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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33) 이래서 좋았습니다.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5-09 조회수1,093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5년5월9일 부활 제7주간 월요일ㅡ사도행전19,1-8;요한16,29-33ㅡ

 

      이래서 좋았습니다.

                               이순의

 

예수님의 마음

 

 

 

시대가 발전한다는 것은 인류의 의식 구조가 달라지는 일이며 삶이라는 개념 자체가 변형되는 일이다. 시대는 종교 안에서도 발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수 세기를 거처 오면서도 절대로 불변해야만 하는 원칙이 있다. 그것은 어떠한 발전도 어떠한 구조나 개념도 신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류의 발전이 인간에게 우월감을 증여할 때는 인간이 기존의 종교 안에서 멀어져 스스로 독립되기를 갈구한다.

 

현대사회가 발전하면서 또는 선진 강국이 증가하고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인류는 종교에 귀의하기 보다는 스스로의 내면에 심취하거나 관계적 자아를 배척하는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종교가 담고있는 보편적 경향은 모두가 함께 평화로우며 그 안에서 개인 각자에게 신의 섭리가 작용하기를 청하는 것이다. 신이라는 절대적 능력자에게 인간은 피조물에 지나지 않으며 신은 그런 인간에게 하염없는 희망의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종교 안에서 조차 시대적 흐름을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다. 언어가 갈리고 문명이 차단 되었던 과거 시대에는 대륙은 대륙끼리, 민족은 민족끼리, 부족은 부족끼리, 아니면 마을이나 가족끼리 각자 고유의 종교를 유지 발전시켜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종교가 각 대륙과 민족과 부족 뿐만 아니라 마을과 가족은 물론 개인까지 찾아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인류가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종교가 인류를 따라 발전하고 있다.

 

우리 가톨릭 교회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지역적 안배를 확실시 하고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가면 아프리카 민속춤과 함께 미사가 열리고, 더 이상 가톨릭 교회는 로마에 머물러있는 종교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한국 가톨릭 교회 안에서도 각양각색의 모양과 형태를 동원하여 새로움에 대한 선교방식을 발전시키고 있다. 물론 개혁이라는 주장에는 원래 이것이 우리민족 다운 가톨릭이었다는 전통적 모양새와 젊은이들의 구미에 맞는 현대적 모양새로 구분지어진다.

 

그러나 그 모두가 소란스럽기는 매 한가지였다는 점에는 동점을 줄 것이다. 전례춤이라든지 국악미사, 음악미사, 성령미사, 율동미사,.... 짧게는 한 시간에서 길게는 다섯시간도 끌었던 미사들을 참례하고 지켜 보았지만 그 순수성에 대하여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보았었다. 아무리 훌륭한 전례라고 해도 모든 전례의 행함은 말씀과 성찬례를 도와주는 역활에 지나지 않는다. 그 도를 지나치게 된다면 아무것도 행하지 않음만 못하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하다보면 주객을 상실하거나 객이 주인의 자리를 넘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보수적 경향의 사제들은 그 변형된 전례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제라고 수군덕거리기도 하고. 그러나 일반적인 교우들의 입장에서는 요란한 전례행위가 꼭 신심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한 번쯤 색다른 음식을 먹어보듯이 새로운 형태의 전례에 참여해 보는 맛을 느낄 뿐, 삼시 세 때를 먹으라고 한다면 못 먹을 음식임에는 분명하다.

 

어제 주님승천 주일 미사에 수녀님들께서 오셔서 우리 본당의 미사전례를 도왔다. 나는 근래에 보기드물게 깔끔한 맛이 좋았다. 수녀님들이 하셔서 좋은 이유도 충분했지만 무엇보다 사제의 미사성제에 요란하지도 번거롭지도 정신이 사납지도 않았다는 점에 크게 가산점을 줄 것이다. 강론을 대신하여 작은 복음극을 하였는데 그 단순함에 찬사를 보낸다. 내용은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한 여인이었다. 먼저 수녀님들께서 많은 수를 투입하여 배우를 세울 수 없었다는 부득이한 상황이 연극을 더욱 단정하게 꾸며 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1막

배경-거리

출연1-생선장사

      2- 랍비

내용- 안식일에 여인이 생선을 팔다가 섬칫하여 멈추고 랍비는 여인에게 다가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준 예수를 잡아들여야한다고 주장한다.

특징- 미디어 사목답게 녹음상태가 매우 양호했고, 시작이 소박하고 겸손했으므로 미사중인 교우들의 감성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2막

배경-회당

출연1- 생선장사

       2- 랍비

       3- 젊은이

내용- 간음한 여인을 돌로치자고 등장인물 세 사람과 군중이 소리를 지르고 여인의 흐느낌과 예수님의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쳐라"라는 음성이 들린다. 세 사람은 돌을 버리고 제 각각 차례로 사라진다.

특징- 군중과 간음한 여인과 예수님은 배우가 없이 독백으로 처리되었다. 그것이 더욱 짙은 맛이었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소리만 있으되 배우는 없어서 미사성제에 충분한 도움이 되는 초미니극이었다.

 

3막

배경-회당의 마당

출연1- 간음한 여인

       2- 예수님

특징- 2막에서 창녀와 예수님께서 등장하지 않았으므로 세 사람이 돌을 버리고 사라진 뒤로 연극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붉은 옷을 입은 창녀가 나와서 흐느끼고 백색의 옷을 입은 예수님께서 다가와 용서를 해 주신다. 너무도 간단한 이 대목이 압권이었다. 아마도 돌을 먼저 버리고 퇴장하신 수녀님께서 옷만 바꿔입고 등장하셨으리라. 그래야 최소의 인원으로 극이 가능했지 않을까? 짐작이 된다.

 

매우 짧은 꽁트였지만 미사의 정갈함에 충분히 방해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겸손했다고 본다. 요즘은 뭘 들고 나온다고 하면 겁이 난다. 너무나 요란스럽고, 자기 색깔이나 주장이 세며, 미사성제의 본질을 넘나들기 때문이다. 또한 적어도 오늘의 수녀님들께서는 돌아가실때 뒷풀이로 2차니 3차니 가셔서 흥청거리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적 불쾌감이 없어서 진짜로 미사성제를 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도해야하고, 일정도 짜야하고, 각자 일거리도 많은 사람들이 뒷풀이까지 한다고 새벽까지 마셔라 부어라 하는 미사도우미는 더 이상 싫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잔치를 했으면 어서 가서 쉬고 다음 연습들을 해서 더 잘 봉헌할 생각이나 해야지, 아니면 부족한 말씀공부를 좀 하든가?!  미사도우미 한 게 무에 그리 퍼 마시고 노닥거릴 일이라고....... 쩝! <수녀님들 다음에 또 오세요. 저는 그래서 좋았습니다. 진정한 미사도우미를 보았으므로 좋았습니다. 그리고 수녀님들께서는 빵부스러기 성체 보다 더 커 보이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미사도우미라고 여겨져 진짜로 좋았습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수녀님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절대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절대로 변하지 말아야한다.

 

ㅡ지금은 주님께서 조금도 비유를 쓰지 않고 정말 명백하게 말씀하시니 따로 여쭈어 볼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한16,29-30ㅡ

 

 

 

드럼은 멋지게 가락을 타야하고

 

 

 

물레는 부지런히 실을 뽑아야하고

 

 

 

성모님의 달!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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