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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24) 부모님은 큰형님이 모셔야 합니다.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4-23 조회수1,131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5년4월23일 부활 제4주간 토요일 성 제오르지오 순교자, 또는 성 아달베르토 주교 순교자 기념 ㅡ사도행전13,44-52;요한14,7-14ㅡ

 

      부모님은 큰형님이 모셔야합니다.

                                                  이순의

 

 

길(道)!

 

 

지난 주일이 성소주일이었다. 성소란 모든 사람의 길이 성소다. 하느님께서 주신 길을 기꺼이 응답하고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성소의 가장 큰 의미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에는 성소라고 하면 성직이나 수도직을 두고 암시하는 의미가 더 지배적이라고 보아야한다.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 너의 일생이 하느님의 길이므로 그 길을 새롭게 발견하고 발전시켜 나가자고 설명하는 경우보다는 너의 길에 사제나 수도자의 길이 보이는지를 발견해 보자고 하는 의미가 더 지배적이라고 해야한다.

 

나는 성소주일쯤에 몹시 특이하고 기분 좋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묵상글로 쓰고 싶었지만 실제 인물들에게 이 글로인하여 누를 끼칠까 조심스러워 감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성소주간이었던 부활4주간이 다 가기 전에 쓰고 싶은 글을 쓰지 않고는 종기가 나서 가려움증에 시달릴 지경이니 어쩔 수가 없다. 나는 그 사제성소의 신비를 지금부터 쓸 것이고, 실제 인물들이신 삼형제 신부님과 그 부모님께 버릇없는 무례가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 또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특별한 선택이었고, 그것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단호한 결단만이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간혹, 위로 형이 신학교에 가면 동생의 경우는 사제의 길을 가고 싶어도 형의 적극적인 반대로 인하여 결혼성소를 선택 해야만 하는 경우를 본적이 있다. 주변에서 그런 경우의 신부님들을 의외로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던 경우도 그 사실을 기정 사실화 해 줄 것이다. <내가 신부 되었으면 되었지 너 까지 신부 될 필요는 없다. 너는 부모님 모시고 아가들 주렁주렁 낳아서 어머님 아버님 입가에 웃음소리 나게 해 드리고, 무릎에서 고물고물한 재롱 보시게 해 드려라.>라는게 형님 신학생이나 형님 신부님들의 압력이다.

 

당연히 실명을 거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신부님 집에는 아들만 셋이었다. 큰형님께서 신부님이시고,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둘째도 신학교에 가버린 것이다. 다행히(?) 막내가 있는데 위로 두 형님들 보다 훨씬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며, 두뇌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형님 둘을 합해도 못 따를 만큼 능력이 출중했다고 한다.

 

세속에서 밥벌어 먹고 살을만한 능력이 뛰어나 보이고, 부모님 소원풀이도 좀 해 드릴 수 있겠고, 막내만 장가를 들면 이 가정의 복락은 금상첨화였던 것이다. 아들 둘이서 신부가 되었으니 3대뿐 아니라 6대의 영혼이 천국행이요. 똑똑하고 잘난 아들이 장가를 들어서 토끼같은 새끼들을 두게 되면 무릎에서 쏟아질 웃음소리는 맞춰놓은 당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셋째 아들이 신학교에 원서를 내 버린 것이다. 당연히 부모님은 물론이지만 위로 두 분 형님들께서 맨발에 기름칠꺼정 하고 달려들어서 반대를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본당신부님은 물론 주교님꺼정 나서서 <신부님은 위로 두 분 형님들이면 충분하고도 되었으니 자네는 결혼을 하여서 부모님과 함께 살아주시게.>라고 적극, 극구, 엄청, 사정사정하여 말리셨다고 한다.

 

그런데 이 당돌한 셋째 아들의 불효막심한(?) 발언은 부모님은 물론 위로 두 분 형님과 주교님까지 완전히 KO승으로 한 방에 날려 버렸다고 한다. 그 말씀인즉은.....!

<저는 막내이고 셋째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왜 부모님을 모셔야 합니까? 부모님은 당연히 큰형님이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큰형님을 환속 시켜서 부모님을 모시게 하시고, 저를 신학교에 입학하게 해 주십시요.>

 

얼마나 지당한 발상인가?! 큰형님께서는 그리도 좋아 보이는 신부살이를 해 보셨으므로 환속을 하셔도 당연히 미련도 없으실 것이고, 살아보지도 못하고 포기할 수 없는 막내가 신학교에 가는 것은 당연한 처사가 아니겠는가?! 고교생 미소년으로 어리셨지만 사제가 환속을 해서 부모님을 모셔도 죄가 아니라는 정도의 진리에 도통하시고도 남으셨든가보다.

 

일반적인 견해로는 신부님이 되셨으면 감히 환속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조차도 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역시 신부님들의 동생이라서 하느님이랑 한 판 붙어서 결판 내는데는 똑 소리가 나셨든가 보다. 그래서 지금 몇 안되는 삼형제 신부님이 되셨다. 세계적으로 핵가족화가 심화 되면서 아이들을 많이 두지 않기 때문에 삼형제니 사형제니 하는 기록은 국내적인 영광이기도 하지만 지구 가톨릭의 영광이기도 하다.

 

그렇게 당돌한 막내 신부님의 결단이 없었다면 우리 한국교회에 삼형제 신부님의 가정을 또 한 가족 얻는 영광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다행히도(?) 큰형님께서도 막내 동생의 말씀처럼 환속을 하여 부모님을 모시러 돌아가는 불상사는 없었다고 하시니 그 영광이 충만하다. 더구나 큰형님 신부님께서는 더 멀리 해외로 도망(?)을 가셔서 사목 중이시라고 한다. 어차피 해외에서 사목 중이신 큰형님께서는 부모님을 보러 오시기도 힘들고, 막내 신부님께서 부모님을 더 자주 보셔야 한다는데.....

 

이번에는 해외 사목을 해 보신 큰형님을 불러 들여서 부모님을 자주 뵙게 하시고, 막내인 저를 해외로 보내 주십시오. 라고 주교님께 간청을 드리시지는 않으실까 걱정이 앞을 가린다. 히히히히히!  둘째 신부님 소식을 좀 줄여서 샘을 내실랑가?? 아닙니다. 실제로는 둘째 신부님이 가운데 끼어설라무네 실무에는 주역이라고 하십니다. 원래 가운데 끼인 자식이 철도 빨리 나고, 욕심도 많고, 재주도 많다고 하잖아요?! 히히히히히!    

 

아들 셋을 모두 하느님 대전에 받치신 부모님들의 빈 그릇을 느껴보며 참 복도 많으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일이 어데 시켜서 이루어질 일인가? 바란다고 되어질 일인가? 주님의 선택만이 가능한 일이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었던 은총만이 해답이 아니겠는가?! 자식 셋을 모두 하느님께 드렸으니 늙은 노후에 자식들의 배필이신 하느님 생각만 하며 살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뭇 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신선일지도 모른다.

 

시집살이를 해 보았더니 누리는 인간사가 왜 그리도 복잡한가? 나이가 들어가고 보니 늙는다는 것이 왜 그렇게 무서운가? 자식을 혼인 시키고 보면 그 짐들 또한 결코 간단하지 못할 것이고? 오죽하면 시어머니 없는 성모님께서 복이시고, 며느리 없는 성모님께서 또 복이라고 하였겠는가?! 늙어서도 비울 수가 있다면, 이것 저것 근심을 끌어다가 채우기 보다, 온전히 비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이 사람을 끌어 안고 사는 만큼 사람의 복잡한 심사는 비례한다. 

 

그런데 세상살이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특별한 은총의 덕으로 아들 셋을 봉헌하셨으니 이 얼마나 복된 가치인가?! 아무쪼록 삼형제 신부님들의 성화를 기원하며, 부모님들의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너무나 쓰고 싶어서 쓴 묵상글이지만 세 분 신부님과 부모님께 결례가 되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셨거나 생각을 해 보신 분들께 작으나마 깊은 묵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온전히 놓을 수 있는지? 위로 형님 두 분께서 사제의 길을 가셨는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이라는 인간관계조차 놓을 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 나는 무엇을 놓고 살수 있는지? 하느님을 향해서 사람이 지닌 가장 가치있고 소중한 것을 비울 수 있는지? 그것들을 놓고도 정말로 내가 행복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ㅡ정말 잘 들어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요한14,12ㅡ     

 

 

세 분 신부님들께서도 이쁘게 살으시길 바랍니다. (-_*)!

 

 

 

바르고 곧은 길로 가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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