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대중과 함께한 `행동하는 순례자`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4-03 조회수676 추천수2 반대(0) 신고

<폴란드 소읍에서 태어나 20세기 최연소 교황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칠줄 모르는 순례자였다. 문학과 연극 을 사랑

 

했고, 열렬한 스포츠 애호가였으며, 젊은 신도들과 함께 록음악에 맞춰 박

 

수치고 춤췄던 열린 정신의 소유자였고, 무엇보 다 군림하는 교황이 아니

 

라 행동하는 교황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1978년 10월16일 제 264대 교황에 올라 26년 동

 

안 재임했다. 1523년 네덜란드 출신 교황 하드리아노 6세 이후 455년 만

 

의 비이탈리아 출신 교황으로 선출됐으며, 당시 공산국가인 폴란드에서

 

교황이 탄생한 것은 현대사에서 큰 사건 으로 받아들여졌다.

 

 

요한 바오로2세의 본명은 카롤 요제프 보이티와(Karol Josef Woj tyla). 그

 

는 1920년 폴란드 크라코프 인근의 바도비체라는 작은 소읍에서 태어나

 

야기엘로니아 대학에서 철학과 드라마를 전공하 며 배우를 꿈꾸기도 했

 

다. 1939년 나치가 폴란드에 진격, 대학을 폐쇄하면서 본격적으로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치의 지? ?아래 생계를 위해 채석장과 화학공장 등

 

에서 일하면서 당시 비 밀리에 운영됐던 크라코프의 신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6세 때인 1946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1948년에는 '성 요한의

 

십자가 '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사제가 된 지 18년 만에

 

크라코프의 주교로 임명되고, 3년 뒤인 1967년에는 추기경 이 되는 등 고

 

속승진을 거듭했다.

 

추기경이 된 뒤에는 바티칸을 벗어나 프랑스, 벨기에 등을 돌아 다니면서

 

활발한 사목활동으로 가톨릭 세계에 명성을 떨쳤다. 1978년 요한 바오로

 

1세가 등위 34일 만에 사망하자 20세기 교황으 로서는 최연소인 58세의

 

나이로 교황에 선출됐다.

 

그는 재임기간에 역대 어느 교황보다 일반인과 가까이 접촉, 가톨릭의 저

 

변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매주 수요일 알현한 바티칸 순례자만해도 무려

 

1700만명이나 된다. 거리낌없이 사람들을 만 나는 그의 행보는 지난 1981

 

년 이탈리아 로마 성베드로 광장에서 암살범의 공격을 받아 한 때 주춤했

 

으나 건강을 회복한 뒤에는 다시 사람들 만나기를 즐겼다. 그래서 '거리와

 

광장의 순례자' 로 불렸다.

 

 

8개국어에 능통한 그는 재임기간 내내 분쟁지역과 오지를 순례했 다. 지난

 

1980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빈민가를 걷던 교 황은 가난에 충격

 

을 받아 교황 반지를 빼 본당 신부에게 건네주 기도 했다. 또 독재정권의

 

초대에도 기꺼이 응해 1999년 1월 쿠 바 카스트로의 초대를 받아 방문, 아

 

바나의 혁명 광장에서 미사 를 거행하며 '억압받는 이들에게 자유를'이라

 

는 성서구절을 인용 해 수많은 군중의 환호를 받았다. 그는 세계 구석구석

 

을 방문하 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 '가정의 소중함' 을 역설

 

했다.

 

 

교황은 지난 1990년대 초반부터 건강악화로 큰 불편을 겪어왔다.

 

1992년 장 종양제거수술을 비롯, 1993년 어깨탈골, 1996년 맹장수술 등

 

을 받았으며 2001년부터는 파킨슨병을 앓았다. 그는 건강 악화에도 불구

 

하고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 활을 해왔다. 오전 6시

 

15분부터 기도와 묵상, 미사 봉헌을 한 뒤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9시 알

 

현시간 이전까지는 한시간 남짓 집필을 하기도 했다.

 

 

그는 150여편의 논문발표와 함께 시 등 문학작품도 써왔다. 그가 쓴 명상

 

시집 '로마의 입국허가증'은 전세계 20개국에서 100만 부 이상 출판된 베

 

스트셀러. 국내에는 '내 안에 그대 안식처 있으니: 로마에서 온 세폭의 성

 

화'로 번역, 발간됐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 지난 1984년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식때 내한,

 

103명의 복자(福者)에 대한 시성식(詩聖式)을 집전했으며 1989년 세계성

 

체대회 때에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초대 교황으로 34년 이상을

 

재임했던 베드로 사도와 31년7개월17일 간 재임했던 비오 9세

 

(1846~1878년)에 이어 역대 3번째로 오랫동 안 재임한 교황으로 남은 채

 

평온하고도 영원한 안식에 들 것으로 보인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