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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34) 홈 페이지가 뭐길래?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5-10 조회수1,182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5년5월10일 부활 제7주간 화요일ㅡ사도행전20,17-27;요한17,1-11ㄱㅡ

               

             홈 페이지가 뭐길래?

                                       이순의

 

 

요즘 홈페이지 때문에 유아뿐만 아니라 영아에서 미숙아까지 장식의 도구로 삼아 아동학대 죄로 형사적 처벌을 감수해야만 하는 뉴스를 접할 수 있다. 굳이 뉴스가 아니라고 해도 컴을 다루는 자녀를 둔 모든 부모세대들은 간혹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가끔은 아들녀석이 컴퓨터 앞에 앉아 배꼽을 빼 놓고 재미있어 하는 모습을 보고 다가가 무슨 일인지 볼 때가 있다. 

 

과연 이 세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엽기적인 사진이나 그림을 보며 재미있다고 웃는다. 때로는 엄마의 사고력으로는 도저히 웃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도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나는 아들 아이를 앉혀놓고 모순이 모순인 줄을 판단하지 못하도록 세뇌당하고 있다고 훈계를 늘어놓는다. 그럴때면 아들녀석은 당당하게 자기는 요즘 아이들 보다 훤씬 세뇌되지 못한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인터넷이 가져다 주는 편리는 인간이 생각하기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각 요소 요소에서 대단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그 편리에 덕을 보는 쪽의 가치는 대단할지 모르나 그 편리의 다른 쪽에서 활동하는 영역 또한 상상을 불허할 만큼 인간 존엄의 가치를 말살하고 있다. 어쩌면 아동학대라는 이유가 되어버린 유아사진 촬영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동물들에게 가해한 사진이라든지? 어린이나 청소년들끼리 꾸며낸 사진들은 설령 그것이  합성사진이라고 해도 두려울 지경일 때가 있다.

 

내가 디카를 가져본지가 몇 달이 되었다. 디카를 가져 본다는 것도 또 다른 나와의 싸움이었다. 처음 컴을 할 때랑 똑 같은 마음이었다. 신기하고, 재미있고, 호기심에다가 자기 만족감에 자칫 디카가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 내가 디카의 소유물이 되어버릴 것 같은...... 그래서 처음 얼마동안은 조심스러웠다. 어느집 마당의 예쁜 꽃이 탐이 나서 들어갔다가 할머니께서 도둑인 줄 알고 야단을 하셨던 일도 있고......

 

그래서 아~! 디카를 가지는 것도 기준이 필요하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묵상글을 쓸 때도 기준을 정해야 했듯이 디카에도 나의 기준을 세워야했다. 그리고 몇 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 첫째 생명윤리에 어긋나는 사진은 찍지 않는다. 둘째 사사로운 개인의 인물이나 생존이 달린 영업에 대해서는 정면을 찍지 않으며 노출 시키지 않는다. 셋째 허락이 필요한 경우는 반드시 허락을 받아서 찍는다. 넷째 사진을 찍다가 누군가 꾸중을 한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사과를 한다. 다섯째 찍은 사진을 변형하거나 오용하지 않는다. 등등

 

대충 몇 달의 경험이 이런 저런 기준을 만들어 주었다. 앞으로도 나는 사진을 찍으며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묵상글을 쓰면서도 많은 것을 격어야 했고 앞으로도 격어야 하듯이 사진을 찍으면서도 더 많은 기준을 정하고 실천하며 내 자신의 절제를 먼저 격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그런 기준을 요구했던 이유는 아들이 자주 보는 인터넷 홈페이지 들을 보면서 나는 저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것들이 재미있다고 보는 동안에 가치관의 변형을 양산하고 있었다.

 

사진인데 라고 보는 단순함. 내가 한 것이 아닌데 라고 넘기는 무심함. 더욱 문제는 중독성이다. 가보았던 홈페이지에 엽기적인 내용이 오르게 되면 자구자꾸 그곳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비록 사진에 불과 할지라도, 내가 한 것이 아닐지라도, 내 심성에 자극을 주고 내 정신의 판단력을 지배하게 되는 곳에 자꾸만 찾아가는 것이다. 처음 볼 적에는 <으헉?> 하고 놀랐다가도, 스스로 택하여 자꾸자꾸 보고 무디어지는 현상은 누구도 책임을 져주지 않는다.

 

전에부터 나는 아들 아이에게 홈페이지에서 그림 보는 것을 차단할 수는 없었으나 늘 생명의 관점을 상실하지 않고 그런 것을 판단하도록 잔소리를 늘어 놓았었다. 그럴 때면 <고등학생 아들이 게임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음란 싸이트에서 탐닉하는 것도 아닌데 사진 보는 것도 가려서 보라고 잔소리하는 엄마는 우리엄마뿐이다>고 볼맨 소리를 지르곤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가 갖고 성장하는 생명의 관점은 우리세대와 전혀 달라져 있다. 어쩌면 홈페이지 장식용으로 사진을 찍고 싶은 욕망은 당연했을 지도 모른다.

 

처음 비디오가 나왔을 때 아동전문가들은 아이들을 비디오 앞에 앉혀놓지 마라고 경고를 거듭 했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비디오 앞에 앉혀놓고 자기시간을 갖는 엄마들이 있었다는 현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게임기도 그러했고, 컴퓨터도 그러했고, 인터넷까지..... 이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격고 살아온 가치관은 쌀과 흙과 자연으로부터 얻어온 것이 아님을 증명해 주고있다. 생명의 가치기준이 전혀다른 사람들로 지금 지구에는 확실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핏덩어리 아기의 목을 졸리는 사진을 찍고 싶었을 때, 자기 자신의 목이 졸린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을 반대 입장에 대하여 한 번이라도 생각을 해 보았을까? 물론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나 어려서 반창고를 붙였다가 뗄때면 살점이 떨어져 나오는 경우도 있는 신생아에게 치료의 목적도 아닌 사진을 찍기 위해서 반창고를 붙여 훅크선장을 만들고 싶었을까? 엄마의 뱃속에서 퉁퉁 불어나와 그 물이 빠지면서 쪼골쪼골 해진 아가의 주름을 잡아당기고 싶었을까? 담요를 뒤집어 쓴 것 같은 중국산 개꼴을 만들어 재미있다고 웃고 싶었을까?

 

생각할수록 화가난다. 이 세대가 앞으로 가치관을 얼마나 더 변형해갈 것인가? 언론이 아니었다면 나 같은 구세대들은 그런 끔찍한 사실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 상에서는 기성세대가 제동을 걸어주어야하는 상황들조차도 신세대들만의 불가침 영역으로 성장되어지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생각이 든다. 더 큰 문제는 뉴스에서 인터뷰 하는 그 사람들의 동기가 더 심각하게 느껴진다. 별 생각 없이 홈페이지를 색다르게 꾸밀 마음 뿐, 어떠한 범죄적 동기도 추구하지 않았다는!

 

그들에게는 범죄할 마음이나 생각이 전혀 없었고, 그것이 범죄로 간주될지는 더욱 몰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용서해야 하는가?! 어쩌면 그들도 시대가 낳은 희생자일 것이다. 이 시대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시대를 탓할 수도 없다. 각자의 윤리관을 스스로 정립하지 않으면 안되는 엄청난 위기의 시대를 살아야 한다. 상실은 넘쳐나는데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살려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돌아가자 돌아가자 참살이로 돌아가자를 외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경험으로도 내 개인 홈페이지를 열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시대가 낳은 또다른 유혹이 쉽지 않음을 인정한다. 나는 앞으로도 주님을 믿는 사람의 위치를 더욱 돈독히 하며 기준을 세우고 지켜갈 것이다. 모든 것은 자신이 높아지려는 이 시대의 바벨탑을 더 높이 더 높이 쌓으려는 욕망의 결과였을 것이다. 정말로 돌아가야 한다. 참살이로 돌아가야 한다. 먹거리만 돌아갈 것이 아니라 생각도 마음도 정신도 이상도 모두모두 참살이로 돌아가야 한다. 영유아들의 고통의 결과로 많은 네티즌들의 자성이 동행하기를 간절히 염원드리는 바이다.

 

ㅡ나는 이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세상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신 이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이 사람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입니다.요한17,9ㅡ

 

 

담장 넘어의 작은 야생 꽃들이 예뻐서 담 넘어에서 찍었습니다.

 

 

야생꽃들만 주인공으로 삼고 싶어서 마당에 들어 섰다가 주인에게 꾸중들었습니다.

사과 드리고 반성했습니다. 담 넘어에서 찍은 걸로 만족하지 않았음을!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여름 양말이 마땅하지 않은 기억이 나서 양말을 사러 갔습니다.

주인은 계시지 않았고 발 마네킹이 예뻐서 렌즈의 단추를 눌렀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먼데서 보신 주인이 오셨고 사진을 찍었다고 야단을 치셔서 보여드렸습니다. 차량 번호도 안나오고 그냥 발 마네킹이 예뻐서 찍었으니 용서 하시고 양말을 팔으시라고..... 아저씨는 양말은 팔을 생각이 없으시고 지우라고 소리를 지르셔서 몇 장 찍은 걸 지우고 양말도 못 사고 돌아섰습니다.  

 

 

 

비 오는 날에 어느 가게 앞에 이렇게 앙증 맞은 화초들이 단비에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계셔서 미리 허락을 받고 모델을 삼아 많이 많이 찍었습니다.

 

 

그런데 저기 주전자 옆에 있는 꽃님의 꽃대 하나를 그만 살짝했는데 부러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냥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마음이 편한 쪽을 택하기로 하고 주인께 고하였더니

표정은 쓰셨지만 말씀은 너그럽게 해 주셨습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사진 잘 쓸게요. 

 

 

 

백화점에서 네온으로 써진 글씨가 예뻐서 찍고 있는데 연세가 좀 있으신 아저씨께서 나를 세워 놓고 뭘 찍었느냐고 소리지르시는 바람에 글씨가 예뻐서 찍었다고, 상업적인 간판을 찍지는 않는다고 설명을 드려야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젊은 아이들도 아닌 아줌마가 사진 찍는 것이 이상한 행인께서 술김에 해 본 언행이었습니다.

 아이구 힘팔려.....

 

해질녁에 골목 어느집의 나무생김이 특이하여 찍고 있었는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들오와서 찍으라고 하셨습니다. 곧 능소화도 필 것이고 마당이 예쁘니 언제든지 들어와서 찍으라고 하셨습니다. 정말로 마당은 넓었고 주인의 부지런함이 보였습니다. 지나다가 종종 꽃 소식을 담아 올 수 있게 해주신 주인 아주머니께 감사 드립니다.

 

 

 

아주머니의 마당에는 솜털처럼 특이하게 생긴 꽃도 있었고, 인터넷 어디에 글을 쓰는지도 알려드리고 왔습니다. catholic.or.kr - 우리들의 묵상 - 꽃 보다 내가 더 멋져요.(그날 쓴 글이 그것이었음) 그런데 손님으로 계신 아주머니께서는 휴대전화기에 영어로 불러드리는 것을 메모하셨습니다. 나는 그거 못 하는데 그분은 참 멋진 분이셨습니다.

 

 

 

우리동네의 어느집 화단이 너무 예뻤습니다. 그래서 샤시문 밖에서 살짝!

잔듸에 심어진 팬지꽃은 더 예쁘고, 그곳에 매일 주차하는 그 차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마당에 무단 침입 한 것이 아니구요.

샤시문 틈으로 디카를 밀어 넣어서 찍었습니다.

집 주인만 보시기에는 잔듸도 팬지꽃도 너무 예쁩니다.

 

 

 

호수가의 풀밭은 평화로왔고!

 

 

 

 

오리랑 비둘기랑은 서로 존중하며 정다웠습니다.

 

이렇듯이 사진을 찍을 때도 자잘한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찍은 사진으로 인하여 삭제를 원하시는 사진 배경의 주인이 계신다면 기꺼이 지워드릴 것입니다. 사진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까요. 그것을 잘 지키도록 언제나 노력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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