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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복음묵상(2005-04-15)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4-15 조회수814 추천수1 반대(0) 신고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한 6, 54-56)
 

사실상 어제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 예수님의 폭탄선언이 있었는데, 그 구

 

절을 한번 더 읽어보면,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51절) 생명의 빵이 곧 사람이신 예수님의 자기 살

 

이라는 엽기적인 선언입니다. 이 선언에 대한 유다인들의 반응 또한 만만

 

치 않습니다. 이 대목에서 지금까지 유다인들의 반응과 예수께 대한 호칭

 

을 한번 정리해 볼 필요가 있는데, 우선 호칭을 보면, 빵의 기적이 있은 다

 

음 날 가파르나움에서 예수를 만난 군중은 '선생님, 언제 이쪽으로 오셨습

 

니까?"(25절) 하고 물었고, 예수께서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

 

식을 얻기 위해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으라고 했을 때 그들은 "선생님

 

은 무슨 일(기적)을 하시겠습니까?"(30절) 하고 말했습니다. 또한 예수께

 

서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을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선

 

생님, 그 빵을 항상 저희에게 주십시오"(34절) 하고 청했습니다. 그러나 유

 

다인들은 예수께서 "내가 바로 하늘에서 내려 온 생명의 빵이다"는 말씀에

 

못마땅해하며 웅성거리는 반응을 보였고, 여기에서 유다인들의 불만은

 

'생명의 빵'보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42절) 하며 돌연 예수께 대한 호

 

칭을 바꾸게됩니다.
 

선생님에서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물론 예수께 대한 직접적인 호칭은

 

아니고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리며 하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유다인

 

들은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 줄 수 있단 말

 

인가?" 하며 서로 따지는데, 이 반응으로 유다인들은 예수로부터 거의 등

 

을 돌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전반적으로 어려운 데도

 

이유가 있지만, 이젠 생명의 빵이 자기 살이라는 말에 유다인들은 거의 구

 

역질이 날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

 

에게 먹으라고 내어 줄 수 있단 말인가?"(52절) 하고 노골적인 반응을 보

 

였던 것입니다. 성서의 기록에는 없지만 이 구절 다음에 "우리가 무슨 식

 

인종이란 말인가?" 라는 한 마디를 덧붙여 우리들 사고의 지평을 넓혀보면

 

식인종이란 사람을 잡아먹는 풍습이 있는 미개인을 일컫는 말로서 카니발

 

리즘(cannibalism)을 뜻합니다.

 

 

우리는 통상 인육을 음식으로 먹는 개화가 덜된 인종들을 식인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식인종들은 인육을 음식으로 먹었을까요? 혹

 

일용할 양식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적대자나 원수를 잡아죽인 다

 

음 인육을 취하여 먹음으로써 그들에 대한 적개심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려

 

했던 것일까요? 카니발리즘(cannibalism)에 대하여 잠시 살펴보면, 인류문

 

화사 계통의 학자들은 오랜 옛날부터 세계 각지에서 이런 풍습이 행해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미개한 인종들 사이에서 굶주림이나 복수, 종교의례

 

나 효행 등의 이유에서였다고 하나, 비교적 높은 문화수준을 가진 종족에

 

서도 가끔 제례의식과 관련하여 행해진 흔적이 있습니다. 
 

카니발리즘은 대략 뉴기니 내륙지방, 서부 및 중앙아프리카,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의 마오리족, 수마트라의 바타쿠

 

족, 남북아메리카의 여러 부족, 북극지방의 에스키모 등지의 역사에서 발

 

견되는데, 지역에 따라서 인육은 굶주림 때문에 실제로 음식이 되기도 하

 

였고(북극지방 에스키모), 식품의 일종으로 간주되어 시장에서 매매되기

 

도 하였으며(바타쿠족), 멜라네시아에서는 동물의 고기와 같이 취급되기

 

도 하였습니다.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의례적 살인

 

과 식인은 종종 사술이나 요술의 관행과 결부되었고, 병자가 그의 친족에

 

의하여 잡아먹히는 수도 있었습니다.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경우에는 승자

 

가 싸움에서 죽인 자의 살을 베어 승리의 축하잔치에 썼다고 하며, 오스트

 

레일리아 원주민 일부에서는 영혼을 배당 받기 위해 죽은 사람의 인육을

 

먹고, 그 뼈를 보존하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종교.의례적인 의미에서 사자의 특정 부분 또는 내장

 

부분을 먹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먹은 사람은 사자의 영혼과 힘을 얻는다

 

는 생각이 학자들의 통설입니다. 결국 카니발리즘은 사자의 영혼(정신)과

 

힘을 이어받고자 부족 보호적 차원에서 행해진 종교적 관행이라는 말입니

 

다.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밀림 한 가운데서 맹수나 적대자로부터 부족을

 

지키던 한 용사가 목숨을 바쳐 죽었을 때, 그의 시체를 둘러싸고 부족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종교적 의례를 거행하였을 것은 매우 있을법한 이야

 

기인데, 이 자리에서 다음 용사가 죽은 용사의 인육을 취하여 먹음으로써

 

그의 부족을 위한 정신과 힘을 이어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이 우리 육신을 위한 양식이 되든, 영혼을 위한 양식이 되든

 

간에 예수께서 자기 살을 먹으라고 내어주시는 행위는 카니발리즘과 상당

 

히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유다인들의 불평에도 아랑곳없이

 

예수님의 가르침은 계속됩니다. 예수께서는 당신께 대한 믿음을 요구하실

 

뿐 아니라, 더욱 더 강하게 당신 몸을 먹고, 당신 피를 마실 것을 강조하십

 

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양식이 되는 살뿐 아니라 음료로 자신의 피까지

 

도 내어 주시는데(55절), 이로써 예수께서는 자신의 전부를 주시는 것입니

 

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예수를(나를) 먹는 사람도

 

예수의 힘으로 살 것입니다.(56절)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사가가 제시하는 성체성사의 설정입니다. 공관복음

 

이 예수께서 자신의 생애 마지막,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성체성사를 세우

 

셨다는 사실을 보도하고 있는 반면(마태 26,26-30; 마르 14,22-25; 루가

 

22,15-20; 1고린 11,23-26),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자신의 공생활 한 가운

 

데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으로 보도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있어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내어줄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단순한 육체를 위한 한 끼의 식사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위한 영

 

원의 양식으로 말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

 

도인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더라도 육의 식인종이 아니라 사

 

랑의 식인종일 수 있는 것이며, 그래서 '제2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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