게 인간이 줄 수 있는 위로가 아니라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1997. 3. 29 밤, 부활성야)

 

주: 이 글들은 고 민성기 요셉신부님의 '하늘로부터 키재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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