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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6주일 복음묵상(2005-05-01)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5-01 조회수776 추천수2 반대(0) 신고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 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곧 진리의 성령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이 너희와 함께 사시며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요한 14, 16-17)
 
우리기 익히 알고 있듯이 유독 요한복음사가만이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행하신 긴 고별사를 보도합니다.(13-17장) 그러나 성서학자들은 13-14장

 

이 요한복음의 원초적인 고별사에 속하고 15-17장은 추가로 편집된 것으

 

로 주장합니다. 요한복음 21장이 추가로 편집된 것과 같이 15-17장도 요

 

한복음 공동체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후에 첨가되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15-17장은 13-14장에 대한 부연설명으로 간주할 수 있고 따라서 오늘 복

 

음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신 후 행하신 기나긴 고별사

 

(13-17장)의 원초적인 첫 부분(13-14장)에 해당됩니다. 요한복음 13장은

 

최후의 만찬 후 제자들의 발을 씻김(1-11절), 발을 씻겨줌의 의미(12-20

 

절), 유다의 배반예고(21-30절), 새계명 선포(31-35), 베드로의 장담과 배

 

반예고(36-38절 끝) 등을 보도하고 있고, 요한복음 14장은 예수께서 길과

 

진리와 생명이심을 선포하신 내용과 아버지와 아들의 일치(1-14절), 성령

 

의 약속(15-26절), 그리고 예수께서 주시는 평화(27-31절 끝)에 관한 가르

 

침으로 구성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고별사를 요한복음 13-14장으로 한정할 때, 고별사 전체

 

를 주도하는 가르침은 첫째로,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 둘째로, 아들의

 

자기계시와 정체, 마지막으로, 성령의 약속과 오시는 성령의 정체성 공개

 

로 요약됩니다. 이 세 가지 주제는 순서대로 다루어지거나 독자적인 단락

 

안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고별사 전체를 오가는 흐름을 주도합니다. 물론

 

성령의 약속과 오시는 성령의 정체성에 관한 보도는 14,15-26에 한정되는

 

데, 여기에서도 사랑의 계명은 함께 언급되며 이 단락에서 중요한 것은 무

 

엇보다 성령의 약속과 성령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오늘 복음에 집중시켜보면, 우선 예수께서는 사랑의 테마

 

를 재삼 언급하시면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사람

 

은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나아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

 

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통하여 아들

 

이 드러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21절) 그런데 그다음을 보면

 

11제자 중에서 유다 타데오가 예수께서 세상에는 자신을 나타내 보이지

 

않고 제자들에게만 한정하여 나타내 보이려 하는 의도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는데(22절), 이 질문은 사실상 불만과 의구심을 담은 질문입니다. 이

 

는 이스라엘 전체가 '국가.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참에 왜 예수

 

께서 세상의 왕으로 군림할 수 없는지에 대한 불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의 대답은 질문의 의도를 비켜가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분명히 세상의 메

 

시아로 이 땅에 오셨으며, 또 메시아로 자신을 계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이를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메시아적 자기계시는 "사랑함으로써 예수님의 말씀을 지

 

키는 사람", 즉 적어도 제자들에게 한정되는 셈입니다.(23-24절) 제자들은

 

자신들이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

 

하여 계시된 말씀을 들었으며, 듣고 응답하였으며, 응답을 통하여 아버지

 

와 아들의 '사랑 공동체'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누구든

 

지 예수님의 사랑에 머물고 그 사랑을 지키는 사람은 하느님 아버지의 집

 

에 거처를 가질 뿐만 아니라, 그 사람 스스로가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살

 

아 있는 집이 되는 것입니다. 

 

 

이미 16-17절에 걸쳐 언급되었고, 26절에 또다시 언급되는 '성령의 약속

 

과 성령의 정체성'에 관한 보도는 요한복음의 특징입니다. 신약성서 전체

 

에 '성령'이라는 단어는 235번 등장하는데, 대부분의 용도는 '성령'이라는

 

단독적인 표현에 머물거나 '하느님께서 주신 성령'으로 보도됩니다. 요한

 

복음사가도 처음에는 이런 맥락에서 '성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1,32; 1,33; 3,5; 3,8; 3,34; 7,39; 20,22 참조) 요한복음의 고별사에서 보

 

도되는 표현은 전혀 다릅니다. 다른 곳에서는 '성령'이 다소 '비인격적 표

 

현'에 머물거나 '하느님께 속하여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엇'의 의미를 강하

 

게 지니고 있지만, 여기서는 글자 그대로 '그분'(14,17)이라는 인칭대명사

 

를 부여하여 하느님의 또 다른 '위격'으로, 나아가 '협조자', '진리의 성

 

령'으로 계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 주실 진리의 성령 곧 그 협조자는 모

 

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모두

 

되새기게 하여 주실 것이다."(26절) - 병행구절 15,26; 16,13; 16,15 참조.

 

이로써 예수께서는 '성령'을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본성을 지니신 제3의

 

위격, 즉 '하느님 성령'으로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승천대축일을 일주

 

일 앞두고, 성령강림대축일을 이주일 앞둔 시점에서 오늘 부활 제6주일에

 

성령 하느님의 강림에 관한 약속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입니다. 결국 우리

 

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그분을 통해서 우리 안에 살아계신 하

 

느님을 만나는 것은,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서 그분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

 

화와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은 하느님께서 보내주시는 진리의 성령, 곧 협

 

조자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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