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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20) 큰언니네 이웃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4-19 조회수816 추천수7 반대(0) 신고

 

                   큰언니네 이웃

                                      이순의

 

 

 

 

 

 

사람이 살면서 근심을 할 적에는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동기부여가 몹시 중요하다.

어제 밤에 큰언니로 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암 말기 환자이며, 개신교 신자이시고, 평생을 봉사자로 살으신 이웃 아저씨의 임종 이야기를 전해주며 언니도 그 죽음에 대하여 신앙인으로서 너무나 부러워하고 있었다.

 

암이 재발 되어 3년이 지났고

오랜 병원생활과 사지절단 등의 수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빚을 지지 않고

흔적도 남김이 없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대부분의 짐작은

그분이 가진 돈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분은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오로지 봉사만 하다가 임종을 했다고한다.

 

임종하시기 사흘 전에는 폐혈증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사흘만에 깨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이분이 깨어나서 종이와 연필을 원했던 것이다.

당연히 안 사람의 입장에서는

남겨줄 유서라도 작성하려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박또박 써 내려간 기록은

당신이 근무하던 특수학교 아이들의 특징을 하나하나 열거 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후임으로 오신 선생님께 그 기록을 드리라고 한 것이다.

그분의 유서(?)는 결국 장애아들에게 도움을 주기위한 기록이었다.

야속한 아내의 입장에서 섭섭한 한마디를 거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분은

<내가 살아서 당신 곁에 있을 때 축복이고

 내가 살아서 당신 곁에 있을 때

 눈물도 흐르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

 육신이라는 의복을 쓰다가 버리고

 아버지 곁으로 가고나면

 무엇이 소용있고

 남길 것은 무엇이며

 애달파 할 것은 무엇인가?

 내가 가고나면 웃어주고 축복해 주게!

 육신은 쓰다가 버린 의복에 지나지 않는 것을

 그 흔적을 쥐고 살지는 말아주게!>

 

아이들이 셋이며

세속적으로 죽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나이 47세라고 한다.

이제야 청소년기에 접어든 큰 아이부터

초등학생까지!

그리고 3년 동안을 완벽하게 병과 함께 살아낸 가족들이다.

그분의 봉사생활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한다.

소식을 듣고

작은 액수에서부터 큰 액수까지

아내로서는 다 알수도 없는 분들의 도움이 이어졌다고 한다.

암 환자로서 같은 암환자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주려고

그 모범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당연히 의료진들의 의료비 삭감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동의 결과였던 것이다.

마지막 임종의 순간까지 살아있음에 충실하고

또한

47년 동안이나 머물고간 육신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은

감히 믿음 없이는 그 짐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냥 죽기 직전에

거저 얻어서

맞이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다고 한다.

평생을 하느님 안에서 살고

평생을 주님의 이름으로 비우며

평생을 성령의 도움으로 베푸는 자만이

감히 선택받을 수 있는

은총의 순간이라고 하시니......

 

죽음을 은총으로 받아서

살아있는 자에게

기쁨을 남긴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살아서 남은자들 또한

그러라 했다고 그럴 수 있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하다하시니!

나는 부끄러웠다.

내가 지금 죽는다면 걱정이되는 사람은

내 자식과 짝궁 뿐이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나 보다 한 살만 위신데

그분처럼

장애가 있는 사람을 어떻게 도와야 한다는

그런 유서를 써야할 만큼

내 마지막 순간에 절명한 기억을 동원할 사랑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분께서는 92세의 노모님께서 살아 계신데

그 어머니에 대한 걱정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보내는 자의 아내로서

어머니 걱정은 하지말으시라고,

잘 가셔서 천국에 살으시라고,

어머니께서 돌아 가시는 날까지 잘 모시겠다고,

속삭여 드렸을 뿐이라고 한다.

나 같았으면

당신이 죽었으니 어머니는 동생들에게 보내야지

내가 당신도 없이 어머니를 왜 모시느냐고

죽는 사람의 마음을 후벼 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분이었다면

어머니를 당신께 맡기고 떠나니 잘 부탁한다고

사정사정 했을 것이다.

아마 눈도 못 감았을 것이다.

 

이래저래

그렇게 멋진 임종을 맞으려면 일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자신이 없었지만

또 살아남은 자의 입장이라고 해도

나는 결코 행복하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 가라고는 더욱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 혼자서 셋씩이나 되는 자식새끼들을  

어떻게 키우라고 이렇게 젊은 나이에

당신 혼자서 천국에 가느냐고,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나 나라고,

나를 두고 간 벌루다가

연옥에서 썪고 있으라고 악다구니를 썼을 것이다.

 

큰언니의 말씀을 들으며

<부끄럽네! 나는 하느님을 헛으로 믿고 살으네!>

라고 고백했다.

그렇다.

나는 분명히 하느님을 헛으로다가 믿고있다.

내 믿음은 헛것이었다.

나는

어디에 봉사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부르심에 <예!>라고 즉시 응답할 수 있는가?

 

Oh~! NO!

 

사람이 살면서 근심을 할 적에는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동기부여가 몹시 중요하다.

어제 밤에 큰언니로 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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