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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복음묵상(2005-04-25)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4-25 조회수1,047 추천수4 반대(0) 신고

 

제자들은 사방으로 나가 이 복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주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셨으며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전한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해 주셨다.(마르 16, 20)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인 성 마르코(Marcus)는 "마르코라고도 불리는 요

 

한"(사도 12,12-25)과 동일 인물이며,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회합 장소로

 

사용한 집주인 마리아가 그의 어머니인 듯합니다. 또 그는 바르나바의 사

 

촌이며(골로 4,10),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께서 체

 

포되실 때 몸에 고운 삼베만을 두른 젊은이가 예수를 따라가다가 붙들리

 

게 되자, 삼베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던 인물로 여겨지나(마르 14,51-

 

52)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수행하여 안티오키아로 갔고(사도 12,25), 그

 

다음에는 키프로스로 바르나바와 함께 갔으며, 바르나바와 함께 바오로의

 

1차 전교여행을 수행하였습니다(사도 13,5). 그러나 밤필리아에서 바오로

 

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사도 13,13).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바오로와의 의견 대립 때문에 바오로의 제 1차 전교여행에는 동행

 

하지 않았습니다(사도 15,36-40). 마르코는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로

 

갔으며(사도 15,39), 바오로가 투옥되었을 때에는 로마에 함께 있었습니다

 

(골로 4,10).

 

 

그는 분명히 베드로의 제자였는데 베드로는 그를 애정 깊게 "내가 아들로

 

여기는 마르코"라고 언급합니다(1베드 5,13). 불확실한 전승이지만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초대 주교였으며, 신약에서 여러 번 언급된 바와 같이 요

 

한 마르코임이 분명합니다(사도 12,25). 동방에서는 이 요한 마르코를 또

 

다른 사람으로 여기는데, 그는 비블로스의 주교라고 하며 9월 27일에 축

 

일을 지냅니다. 어쨌든 마르코는 60-70년 사이에 복음서를 기술했는데 주

 

로 베드로의 가르침을 기초로 하였으며 소아시아의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는 그가 베드로의 통역자였다고 하며,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위하

 

여 로마에서 복음을 기술했다고 전합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기원을 보면 이 복음서를 쓴 이 역시 다른 복음서 저자들

 

처럼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는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는, 복음서

 

저자의 이름을 처음으로 말한 이는, 기원후 150년경, 소아시아 지방 히에

 

라폴리스의 주교였던 파피아스입니다. 곧 베드로가 로마에 있을 때에 그

 

의 '통역'으로 일하였던 마르코라는 것입니다. 또 2세기의 이레네오 성인

 

에 따르면 베드로 사도가 순교한 다음에, 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에

 

따르면 베드로가 살아 있을 때에 마르코 복음서가 저술됩니다. 이 마르코

 

가 바로 사도 12,12에 나오는 예루살렘 출신으로,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선

 

교 여행을 할 때에 동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사도 12,25;

 

13,5.13; 15,37-39; 골로 4,10). 1베드 5,13에는 이 요한 마르코가 나중에

 

'바빌론' 곧 로마에 있는 베드로의 협조자가 된 것으로 나옵니다.


이 복음서가 기원후 64년 네로 황제의 박해가 있고 난 다음에 로마에서 저

 

술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널리 받아들여지는데, 그리스 말식으로 된 몇몇

 

라틴 말, 라틴 말식의 여러 어법 등이 그러한 설명을 뒷받침할 수 있으며,

 

적어도 유다인들의 관습을 설명하고(7,3-4; 14,12; 15,42), 아람 말을 쓸

 

경우에는 그것을 그리스 말로 번역하며 또 복음이 다른 민족들에게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노력은(7,27; 10,12; 11,17; 13,10), 이 책이 팔레스

 

티나 밖에 사는 비(非)유다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네로의 박해로 충격을 받은 공동체 안에 일어난 특수한 현실을 반영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성전이 파괴되리라고 예고되는데, 만일

 

이 복음서가 기원후 70년 예루살렘과 성전이 실제로 파괴된 다음에 저술

 

되었다면, 구체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이 그 예고에 반영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서(22,7)나 루가 복음서(21,20)와 달리, 마르코 복음서

 

에서는 그러한 것을 볼 수가 없어서 이 복음서의 저작 시기를 기원후 65년

 

에서 70년 사이로 잡는 데에 별다른 지장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통역"이었다는 마르코가 저술한 이 복음서와 베드로의 가르침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문제는 더 까다로운데, 우선 마르코가 베드로의

 

"통역"이었다는 파피아스 주교의 표현이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하지 않지

 

만 다른 한편으로, 이 복음서에서는 서술적인 세부 사항들이 제시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은 직접 사건을 목격한 이들의 증언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

 

다. 이 밖에도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베드로가 특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는데, 이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는 어떤 전통이 있었다는 점을 말한다

 

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베드로가 이 복음서에서 미화된다는 말은 아

 

닙니다. 
 

마르코 복음서가 저술될 때에 이용된 사료의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 남는

 

데, 이 사료에 관한 학자들의 생각은, 마태오 복음서 및 루가 복음서를 마

 

르코 복음서와 비교하면서 서로 엇갈리게 됩니다. 한쪽에서는, 앞의 두 복

 

음서가 편집될 때에 마르코 복음서가 자료로 이용되었다는 의미에서 이

 

복음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다른 쪽에서는, 지금은 소실되고 없지만 마

 

르코 복음서가 저술되기 이전에 이미 예수님에 관한 전통을 나름대로 정

 

리한 첫 문헌이 있었다고 전제하기도 합니다.
 

복음서는 어느 날 갑자기 저술되지 않았는데, 그것은 예수님에게서 시작

 

된 큰 전통의 흐름 가운데 한 단계로서, 그 전통의 일부를 글로 고정시킨

 

것입니다. 모든 사항을 고려할 때에, 마르코 복음서 이전에 이미 형성된

 

전통의 단계를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또는 그분

 

의 가르침 전체를 온전하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그분의 언행이

 

모아져 전승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일화가 엮어진 형태로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가 제시되었을 것이고 이어서 "가파르나움 활동"(1,21-38)이라

 

든가 "적대자들과의 논쟁"(2-3,6)과 같이, 활동 장소라든가 주제에 따른 자

 

료들의 단순 결집이 상당히 일찍이 이루어졌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것들

 

이 마르코가 복음서를 저술하면서 사용한 사료 가운데에 들어가 있었던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네 복음서 가운데에서 가장 먼저 저술되었습니다. 그래

 

서 이 책은 "복음서"라고 불리는 문학 유형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첫 본보

 

기입니다. 복음서들이 교회 안에서 사용될 때에, 흔히 마르코 복음서보다

 

나중에 저술되고 또 분량이 더 많은 마태오 복음서와 루가 복음서가 선호

 

되곤 하였으나 19세기와 20세기에 이루어진 성서의 문학 연구와 역사 연

 

구로, 마르코 복음서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더 이상 마르코 복음서의 순서만을 바탕으로 예수님의 전기를 구상하지는

 

않지만 다른 한편으로, 매끄럽지 못한 문장, 꾸밈없는 서술, 많은 셈족 말

 

식 표현, 그리고 신학적 숙고를 하는 데에서 드러나는 미숙함 등은, 이 복

 

음서에서 사용된 자료들이 옛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이 복음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거기에서 언급되는 장소들은 매우 오래

 

된 전통에서 유래하며 또 예수님의 가르침, 하느님의 나라가 곧 도래한다

 

고 강조하는 것, 비유, 논쟁, 더러운 영을 쫓아 내는 일 등이 벌어지는 역

 

사적 상황은, 팔레스티나에서 사신 예수님의 생애 안에서만 기원될 수 있

 

습니다. 물론 이 복음서가 회상하는 것들이 개인적인 기억에서 직접 유래

 

하지는 않고, 먼저 첫 제자들의 증언이 있은 후 이 증언이 복음 선포, 교리

 

교육, 이교도들과의 논쟁, 또는 교회 전례 등, 여러 상황에 알맞은 형태로

 

구성되어 사용되었고, 이렇게 사용되던 자료들이 복음서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마르코의 공로는, 팔레스티나 밖으로 퍼져 나간 교회의 생활, 그리고 여러

 

이교 문화와의 접촉으로 자극을 받아 이루어지는 신학적인 숙고가, 복음

 

의 원천과 직접적인 접촉을 상실할 위험이 있는 시점에서, 교회의 전통을

 

글로 고정시킨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파란만장하고 난해한 한 존재

 

의 모습을 지워지지 않도록 생생하게 보존하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도

 

대체 이분이 누구이신가?"(4,41). 예수님이라는 이 존재는 누구이신가? 이

 

물음에 대해서 마르코는 그분의 첫 증인들, 곧 첫 신앙인들의 답변을 들려

 

줍니다. 그러나 이 복음서를 읽는 우리가 그들의 답변을 되풀이하는 것으

 

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르코는 독자들에게도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서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신앙은 타협 없는 투신과 함께, 예수님을 따

 

르는 가운데에, 또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을 위하여 일하는 가운데에 체험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복음의 마지막 부분이자 '나해'의 주님 승천 대축일의

 

복음 말씀입니다. 성서학자들은 마르코복음이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원래

 

16장 8절로 끝난 것으로 추정합니다. 후에 어느 독자가 요한, 마태오, 루

 

가복음, 그리고 사도행전을 바탕으로 부활예수의 발현사화와 승천사화를

 

덧붙였고(16,9-20), 그 후 또 다른 독자가 거기에다 짧은 결문(16,21-22)

 

을 추가했다는 것입니다. 이 가설이 옳다면, 그 독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잘 읽은 것입니다. 즉, 마르코복음 16장 8절은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

 

는 메시지를 전해 받은 "여인들은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 무덤 밖으로 나

 

와 도망쳐 버렸고 너무도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였다."고 하는데,

 

그 독자들은 여인들의 닫힌 입을 열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

 

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발현하셨고, 승천하셨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복

 

음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복음이 닫힌 입 안에 머무는 것이 아

 

니라 열린 입을 통해 선포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사람이 되어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

 

혀 돌아가신 분, 그러나 부활하여 다시 살아 계신 그분이 오늘 하느님의

 

영광에로 올림을 받으셨습니다. 마르코복음은 예수님의 승천 사실을 복음

 

의 마지막에 보도하면서, 하늘에 오르신 예수께서 하느님의 우편에 착좌

 

하셨다고 합니다.(19절) 거기서 그분은 우리의 메시아요, 왕이시며, 대사

 

제이시고, 중개자요, 희망으로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고

 

이 세상을 영영 떠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가만두시지 않는데,

 

그분은 이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고(15절), 우리와 함께 계속 일하실

 

것입니다.(20절) 예수님의 승천은 세상에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열게 되는

 

데,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과 세례를 선포하는 시대가 열린 것

 

입니다. 바로 그일에 오늘 축일을 맞는 마르코 복음사가도 동참하신 것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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