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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눈앞이 캄캄해지는 경우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05-10 조회수1,043 추천수16 반대(0) 신고
 

5월 10일 부활 제 7주간 화요일-요한 17장 1-11절


“나는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일을 다 하여 세상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경우>


가끔씩 부족하디부족한 제가 강사로 사람들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가뭄에 콩 나듯 잘 들었다, 감사하다는 말도 듣지만 대체로 뭔가 잘못되었구나, 영 아니었구나, 왜 그런 썰렁한 말을 했을까? 하는 마음에 가슴을 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공연히 또 객기를 부렸구나 하는 마음에 한동안 우울증에도 빠집니다.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은 그래서 정말 고통스런 일이고 보통 부담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로 환한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강론대 앞에 설 때, 눈앞이 캄캄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날씨가 꽤 선선한 데도 불구하고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쉼 없이 흘러내리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시간이 안가나 하는 초조한 마음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렇게 잘 안 풀릴 때가 언제가 하면 준비가 소홀한 때입니다. 외적인 준비도 준비지만 내적인 준비, 마음으로부터의 준비가 더욱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기도가 부족한 때, 하느님의 영광을 생각하기보다 제 자신을 더 많이 생각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이벤트 회사 사람처럼 그럴듯한 말솜씨로 적당히 때우려고 할 때, 놀랍게도 청중들은 그런 제 속마음을 정확히 읽는다는 것을 자주 체험합니다.


제 능력에 자만해서 적당주의로 나갈 때, 한껏 우쭐해있을 때, 그런 마음자세로 참된 하느님 말씀의 선포자로 청중 앞에 서기는 불가능 합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작은 도구로서 내가 이 자리에 왔다는 마음으로 강단에 설 때, 묘하게도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앞에 앉아계신 형제자매들이 유난히 정겨워 보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준비한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저절로 생깁니다.


우리 모든 인간들은 각자의 삶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야할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며 삽니다. 나는 정말 부족한 도구지만 하느님의 도움으로 작게나마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간다는 겸손한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 마음이 결여될 때면 어김없이 철저한 실패로 끝난다는 것은 당연한 공식입니다.


오늘 복음은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완벽하게 수행하신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로 돌아가기 전 행하신 고별기도이자 고별사입니다.


예수님의 지상생활 전체는 오로지 아버지께 영광을 돌린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은 오로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순명, 십자가상 죽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립니다. 예수님의 생애 전체는 오직 아버지를 위한 삶이었습니다.


수도자로 살아가면서 정말 크게 다가오는 유혹이 내가 뭔가 한번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번 주인공이 되어보겠다는 마음, 내가 중심이 되어 뭔가 한번 이뤄보겠다는 마음, 참으로 큰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사사건건 형제들과 마찰이 생기지요. 그런 자기중심적인 마음으로 추진된 일이 절대로 잘 될 리가 없습니다.


형제들과 허심탄회하게 상의하고, 형제들의 반대의견에도 귀를 기울여보고, 형제들과 함께 일을 추진하고, 잘 된 것은 형제들에게 공을 돌린다면 만사가 형통할 텐데, 모두가 행복할 텐데, 그것이 어렵습니다.


결국 만사를 아버지께 맡기고, 모든 미래를 아버지의 손에 두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내가 한번 해보겠다는 마음보다는 아버지께서 허락하시면 그분 자비와 도움에 힘입어 열심히 노력해보겠다는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우리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일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비우고 낮추는 하루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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