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부활 제4주간 화요일 복음묵상(2005-04-19)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4-19 조회수873 추천수2 반대(0) 신고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맡겨 주신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아무도 그것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요한 10, 27-29)
 
오늘 복음을 포함한 요한 복음 10,22-42는 예수의 신성에 관한 유다인과

 

의 논쟁을 보도하고 있는데, 이 논쟁보도는 앞서간 '목자와 문'과 '착한 목

 

자와 양'의 비유말씀(10,1-21)과 비교해 볼 때, 장소는 같은 예루살렘을 무

 

대로 삼고 있지만 시기적으로는 바로 연결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

 

다. 오늘 복음의 도입부인 22절이 밝히고 있듯이 논쟁의 시점은 성전 봉헌

 

절 축제기간이며 계절은 겨울철입니다. 반면에 비유말씀은 요한복음 7,10

 

이 보도하는 초막절 축제기간 중에 행해진 말씀입니다. 따라서 요한복음

 

7,10-10,21의 보도는 시기적으로 봉헌절보다 2달 정도 빠른 초막절에 속

 

합니다. 
 

성전 봉헌절은 기원전 165년 기슬레우 달(12월)에 유다 마카베오가 시리

 

아의 왕 안티오쿠스 4세(기원전 175-164년)에 의해 더럽혀진 예루살렘 성

 

전을 탈환하여 성전을 정화하고 번제 제단을 세워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유다인들은 이 축제를 일주일간 계속 지냈으며, 초막절과 비

 

슷한 전례의식들을 거행하였습니다.(2마카 1,9; 10,6 참조) 그러나 복음의

 

전체 구조상의 논리성은 상당히 면밀하여 착한 목자를 주제로 한 그리스

 

도론은 일관성 있게 추구되고 있습니다.

 

 

시간은 흘러 예루살렘 성전 봉헌절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예수께서

 

는 성전 구내에 있는 솔로몬 행각(주랑)을 거닐고 계셨습니다. 계절적으로

 

시간만 흐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예수께서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자

 

신이 누구인지를 밝혀주기를 재촉합니다. "당신은 얼마나 더 오래 우리의

 

마음을 조이게 할 작정입니까?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그렇다고 분명

 

히 말해 주시오."(24절)라는 요청에 예수께서는 "내가 이미 말했는데도 너

 

희는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바로 나를 증명해 준다"고 대답하십니다.(25절) 사실 예수께서는 지금까지

 

누누이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고, 아버지께서 자기를 파견하셨으며, 종

 

말론적 계시자임을 언급하셨을 뿐 아니라(5,17; 5,38; 6,36; 8,54 등 참

 

조), 이 말씀을 입증할 수 있는 수많은 업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자

 

신의 입으로 직접 메시아이심을 밝힌 적은 요한복음에 딱 한 번 나오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사마리아 지방 시카르에서 한 여인이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고 있다"는 말에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

 

람이다" 라고 대답하신 부분뿐입니다.(4,25-26)

 

 

그러나 유다인들은 메시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데, 그것은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를 불신하는 이유

 

로 예수께서는 '목자와 양'의 비유말씀을 재삼 언급하십니다. "너희는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믿지 않으며,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

 

다."(26-27절) 한 목자에게 속한 양들이 그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

 

과 양들이 자기 주인이 아닌 다른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양들이

 

주인의 말을 따라 행동할 것은 뻔한 일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양들이 주인

 

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듣다'와 '믿다'의 상호관계가 부각됩니다. 즉 믿음은 들음의

 

결과이며, 들음은 믿음의 원인입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자세가 되어있지 않았고, 그 결과 예수께 대한 믿음을 얻을 수 없었습니

 

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이를 받아들이려하기보다는 예수

 

가 그리스도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증을 먼저 손에 쥐려했던 것입니다.(24

 

절) 확증을 손에 쥐고 그 다음에 믿겠다는 심산인데, 누누이 말하지만 확

 

증과 믿음은 별개의 것입니다. 자명한 사실을 두고는 믿음을 거론할 필요

 

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30절)라는 말씀은 유

 

다인들뿐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어렵게 들립니다. 예수님 편에서 볼 때 그

 

분이 그리스도이시고 아버지와 하나이심은 토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나

 

우리들 편에서는 믿음이 따라야 하는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

 

서 믿음은 고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자신을 '아버지와 아들

 

이 이루는 일치의 공동체'로 내어 맡길 때, 즉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자세

 

를 갖출 때 그 뜻을 조금씩 깨닫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교황선출을 위한 콘클라베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님! 교황선출에

임하는 모든 추기경들에게 당신 성령의 은총을 풍성히 내리시어 거룩한

지혜와 참다운 용기로 성교회를 다스리며 온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굳건

히 성장시켜 나갈 목자를 선출하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요.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