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28) 꽃 보다 내가 더 멋져요.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4-30 조회수920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05년4월30일 부활 제5주간 토요일 성 비오 5세 교황 기념 ㅡ사도행전16,1-10;요한15,18-21ㅡ

 

         꽃 보다 내가 더 멋져요.

                                      이순의

 

 

 

 

 

 

짐을 던지는 뒷모습.

 

 

찍었는데......

"하나 둘 셋 안했잖아요? 다시 찍어주세요."

 

 

멋있습니다.

맞아요. 당신이 꽃 보다 아름답습니다.

언제나 안전운전 하시고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연보라색의 라일락 꽃이 만개를 했다. 골목 어느 빌라의 늙은 큰 나무에 촘촘히 수 놓은 꽃 무늬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처음 레이스를 생각해 낸 사람은 만개한 라일락의 투명한 무늬를 보며 실을 짜 보지 않았을까? 하는 끌림에 빠져 열심히 디카의 렌즈를 조절하고 있었다. 꽃잎이 투명하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는데, 그 시간이 지나면 금방 멈추어 버릴 것 처럼 함박 웃는 꽃 잎은 오후의 연한  햇살조차 투과 되고 있었다. 그 선명한 보라색 잔꽃무늬 레이스를 따다가 신부님 제의에 송올이 송올이 수 놓아 드리고 싶었다.

 

"꽃이 예쁘신가요?

 꽃 보다 내가 더 예쁘지 않나요?"

깜짝 놀라서 돌아보았더니 재활용 수거차에 재활용품을 싣고 있는 구리빛 강한 청년이었다. 짐을 던져 올려 싣는 청년의 뒷모습에 얼른 디카의 셔터를 눌렀다.

"그런거 말고 멋지게 찍어 주세요."

그래서 다시 디카의 단추를 눌러 찍었다. 그런데 다시 주문을 하시는 것이다.ㅎㅎ

"하나 둘 셋! 하셔야지 안했잖아요? 다시 찍어주세요."

 

그래서 하나 둘 셋을 하고 다시 찍어 드렸다. V자로 손을 들어 보이는 그분의 환한 미소가 더 환하게 찍혀졌다.

"만족하시나요?" 라고 여쭈어 보았다.

그런데 "사진을 어떻게 찾지요?" 라고 물어오셨다.

"이 사진은 찾는게 아니구요. 인터넷에 오를건데요?

 컴퓨터 하시나요?"

 

안타깝게도 그분은 컴퓨터를 하시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전화 번호를 주시면 인터넷에 올라있는 모습을 알려드리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분은 자신의 전화번호를 불러 주셨다. 사진을 올리고 보니 열심히 사는 사람의 고단함은 없다. 환하다 못해 신명이 난 그분의 미소는 레이스처럼 투명한 라일락꽃 보다 더욱 맑은 아름다움이다. 힘이 있고, 역동적인 생기가 물씬물씬 넘쳐나는 구리빛 살결은 잠깐 만나 스쳐 지나가는 나에게 짙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이 얼마나 순박한 순간이더란 말인가?! 

 

세상이 발달하고, 언제 어디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찍혀져 만천하에 공개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두들 두려워하고 있지 않던가?! 좋은 의도로 노출 되어진다는 보장은 더더욱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은 불신이라는 늪을 더 먼저 철조망처럼 쳐 놓아야만 한다. 그런데 꽃이 예쁜 나에게 자신이 꽃 보다 더 예쁘다고 말하시는 젊고 건강한 삶의 낯선 청년은 나의 이 작은 디카에 영광으로 담겨졌다. 철조망 처럼 높은 불신은 없고, 여염의 아낙이 지니게 될 사진을 믿어주신......

 

그분의 트럭에 실린 저 낡은 폐품들은 그분의 노력의 결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버린 일상이라는 양심들은 그분의 트럭에 실려 새로운 창조의 구간으로 들어서게 되리라. 용광로 속의 뜨거운 열에 달구어져 녹아 소독이 되고, 깨끗한 육신을 가꾸어 새생명이라는 완제품으로 돌아오리라. 그리고 우리 부족한 일상의 충실한 도구가 되어 함께 살게 되리라! 그러고 보니 충실한 종복을 부려먹은 사람들은 기운 잃어 낡아 버린 그것들을 버렸고, 그분은 그것들을 거두어 나르는! 그러므로 골목은 한가롭다.

 

그 골목의 낯선 사람들에게 얼굴도 모르고 스쳐 지나가는 인연의 공덕은 그렇게 소리없이 이어지고, 나는 그 보답으로 이 글을 쓴다. 그분의 트럭에 실려 떠나는 저 종복들의 여정에 대하여 알 길이 없다지만 그분은 어느 목적지까지만 그것들을 보내고 또 돌아오리라! 다시 골목을 누비며 거기 그 자리에 나와 앉은 손님들을 싣고 가시겠지! 이토록 우연한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 인연들을 맺고 놓으며 세월이 흘러 가는가?! 여인은 꽃이 예뻐서 꽃을 찍었는데, 꽃 보다 내가 더 예쁘다고 나서는 청년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생면부지의 여인을 믿어주신!

 

"맞아요. 당신이 꽃 보다 아름답습니다.

 언제나 안전운전 하시고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이렇게 낯선 문장들과 풍경들이 무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토록 환한 미소의 덕으로 늘 행복하십시요.!

 감사합니다."

 

그분께서 실망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화를 드려야지!

 

ㅡ온 누리 반기어 주님께 소리쳐라. 기쁨으로 주님 섬겨드려라. 춤추며 당신 앞에 나아가리라. 시편99,1-2 화답송ㅡ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