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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32) 촉촉히 비는 내리고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5-06 조회수883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5년5월6일 부활 제6주간 금요일ㅡ사도행전 18,9-18;요한16,20-23ㄱㅡ

 

           촉촉히 비는 내리고

                                     이순의

 

 

 

성요셉과 아기예수님.

 

 

종일 아스팔트를 적시느라고 비가 오셨다. 잔잔하게 오셔서 기분 좋은 보슬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성당에 다녀오고, 침도 맞았다. 그런데 공과금을 어제 냈어야 하는데 휴일이라서 오늘 꼭 내야만 했다. 침에 소진한 기운으로 눕고싶은 간절함을 떨구고 은행에를 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비 오시는 날의 풍경을 찍느라고 골목을 누비다가 다시 성당 마당에 섰다. 4일에 있었던 성모의 밤을 꾸미고 남으신 분홍의 장미꽃들이 촉촉히 젖어 렌즈 안에 담겼다.

 

짝궁은 산으로 갔다. 그리고 오늘 씨앗을 넣으려고 했는데 비가 오셔서 종일 숙소에 갖혀서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다시 나의 근신은 시작 되었다. 짝궁이 산으로 가면 먹고 자는 것 뿐만 아니라 심지어 숨쉬고 말 하는 것 까지도 절제를 하며 사는 사람이 나다. 짝궁이 집을 비울 때는 더욱 두문불출 하는 사람도 나고, 일거수 일투족에 조심을 하는 사람도 나다. 그런데 올해는 좀 어려울 것 같다. 운전 연습도 해야하고, 디카가 생겼으니 사진도 찍어야하고, 건강을 위해서도 활동을 해야할 것 같다.

 

그동안은 나를 가두는 생활을 해왔었다. 짝궁보다 더 잘난 사람 만나기를 꺼려했고, 짝궁이 돌아다니는 직업이기 때문에 반드시 나는 집 밖에 나서는 일을 삼가하는 생활을 지켜 살았고, 어쩌면 활동을 해서 돈을 버는 일 보다 더 중요한 일은 내가 짝궁보다 낮아지는 일이었고, 내가 짝궁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루어졌다. 경제적인 여유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심리적인 안정을 철저하게 지켜낸 세월이었다.

 

가끔은, 내가 활동을 해서 여유로웠다면 지금의 생활이 어떠했을지 돌아보기도 한다. 경제적으로는 윤택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이 마음처럼 순수하게 짝궁의 그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세상이라는 이기에서 내 자신을 소외시켜버린 공덕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유리처럼 투명한 순수를 상실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하여는 상당한 가산점을 스스로에게 주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젊음이 있어서 가능했던 내면의 갈등들은 하지 않는다. 좀 잘살고 싶은, 좀 잘나고 싶은, 좀 잘되고 싶은, 좀 더라는 개념들이 희석되고.... 

 

다시 가을이 오실 때까지 나는 오직 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좀 덜 살아도, 좀 못나도, 좀 덜 되어도, 무강하게 짝궁이 돌아오기를 비는 일념으로 기도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그 바람 만큼은 들어 주셨으므로 올해도 그 바람을 꼭 들어 주시리라고 믿는다. 제 때에 촉촉히 비까지 내려주시는 섭리에 감사드리며 출발이 고운 것 처럼 결실도 무탈하시기를 고대한다. 인생사 어데 사람의 뜻이던가?! 낳고 죽음 뿐만 아니라 살고 맺음도 모두 모두 신의 뜻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을 믿어야만 나도 안심이 되어 더운 여름 한 철의 긴긴 날들을 견딜 수 있지 않겠는가!

 

디카에 담겨진 골목 어느 울타리 두른 가정에서도 제 각각의 가장들과 가족들이 둥지를 이루며 살고 있다. 그 복이 어데 쉬운 복이던가?! 그 만족이 어데 간단한 만족이던가?! 그 살뜰함이 어데 흔한 행복이던가?! 모두가 바라고 견디고 참아내며 일구어 온 정성의 결실이 아니겠는가?! 짝궁과 나도 그런 울타리 두른 둥지를 꿈꾸며 오늘 이렇게 촉촉히 젖어 안타까운 먼 안부를 듣는다.

<여기는 산 속이라서 춥네.

  오리털 파카랑 좀 보내주소.>

작년에도 그랬으면 올해는 좀 미리 가져갈 것이지?!

 

그래도 숙소에 들었다는 전화 한 통에 나는 이 밤을 안심한다.

<꼭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하고 주무세요.

  성호를 부지런히 긋는 것 보다 더 완벽하고 좋은 기도는 없어요.>

나는 기도문을 외우지 못하는 짝궁에게 성호경을 시키고 또 시키며 가을을 기다릴 것이다. 먼데 있는 짝궁을 주님이 아니시면 누구에게 맡길 수 있겠는가?!

 

† 주님. 마르셀리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마르셀리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마르셀리노에게 평화를 주소서.

  아멘!

 

골목 어느집 마당의 텃밭에는 상추도 있고.....

보기만 해도 행복했습니다.

 

 

성모의 밤에 봉헌되신 장미!

 

 

ㅡ이와 같이 지금은 너희도 근심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와 만나게 될 때에는 너희의 마음은 기쁨에 넘칠 것이며 그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요한16,22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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