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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5주간 화요일 복음묵상(2005-04-26)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4-26 조회수854 추천수5 반대(0) 신고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라."(요한 14, 27)
 
요한복음이 전하는 최후만찬 석상에서의 원초적인 고별사는 13-14장으로

 

끝이 납니다. 오늘 복음이 바로 고별사의 마지막 부분이고, 오늘 미사전례

 

의 복음으로는 봉독되지 않지만 예수께서는 "자, 일어나 가자"(31b절)라는

 

마지막 말씀으로 고별사를 마감하시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최후의 몇

 

시간을 향하여, 즉 유다의 배반과 수난과 죽음을 향하여 힘차게 걸어가십

 

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이 시간을 함께 지내도록 초대받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이 토마스와 필립보의 우문으로 시작이 됐지만 예수께서는

 

'협조자이시며 진리의 성령에 관한 약속말씀'에 이어 오늘 복음의 '예수께

 

서 주시는 평화'와 '예수의 다시 오심'을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주시려

 

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27절)고 하지만 사실 세상은 자신

 

이 줄 수 있는 평화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은 오히려 불안과 걱정

 

만 가지고 있을 뿐이고, 그래서 세상은 평화를 원하고 또 평화를 위해 노

 

력합니다. 
 

평화란 평온하고 화목한 것으로 전쟁이나 분쟁의 상대적 개념입니다. 평

 

화의 내용과 의미는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여왔는데, 즉

 

동양문화권에서의 정적.내향적.비정치적인 데 비해 서양문화권에서는 동

 

적.외향적.정치적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입니다. 근대에 들어 세계평화는

 

앞의 전자에 해당되는 듯한 반전주의나 이상주의의 한 기둥과, 후자에 해

 

당되는 듯한 국제주의나 현실주의의 다른 기둥으로 도모되고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교는 철저한 반전주의의 입장을 취하여 왔습니다. 오늘날 세계평

 

화를 위한 노력은 UN의 정신이 주도하고 있으나, 그 입장은 서양문화권을

 

대변하고 있는 실정이고 이는 로마제국주의 시대의 "팍스 로마나"(Pax

 

Romana)와 중세기 십자군원정과 흡사한 것으로서 제국 내에서는 통일과

 

질서를 구현하면서도 제국 밖으로는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전쟁도 불사한

 

다는 것입니다. 
 

만약 세상이 평화를 준다면 그것은 하늘이 주는 것이며, 하늘이 주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한시적인 만족에 불과합니다. 예수의 제자들 또한 불안

 

과 걱정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온갖 악과 고통과 두려

 

움, 믿어지지 않는 세상 사건에 대한 하느님의 기나긴 침묵은 세상을 살아

 

가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주

 

시는 사랑의 공동체에 머무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걱정과 불안을 극복하

 

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떠나가심'은 '다시 오심'을 위한 것입니다. 신약성서 공동체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 곧바로 이어질 사건이나, 어떤 빠른 시간 안에 이

 

루어질 재림으로 기대했었지만 다시 오시기로 한 예수님이 기대한 시간

 

안에 오시지 않게 되자 세상의 마지막 시간에로 생각을 옮기게 됩니다. 이

 

를 일컬어 초대교회가 경험한 '재림지체 현상'이라고 합니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예수님의 '다시 오심'의 약속은 불안과 걱정의 세상에 대한 모든

 

희망의 근거로 충분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이 온갖 불신의 요소를

 

제공하더라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시는 것입니다.(29절) 
 

이제 마지막 시간이 목전에 다가왔고 세상의 권력자가 가까이 오고 있습

 

니다. 세상의 권력자란 우선 사탄의 도구로 예수를 팔아 넘긴 유다(13,27)

 

와 예수를 체포하러 오는 군대(18,3)를 구체적으로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

 

로 볼 때 이 권력자는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 그래서 생명이 없고 죽음만

 

가지고 있는 세상의 권력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세상의 권력이 잠시나마

 

예수보다 더 우세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예수님을 어떻

 

게 할 수는 없습니다.(30절) 즉 죽음이 생명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죠.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께서 분부하신 대로 실천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 하겠다."(31절)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음의 강요에 의해 생명을 바치시는 것이 아니

 

라, 자발적으로 세상의 생명을 위해 죽음에 생명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이

 

것이 아버지의 뜻이며, 예수께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이유에서입니다. 결

 

국 세상은 예수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만들어내는 죽음의 십자가를 통

 

하여 생명과 평화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사랑이요, 우리에게 주

 

시는 참평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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