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부활 팔일축제 내 금요일(2005-04-01)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4-01 조회수1,408 추천수1 반대(0) 신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들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중에는 감히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 주시고 또 생선도 집어 주셨다.(요한 21, 12-13) 
 
 
우리는 이미 요한복음의 원복음은 20장을 마지막으로 편집되었고, 21장은
 
추가로 편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통상 21장의 저자는 요한복
 
음의 원저자를 추종하던 요한학파에 속하는 사람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21장을 단락으로 구분하면, 티베리아 호수에서 일곱 제자에게 발현한 예
 
수(1-14절), 부활예수와 수제자인 베드로의 특별한 관계묘사(15-19절) 및
 
사명전달, 예수와 애제자의 관계(20-24절), 그리고 에필로그(25절)의 4단
 
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을 추가로 편집해야 했던 이유
 
가 무엇인지는 21장 전체에 짙게 깔려있는데, 즉, 예수님을 이미 한꺼번에
 
세 번이나 배반한 적이 있는 베드로(요한 13,38; 18,15-18.25-27)를 그럼
 
에도 불구하고 제자단의 으뜸으로, 그리고 초대교회의 수장으로 인정하고
 
내세우기 위해 부활하신 예수님과 베드로의 특별한 관계를 엮어주려는 의
 
도가 깔려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라는 이름도 지나칠 정도로 빈번히 등장하는데, 신약성서 전체에
 
베드로의 이름은 총 198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9번(1고린 4번,
 
갈라 3번, 1베드 2번)을 빼고는 모두 4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두루 등장합니
 
다. 요한복음에서는 총 40번 베드로의 이름이 발견되는데, 이를 구분하여
 
보면,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 5번, 최후의 만찬에서 십자가 죽음 직전까지
 
18번, 부활사화 20장에서 4번, 부활사화 추가부분인 21장에서 무려 13번
 
이 등장합니다. 아무튼 성서학자들은 21장의 저자가 초대교회 안에서 차
 
지하는 베드로의 교회론적이고 사목적인 주도역할을 강조하고 있다고 봅
 
니다. 편집자의 의도가 이렇다 보니 의도의 일관성과 성취도는 보장되지
 
만, 이야기 전체가 구도상의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구도상의 문제점은 여기 저기서 발견되는데, 우선 앞선 20장의 내용과 연
 
결이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20장의 무대는 예루살렘이고, 여기서 제자들
 
은 이미 두 번이나 부활예수의 발현을 체험했었습니다. 저자는 단순히 '그
 
뒤'라는 표현으로 예루살렘과 티베리아 호수의 연결점을 찾고 있는데, 참
 
고로 티베리아 호수는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지명으로서(요한 6,1; 6,23)
 
다른 복음서의 갈릴래아나 겐네사렛(마태 14,34; 마르 6,53; 루가 5,1)과
 
같은 호수를 말합니다. 밤새도록 베드로를 포함한 일곱 제자들은 헛수고
 
를 했습니다. 원래 어부출신이었지만 3년간 고기잡이에서 손을 뗐으니 그
 
럴 법도 합니다. 새벽녘 호숫가에 서 계신 예수와 베드로의 배까지 거리가
 
제법 멀다고 느껴지는 100미터나(8절) 되지만, 쌍방의 대화는 아주 가깝게
 
이루어집니다. 애제자가 '저분은 주님이십니다' 라고 말하자 베드로는 겉
 
옷을 두르고 그냥 물 속에 뛰어 든 점도 이상합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육지까지 헤엄쳐 나왔다는 결론인데, 물론 그런 말은 없습니다. 일행이 육
 
지에 올라 왔을 때, 예수께서는 숯불과 빵과 이미 생선을 준비해 놓으셨습
 
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방금 잡은 생선 몇 마리를 가져오라고 합니다.
 
차라리 준비 없이 생선을 가져오라고 했다면 더 어울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구도상의 문제점이 아닙니다. 물론 요한복음의 원저
 
자는 구도상의 논리를 상당히 중요시하였습니다. 요한복음(1-20장) 전체
 
가 장고의 성찰과 명상에 의한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1장의 저자
 
는 구도상의 논리보다는 상징적이고 신비적인 표현을 통하여 베드로와 부
 
활예수, 그리고 교회의 긴밀한 삼각관계를 조명하고 있음을 알아야합니
 
다. 이 가운데 베드로의 역할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는 셈입니다. 21장의
 
무대를 갈릴래아(티베리아)로 옮긴 것은 제자들이 처음으로 예수를 만났
 
던 곳이 이곳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베드로를 비롯한 일곱 제자가 배를
 
탔다고 했는데, 배는 교회를, 7이라는 숫자는 풍요와 완전을 뜻합니다.
 
 
그들만의 수고는 헛되었지만 부활예수의 지시와 명령을 따름은 성취와 보
 
람과 기쁨을 가져옵니다. 그물에 걸려든 고기의 숫자가 '153' 마리라는 점
 
도 의미가 있는데, 학자들은 통상 아우구스티노의 해석법을 따릅니다. 이
 
들에 의하면 153은 1부터 17까지의 수를 다 합한 것으로 보편성과 완전성
 
을 의미하며, 여기서 17 또한 10이라는 완전수와 7이라는 완전수를 합한
 
절대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총 153장으로 구성된 [기도론]을 저술한 에바
 
그리우스 폰티쿠스(+399)는 153의 숫자를 아주 색다르게 해석하기도 하는
 
데, 안셀름 그륀의 "부활의 기쁨, 100배 맛보기"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의 시사점은 제자들이 갈릴래아(티베리아) 호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체험을 완결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갈릴래아 호수는 어부
 
들이 예수를 처음으로 만난 곳이며, 그들이 불림을 받았던 곳입니다. 여기
 
에서 그들은 예수와 함께 동고동락을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부활체험의
 
완성은 초심에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이곳 갈릴래아에서
 
원래 하던 고기잡이를 통하여 부활예수를 뵙게된 점도 중요한데, 부활체
 
험의 장소가 일상 속이라는 뜻입니다. 아마 우리의 부활체험도 크게 다르
 
지는 않을 것입니다.
 
 
                                                                                     - 출처:단순한기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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