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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모두의 본당 신부님이셨던 교황님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04-10 조회수1,332 추천수16 반대(0) 신고
4월 11일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요한복음 6장 22-29절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본당 신부님이셨던 교황님>


회의 참석차 로마에 들렀다가 교황님께서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돌리는 TV 채널마다 일제히 정규방송을 중단한 채 교황님 건강과 관련된 소식만을 계속 전하고 있더군요.


언제나 티격태격하기로 유명한 이태리 정치인들조차도 당쟁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는 소식, 그리고 함께 교황님의 쾌유를 위해 기도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 개인적으로 교황님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교황님께서 위중하다는 소식을 들은 그곳 사람들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베드로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저도 기도대열에 동참하기 위해 그곳에 갔었는데, 이미 수만 신자들이 운집해 있더군요.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면서, 성가를 부르면서, 한 마음으로 기도했었습니다. 나라 전체가 교황님의 쾌유를 비는 기도의 장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교황님께서 머무시던 방의 불이 꺼지자 사람들의 입에서는 일제히 안타까운 탄식의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교황님의 서거에 대한 정식 발표가 있었습니다.


장례위원회는 이례적으로 교황님의 유해를 대중 앞에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언제나 양떼들 사이로 내려오시기를 즐기셨던 교황님, 언제나 양떼들 가까이 현존하기를 원하셨던 교황님의 유지를 받든 결정이었습니다.


교황님의 서거가 알려지자 세상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이태리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북미에서, 남미에서, 아시아에서 수도 없이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 이제 떠나가시는 교황님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번 뵙고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 모여든 군중들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로마시 당국은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폴란드에서 조문 차 방문한 신자들의 모습은 정말 눈물겨운 것이었습니다. 바르샤바에서 이태리 국경까지 관광버스로 24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국경에서 또 로마까지 10시간, 그리고 로마에 도착해서도 교황님 유해 앞에 도착하기까지 10시간, 합해서 꼬박 2-3일을 고생하더군요. 그 불편함 가운데서도 그들의 얼굴에는 짜증내는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로마시 당국은 줄잡아 약 500만의 조문객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과장이 조금 심한 이태리 사람들임을 조금 감안한다면 적어도 350-400만 명의 조문객이 왔다갔으리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인류역사상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이처럼 많은 조문객이 모여든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로마 시내 눈에 띄는 곳 마다 사람들은 벽보를 붙였습니다. 사랑하던 아버지를 잃은 심정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시했습니다.


“교황님, 당신은 진정 좋은 아버지셨습니다. 이제 그 많았던 짐 내려놓고 평안히 떠나가십시오.”

 

그곳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 묘지 앞에서 정성껏 쓴 편지를 붙이더군요. 바티칸 근처 가로등이나 가로수 곳곳에는 사랑하는 영적 아버지를 잃은 슬픔의 편지로 빽빽했습니다.


떠나가신 교황님을 향한 거대한 추모의 물결을 바라보면서 교황님께서 진정 위대하셨던 분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서거 즉시 보통 사람들에게는 여간해서는 잘 붙이지 않는 대(大)자를 교황님 이름 앞에 붙일 것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손수 쓰셨던 그 숱한 역사를 뒤로 한 채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교황님의 생애를 묵상하면서, 또 그분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추모의 인파를 바라보면서 ‘기적인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업적을 남기다니,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영향력을 인류에 끼칠 수 있다니,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할 수 있다니...이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그리고 이승을 떠나가신 마지막 순간까지도 남은 우리에게 당신의 온몸으로 신앙을 전파하시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참 목자이셨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이 세상에 보다 많은 다리를 놓기 위해 지구를 수십 바퀴나 도셨던 분이셨습니다. 자신을 저격한 사람마저도 즉시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직접 교도소까지 방문하셔서 그를 사랑으로 감싸 안으셨던 분이셨습니다. 겹겹이 둘러쳐져 있던 나라와 나라, 인종과 인종, 부자와 빈자 사이의 수많은 벽을 허물기를 위해 밤잠을 설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적 아버지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황님께서는 그 오랜 병고의 세월 속에서도 끝까지 우리 양떼들을 포기하지 않으셨던 참 목자이셨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세상 안에서 고통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양떼들을 한번이라도 더 어루만져 주시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세상 모든 양떼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그래서 우리 모두의 본당신부이길 원하셨던 교황님이셨습니다.


사실 2000년 대희년 무렵, 병세가 심해지면서 교황님께서는 심각하게 사퇴를 고민하셨답니다. 그래서 몇몇 신학자들에게 자문까지 구하셨지요. 신학자들은 교회 역사상 몇 번 전례가 있었던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그냥 끝까지 가시는 걸로,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쪽으로 자문을 해드렸고, 그 자문 이후 그 고통 속에서, 그 노구를 이끌고 끝까지 걸어오신 것입니다.


그 심각한 병고의 와중에서 당신 몸이 허락하는 한,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당신 양떼들을 찾아가셨습니다. 그 빡빡한 접견 일정을 가능한 한 다 허락하셨습니다. 당신의 사제들과 신학생들을 만나면 그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일일이 이름을 물어보고, 안부를 묻기도 하셨습니다. 매주 한번 창문을 통해서 정기적으로 이루어졌던 신자들과의 만남을 돌아가시기 직전 까지 계속하셨습니다.


당신에게 맡겨진 직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험난한 길을 끝까지 걸어가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삶과 죽음을 통해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난 삶을 접고 주님께서 돌아서는 기적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저는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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