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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26) 떽가우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4-27 조회수1,000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5년4월27일 부활 제5주간 수요일 ㅡ사도행전15,1-6;요한15,1-8ㅡ

 

                  떽가우

                          이순의

 

거위.

 

 

떽가우라는 말은 거위를 말한다. 나 어렸을 적에는 마을에서 거위를 떽가우라고 불렀다. 우짓는 소리가 몹시 시끄럽고 떽까욱 떽까욱 떽까욱 해서 그렇게 지칭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양은 오리하고 똑 같이 생겼으나 오리는 주둥이가 몹시 귀엽고 예쁘게 생겨서 뽀뽀를 해주고 싶지만 떽가우는 이마에 단단한 뭉치를 달고 있어서 일단은 보기에도 위협적이다. 또 오리는 꿱꿱꿱 거리며 소리를 내어 듣기에 가히 기분 나쁘지 않지만 떽가우의 의성어는 상당히 부드럽지 못하다.

 

그런데 성질도 다르다. 오리는 체격도 작고 귀여우며 온순하여 사람에게 달려들지 않지만 떽가우는 큰 녀석은 사람의 눈높이랑 마주할 만큼 꽂꽂히 설 때도 있고 입을 쩍 벌려 소리를 지르며 위협적으로 사람에게 달려들어서 쪼기도 한다. 그래서 나 어린시절의 떽가우는 몹시 무서웠다. 겁에 질려 다니는 나를 알아본 탓인지 떽가우들도 나만 보면 더 위협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고, 떽가우의 주인이신 큰 어머니께서는 그런 떽가우를 몰아주시느라고 분주하셨다.

 

몇 일 전에 짝궁은 감동에 젖어서 말을 뱉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40년 전에 보고 처음 보았네.

 요즘 시대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네.

 충청도 어느 집에를 갔더니

 장닭(=수탉)이 달려들어서 어찌나 귀찮게 굴든지!

 발로 차버리려다가

 하도 오랜만에 당하는 광경이라서 져 주면서 싸워주었네.

 아! 고놈 신기하더구만!

 

농경사회를 주로 경험하며 살은 어른 세대는 이 말의 뜻이 무슨 뜻인지 알수 있지만 젊은이 세대들은 그 뜻을 알지 못할 것이다. 전에 나 어렸을 적에는 어느 집이나 마루 밑에서는 개나 고양이가 사는 것은 물론, 소는 외양간에, 돼지, 염소는 우리에 가두어 키웠고, 마당에는 닭, 오리, 거위 같은 가축들을 흔하게 놓아 기르며 살았다. 지금처럼 좁은 철망을 짜서 집단적으로 가두어 키운 것이 아니라 마당에서 텃밭에서, 울타리 밑에서, 우물이나 샘 가에서 그리고 헛간에 걸어둔 삼태기 위에서 모두 함께 모여 모여서 살았다.

 

우리 집에는 돼지우리 위에 닭장이 있었는데 누가 가르치지 않았어도 밤이 되면 닭들이 걸쳐놓은 작대기를 타고 닭장에 모여 잠을 청했다. 워낙에 부지런한 가축이라서 새벽에 닭장에서 나오는 것은 한 번도 본적이 없었지만 해가 저물기도 전에 어찌 밤이 오신다는 것을 알고 집을 찾아서 들어가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내가 한참을 자라고 이치에 밝아질 무렵에 집에서 알을 앉혀 병아리를 까지 않으신 어머니는 읍내 장터에서 부화한 병아리를 사오셨다.

 

그리고 그 병아리들을 닭장에 가두어 모이를 주면서 어느 만큼 성장을 시키고, 작대기를 타고 오르내릴 수 있어지면 아침이면 닭장문을 열어두셨고, 밤이면 찾아서 몰아 넣어 문을 잠그기를 반복하셨다. 다 자란 어른 닭이 될 무렵이면 문을 닫지도 열지도 않으셨다. 닭들이 알아서 들고 나기 때문이었다. 밤이 되면 정확히 찾아들고, 아침이면 알아서 나오는! 꼭 밤에만 드나든 것은 아니었다. 알을 낳을 때도 집에 알을 낳았고, 비가 오시거나 뭔가 이상이 생기는 날에는 닭장에 들거나 그 주변에서 머물러 놀았다. 닭들도 학습을 통해서 제 집을 들고 난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그런데 집집마다 기르는 가축들에게도 반드시 서열이 있었다. 개나 고양이도 서열이 있었지만 닭이나 거위에게도 서열이 있었다. 언제나 힘센 숫놈들이 기선제압을 하였고 다른 녀석들은 안전했다. 뿐만 아니라 주인이 누구인지도 알아볼 뿐만 아니라 자주 오시는 방문자인지, 아주 낯선사람인지, 자기들을 무서워하는지 아닌지도 잘 알아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에 맞는 대접을 할 줄도 알았다. 나는 어려서 몹시 나약하고 여린 아이였다. 그래서 친구들과 심하게 어울려 놀지도 않았지만 무서운 것도 많았다.

 

그 중에 장닭이 있고 떽가우가 있다. 장닭은 당숙집 마당의 장닭이 제일 무서웠고, 떽가우는 주조장 큰집의 떽가우가 제일 무서웠다. 당숙집은 내가 학교에 가는 길목에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왜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숙집의 장닭은 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숙네 싸리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렇게 큰 장닭이 붉은 벼슬에 힘을 주고 목의 털들을 모두 세워 사자처럼 변신을 하고 달려 날아 나에게 덮쳤다. 나는 꼼짝없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어야 했는데, 문제는 그 장닭이 나의 발자국 소리를 기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교에 오고 가는 길목에서 조차 나를 위협하였고, 당숙네는 싸리 대문의 반만큼 턱을 세워 닭이 나가지 못하도록 가려 두었지만 그 장닭은 날아서 나를 쪼으러 달려들었다. 결국 당숙네 집앞을 지날 때면 겁에 질려버린 나를 누군가 동행하여 건너주곤 했었다. 주조장 큰집의 떽가우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큰집 마당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큰 집의 온 처마밑은 떽가우들의 괴성으로 꽉 차고, 퍼덕이는 날개짓으로 먼지가 자욱했다.

 

어린 나의 눈으로 볼 때 날개를 편 떽가우가 나보다 열배는 커 보였고, 소리는 백배도 더 시끄럽고 위협적이었다. 나는 큰집의 처마밑 기둥에 착 달라붙어서 꼼짝을 못했고, 어른들은 그런 떽가우들을 혼내시느라고 훠이훠이 소리하셨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떽가우들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살금살금 까치발을 들고 가도 큰어머니 보다 떽가우가 먼저 나타났고, 주조장 집이었던 큰 집의 너른 대문앞에 서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떽가우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만 보아도 떽가우는 만만한 나를 알아보았다.

 

40여년 만에 자기에게 달려든 장닭이 반갑고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하는 짝궁으로 인하여 유년의 그리운 추억을 꺼내보았다. 석촌호수에 가면 오리와 거위가 어울려 놀고있다. 거위를 보고와서 그 추억을 메모해 놓았고, 오리를 보고와서 오리를 메모해 놓았다. 그리고 메모장이 두 번 바뀌도록 그런 주제의 수필도 묵상도 쓰지 못했다. 그런데 장닭이 반가운 짝궁의 정담은 나에게 낡고 달아서 멀어진 메모장을 들추게 해 주었다. 그리고 <떽가우-주조장> <장닭- 당숙> <오리-몰이>라고만 적혀있었다. 그렇게 짧은 단어에 함축되어있는 내용은 이렇게 풍성한 가슴으로 남아있다.

 

오리는 가슴에 담긴 주제가 달라서 다음에 언제 써 보아야할 것 같다. 나는 이러면서 살아있고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훗날에 나는 또 오늘을 이토록 아름다운 추억으로 미화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나 어릴적 학교 길의 당숙네 집 장닭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고, 주조장 큰집의 떽가우들은 원망의 미움이었다. 그래도 호수에 가면 떽가우가 어디서 노는지를 찾아 살피게 되고, 떽까욱 떽까욱 떽까욱 하며 소리를 질러본다. 물론 오리에게도 꿱꿱꿱 소리를 보내주고 있다. 나는 오늘 이런 추억을 쓰며 나 여기에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표시를 하고 있다.

 

† 주님. 이런 졸글이라도 쓸 수 있도록 재주와 끼를 주신 창조주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올립니다. 성령께서 나에게 크신 은총으로 주님의 가지에 붙어 있도록 하셨음을 믿나이다. 미천한 자의 찬미가 되고, 봉헌이 되기를 우리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ㅡ너희는 내 교훈을 받아 이미 잘 가꾸어진 가지들이다.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포도 나무에 붙어있지 않는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붙어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나는 포도 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요한15,3-5ㄱㅡ    

 

 

 

부부.

 

 

 

가족.

 

 

 

석촌호수. (동호)

 

 

예술!

 

 

☆ 덤으로 추가!

    나는 석촌호수의 서호는 싫어하고 동호는 좋아한다.

    서호에는 기업에서 호수의 가운데에 유령의 성과 같은 바벨탑을 쌓아두었기 때문이다.

   호수의 수질이며 여러가지 관리를 해 준다고 해도

   내가 시집와서 얼마되지 않아

   호수 가운데를 메꾸기로 했을 때는 구민 대모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공약 중에 풍경을 가릴 만큼의 건물은 올리지 않는다는 요구사항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10여년이 흘러

   작년이던가?!

   약속을 어기고 그 서호의 중앙에는 엄청나게 무서운 입을 벌린 유령(?)의 성이 세워졌다.

   바퀴달린 지네가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종일 반복하고......

   그래서 나는 석촌호수의 서호를 매우 싫어하게 되었다. 

 

 

벗 나무 굵은 가지 뒤에........!  (서호)

??? 이 사진이 왜 지워졌었지요?

기업에서 제동을 걸었나요?

다시 지워지면 기꺼이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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